*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원인 불명의 재앙으로 종말을 맞이한 지구, 사람들이 피난처로 향하는 가운데 천문학자 '오거스틴(조지 클루니)'은 재앙을 발견한 장소인 북극의 한 연구소에 홀로 남는다. 질병 때문에 이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는 유일하게 활동 중인 행성 탐사선 에테르 호와 연락해 지구의 상황을 알리고, 그들의 귀환을 막고자 한다.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신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이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아이리스(킬린 스프링올)'를 만나 함께 지내기 시작하고, 마침내 에테르 호의 우주비행사 '설리(펄리시티 존스)'와 교신에 성공한다. 

지금까지 우주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우주는 새로운 삶의 터전일 수도 있고, 예상치 못한 만남의 장일수도 있며, 지구에 없거나 부족한 자원과 기회를 줄 수도 있다. 이러한 우주와 그 안에서 빛나는 별들은 희망을 주고,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고, 위로를 주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실은 물론 가상에서도 끊임없이 우주로 나아갔다. 영화의 세계 안에서도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 세계 여행>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에 개봉했던 <프로메테우스>, <인터스텔라>, <애드 아스트라>까지 수많은 이들이 이유는 제각각이어도 우주의 지평을 늘려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도 외견 상으로는 다르지 않다. 조지 클루니가 주연, 제작, 감독을 맡아 릴리 브룩스돌턴의 소설 <굿모닝, 미드나이트>를 영상으로 옮긴 이 작품은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교차시켜 보여준다. 하나는 우주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에테르 호와 승무원들의 여정이다. 설리를 비롯한 5명의 승무원은 인류가 식민지로 개척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탐사하는 임무를 수행한 후 지구로 귀환한다. 그들은 우주선이 오작동하고, 다른 탐사선과 지구로부터 교신이 끊기고, 예상치 못한 영역에 진입해 우주를 떠다니는 파편의 공격을 받는 등 여러 위기를 겪으면서도 임무를 끝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른 하나는 멸망이 가시화된 지구에서 다른 사람들이 대피하는 와중에도 북극의 천문대에 홀로 남은 오거스틴의 이야기다. 노령과 질병으로 인해 죽음을 앞둔 그는 지구로 오는 에테르호의 항로를 바꾸기 위해,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본인이 제시하고 고안했던 행성 탐사 프로젝트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우주와의 교신을 필사적으로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안테나를 수리하고, 방향을 바꿔보고, 북극의 눈보라와 추위를 뚫으며 전파를 발송하는 데 더 용이한 기지로 이동한다. 사실 이처럼 인류를 구할 우주 개발 계획을 성공시키려는 우주비행사와 천문학자의 사투는 그다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오히려 클리셰에 가깝다. 그래서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지금껏 나온 수많은 우주여행 영화들의 발자취를 따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말에 다다른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다르다. 영화는 그제야 자신이 진짜 하려던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우주와 우주여행은 그저 배경이자 소재일 뿐이며고, 메인 포스터에서 나타나 있듯이 궁극적으로는 사람, 특히 가족의 소중함을 보여주는 영화임이 드러난다. 오거스틴으로부터 지구가 멸망하기 직전이라는 소식을 들은 후 에테르 호의 승무원들은 각자 다른 길을 선택하지만, 그 동기의 바탕에는 모두 가족애가 있다. 항해 중에도 가상현실 기계를 이용해 가족과 함께 하는 순간을 꿈꾸었던 만큼 누군가는 지구에 남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누군가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이의 마지막을 기리기 위해, 남은 이들은 앞으로 태어날 가족을 맞이하기 위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가족을 선택하는 그들의 행보는 에테르 호의 항해에서 암시되기도 한다. 다른 탐사선, 지구의 관제소, 지구에 남은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못할 때 에테르 호는 거듭 위기를 겪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을 만나고 지구와 교신이 이루어지자 에테르 호와 승무원들은 마침내 평화를 찾는다.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영화 <미드나이트 스카이>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오거스틴의 여정도 마찬가지다. 그의 여정에는 예상치 못하게 만난 한 여자아이, 아이리스가 함께 한다. 처음에 그는 그녀를 돌발 변수이자 방해물로 여기며 벽을 친다. 그러나 이내 그는 기지 안에서 그녀의 친구가 되어주고, 다른 기지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는 그녀의 보호자가 되어준다. 그녀 역시 눈보라에서 헤매는 그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그는 에테르 호와의 교신을 통해 설리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전체 이름을 들은 후 마침내 자신의 여정에 아이리스가 있어야만 했던 이유를 알아차린다. 우주를 향한 자신의 야심 찬 프로젝트 속에 정작 가족은 빠져 있었음을, 아이리스와 함께 한 짧은 경험이 그가 가족에게 베풀고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할 사랑이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죽음을 앞둔 순간 프로젝트 끝에 오래전 헤어진 아내와 딸이 있었음을 알게 된 그는 마지막까지 마음 한 구석을 괴롭히던 죄책감을 회한 속에서 직시한다. 마지막 순간 등장한 이 짧은 교신 덕분에 영화는 광활한 우주가 아니라 우주 전체에서는 먼지만큼이나 작은 사람,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이들인 가족을 향해 나아가는 작품이 된다.    

긴 시간 동안 여러 영화의 소재가 되었던 만큼, 우주와 가족애의 만남은 자칫 익숙하고 뻔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영리한 완급 조절을 통해 함정을 피해 간다. 영화는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다. 어거스틴의 과거사를 보여주는 플래시백은 짧고 간결하게 최소한으로 삽입된다. 각 에피소드 별로 화면 전환도 빠르다. 빠르게 교차되는 안정과 위기, 평화로움과 불안함은 각 사건의 충격을 극대화하고 인물들의 감정선을 강조하며 전개의 동력을 유지한다.  

특히 영화는 별다른 설명 없이 진행된다. 지구의 위기가 어떤 것인지, 연락이 두절된 다른 탐사선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지구의 생존자들이 향한 곳은 어디인지, 어거스틴이 행성 탐사 프로젝트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대사도 많지 않다. 어린 아이리스는 어거스틴의 과거를 일깨우는 몇 마디 외에 말을 하지 않는다. 결말부에서 어거스틴은 아이리스와 자신의 관계,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수많은 사연 그저 잠긴 목소리와 떨리는 손, 젖어드는 눈가를 통해서 함축적으로 전해진다. 그래서 역으로 몰입도는 높다. 설명이 딱히 주어지지 않기에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 대사와 제스처, 그리고 플래시백의 의미는 마지막에야 그 퍼즐이 맞아 들어가고, 결말의 감흥은 더욱 짙어진다. 그 결과 자칫 진부할 수 있었던 인생의 시작과 끝이 수렴하는 순간 깨닫는 가족의 소중함은 진정성 있게 전달된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결코 깔끔하게 다듬어진 보석이 아니다. 사색적인 분위기 속에서 행해진 담백한 연출은 밋밋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머를 가미한 장면들이나 몇몇 장면에서의 배경 음악처럼 분위기를 깨며 튀는 순간들도 존재한다. 멸망을 목전에 둔 지구, 식민지 개척을 위한 우주 탐사, 우주에서의 돌발상황 같은 영화의 여러 시퀀스나 설정 자체도 클리셰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에테르 호의 승무원들이 고장 난 레이더와 안테나를 수리하는 시퀀스는 마치 조지 클루니가 자신만의 <그래비티>를 만들려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비록 야심 찬 롱테이크만큼의 인상은 남기지 못하지만, 시퀀스 전개의 순서나 연출 상의 분위기를 볼 때 <그래비티>의 그림자는 짙게 어른거린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는 그리 큰 흠이 아니다. <미드나이트 스카이>는 비록 심심할 수도 있고, 예측도 가능하며, 볼거리가 화려하지도 않지만 분위기에 취해 인물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면 충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달, 금성, 화성 등도 자세히 보면 크레이터 투성이이지만, 그 흠들이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이 주는 정서와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것처럼.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영화리뷰 미드나이트 스카이 넷플릭스 조지 클루니 우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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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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