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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일 낮 12시 39분] 
 
맛나기로 유명한 안남옥수수를 심고자 봄철 밭고랑을 갈았다
▲ 안남면 일대 밭고랑 맛나기로 유명한 안남옥수수를 심고자 봄철 밭고랑을 갈았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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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와 도시화로 인구가 줄어 소멸로 가는 우리 농촌. 지자체는 사람을 모으려 지역 자원의 부가가치를 활용한 산업 생태계 조성과 생활 복지를 내세워 지역의 존립을 도모한다. 도시 빈부 격차는 커지고 사회 환경은 나아지지 않는데도, 도시로의 발걸음은 그치질 않는다.
  
그렇다면 도시는 과연 희망을 담보한 소돔성인가, 절규하는 자들이 탑승하려는 방주인가,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민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 정책에 국민은 각자도생해 활로를 찾아 도시 탈출을 꿈꾼다. 우리가 꿈꾸는 농촌, 오라 하지 않아도 찾아갈 농촌, 자녀에게 고향이라는 선물을 남기고픈 농촌. 과연 어디에 있을까. 

'사람 냄새'나는 마을
     
안남면 일대에는 돌탑, 선돌 등 민간신앙이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금강 수변구역에 위치한 안남면 연주리 돌탑 안남면 일대에는 돌탑, 선돌 등 민간신앙이 잘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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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여기 갓난 아이의 울음소리도 듣기 어려워진 농촌에 재잘대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땅이 있다. 남녀노소 공동체를 이뤄 재미나게 사는 동네. 삭막한 도시생활에 영혼을 빼앗기고 내려온 청년들도 있고, 정년 후 고단한 몸 쉴 작정으로 찾아온 장년들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희망을 꿈꾸며 온 사람들에게 텃새 없이, 고향 찾은 자식 품듯한 주민들이 있는 곳, 바로 '충북 옥천군 안남면'이다.

옥천군 안남면은 금강의 광역상수원인 대청호 수변에 자리하기 때문에, 주민의 노력과 실천에 힘입어 청정의 자연환경이 잘 유지되고 있다. 안남면 7개 리 가운데 연주리 배바우마을은 매년 제비가 신작로에 둥지를 튼다. 제비의 분변이 귀찮을 만도 하지만 주민들은 생명과의 공생을 당연히 알고 귀히 여길 줄 아니 흥부마을인 셈이다.
  
잔다리라는 이름은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도랑에 자잘하게 다리가 많았다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 안남면 지수리 잔다리마을의 도랑살리기 잔다리라는 이름은 마을 가운데를 흐르는 도랑에 자잘하게 다리가 많았다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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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미리 미산마을은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팀이 자전거로 향수백리길을 달리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 노랫가사말 같은 금강가에서 캠핑을 하면서 전국에 소개되었다. 지수리 잔다리마을은 물포럼 도랑살리기 사업이 초창기 삽을 뜬 곳으로, 핏줄 실개천부터 건강해야 금강 대동맥이 붉고 건강하게 흘러간다며 모범적인 민관협력을 이뤄낸 마을이다. 
  
도덕리 덕실마을은 금강트레킹 12년 내내 금강변 최고의 청정 밥상을 제공해 밥 먹고 싶은 마을로 으뜸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마을 산물 식재료로 도심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새롭고 다채로운 조리법을 선보이면서, 방문자는 먹고 사감으로써 지역주민에게 이익을 안겨주는 생태관광을 표방했다.
   
금강을 두루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먹고싶은 금강변 식사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 덕실마을 친환경 농산물로 만든 마을 밥상 금강을 두루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먹고싶은 금강변 식사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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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트레킹 일정 중 장애우와의 동행에서 덕실마을 길쌈놀이
▲ 덕실마을에서의 도농교류 체험활동 금강트레킹 일정 중 장애우와의 동행에서 덕실마을 길쌈놀이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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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안남면의 자랑은 둔주봉에 올라 거꾸로 된 한반도 지형을 보는 것이다. 옥천 8경의 1경이자, 금강의 최고 조망지로 손꼽히는 둔주봉에서 하산하면 안남면 사람들이 재현하는 옛 시골장터를 경험할 수 있다.
  
옥천 8경 가운데 1경에 해당한다
▲ 안남면 연주리 둔주봉에 올라서 바라 본 거꾸로 된 한반도 지형 옥천 8경 가운데 1경에 해당한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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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 상류 청정 농산물들이 집산하면 도시민의 장바구니는 구매한 물건보다 얻어가는 물건이 더 많을 만큼 인심이 훈훈하다. 
 
쇠락하는 농촌이 본받아야 할 미래형 농촌가꾸기가 안남면 일원에서 일고 있다.
▲ 안남면 배바우마을장터 쇠락하는 농촌이 본받아야 할 미래형 농촌가꾸기가 안남면 일원에서 일고 있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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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의 격을 한층 높이는 진정한 자랑은 세대 간 격차를 줄이고자 소통이 활성화된 공동체이다. 아이들과 노인들을 위한 돌봄 활동, 도서관과 취미 등 어울림 활동, 주기적인 주민협의와 타지역이 부러워하는 어르신들의 리더십 등 최근에는 대학생 농활의 복원, 백년 생태박물관을 꿈꾸는 마을만들기 등 헤아릴 수 없다.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으로, 도시의 어느 골목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마을의 격을 높이는 아름다운 활동이다.
▲ 안남면 배바우도서관 주민들이 자치적으로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으로, 도시의 어느 골목도서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마을의 격을 높이는 아름다운 활동이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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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군의 대다수 지역은 대청호 상류에 자리했다는 원죄로 인해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주어진 규제 환경을 위기가 아닌 기회로 살려 광역상수원으로서 안정적인 수질을 공급하는 데 일조하는 금강동네 사람들인 셈이다.
     
삶이 퍽퍽할수록 지속가능한 삶이라는 화두는 도시와 농어촌에 공동체 운동이 들풀처럼 일어나길 기대하고 있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도 모자랄 판국이다.

에너지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사람
 

그런데 그나마 잘 익어 곰삭은 착한 공동체를 화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안남면 둔주봉에서 내려다보면 번쩍이며 산야를 덮게 될 대규모 태양광 사업이다. 태양광 사업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규모 태양광 단지 면적은 마을의 얼굴이 달라지는 사업이다. 미래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자연유산이 마을공동체와의 협의 없이 외지인의 사적 이익에 의해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민을 더 답답하게 하는 것은 첫 삽을 뜨기 직전에야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없음이라는 행정 결론으로 주민들이 어딘가에 읍소하고 항변할 수 있는 싹마저 잘라 버린 것이다.
     
사업의 효과성과 목적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입지 선정, 관행적인 편법 인허가 절차의 부당성 등 주민들의 의견은 많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옥천군이 무엇 때문에 한 개인의 대규모 태양광사업과 착한 공동체를 뒤흔들어 맞바꿈 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든다.
  
옥천군청 내에서 옥천군의 각성과 개발행위 인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주민 1인 시위가 전개되고 있다.
▲ 청정마을 대규모 태양광 사업을 반대하는 주민 행동 옥천군청 내에서 옥천군의 각성과 개발행위 인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주민 1인 시위가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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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주민 공동체는 잘 숙성되어 내리내리 맛을 보장하는 종지간장과 같다. 시간이 만든 종지간장은 쉽게 만들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종지간장 한 술이 맛 좋은 간장 한 독을 만든다. 주민 공동체와 어우러져 역사를 같이한 자연환경은 항아리를 담은 장독대이다. 햇살, 바람, 습기와 사람의 행주질이 만든 결정체인 것이다.

대규모 태양광 시설로 인해, 그 햇살과 바람과 습기가 결을 달리하고, 행주질이 거칠어질 때, 종지간장의 맛이 영원할 리 만무하다. 신산업 육성 좋다지만, 옥천군 안남면에서 에너지보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종지간장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떠나가면 더 이상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특히 마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더 좋은 옥천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 안남면 둔주봉 아래 금강변 풍경 사람이 떠나가면 더 이상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 먼저인 세상, 특히 마을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 이룬 공동체를 존중하는 것, 그것이 더 좋은 옥천을 만드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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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금강생태문화연구소 '숨결' 소장입니다.


태그:#옥천 안남 태양광사업, #둔주봉, #안남면 주민공동체, #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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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교육, 생태관광을 연구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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