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출근길 한파 영하권 추위가 계속되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출근길 한파 영하권 추위가 계속되는 17일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시민들이 걸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여명이 아스라한 오전 7시에 교문에 선다. 등교 개학이 시작된 지난 5월 20일 이후 변함없는 내 출근 시간이다. 교문 방역 담당자. 한국사 교사, 학생부장에서 이름을 바꿔 단 인권자치부장과 함께 코로나로 인해 감투가 하나 늘었다.

이른 아침 추위가 정말 매섭다. 몇 겹으로 옷을 껴입은 채 집을 나서지만,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고 발가락의 감각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방역지침 상 착용하는 마스크가 안면의 추위를 막아주어 불편하기는커녕 고맙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근무 시간은 8시 반까지다. 별도로 만든 규정에는 7시 반부터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어 시나브로 출근 시간이 앞당겨졌다. 대개 새벽녘에 출근하는 부모와 함께 집을 나선 경우다. 7시 이전에 등교하는 아이도 있다.

그들더러 제발 늦게 등교하라고 통사정하지만, 그래봐야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이러저러한 사정상 부모가 태워주지 않으면 제때 등교하기 어려운 아이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규정대로 7시 반까지 교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늘 아침은 영하 5도에다 칼바람까지 분다. 하긴 과거 이맘때쯤이면 영하 10도 안팎까지 곤두박질칠 때도 흔했는데, 요즘 들어선 영하로만 내려가도 혹한이라며 호들갑을 떤다. 구순의 노모께선 이 정도쯤은 추위도 아니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한다.

여름만 뜨거워지는 게 아니라, 겨울 추위도 지구 온난화의 영향이 분명 있다는 거다. 추억의 옛날 사진 속 겨울 옷차림을 보면, 요즘과 같은 고기능 방한 외투는 찾아보기 어렵다. 꽁꽁 언 손 호호 불면서도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지'라며 흔쾌히 겨울을 났다.

그런데, 사람들이 느끼기엔 과거 영하 10도였던 때와 지금 영하 5도의 추위를 느끼는 강도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옛날보다 훨씬 옷이 두꺼워졌고 온갖 방한 도구로 잘 무장이 돼 있는데도 그렇다. 실내 환경을 고려하면 오히려 더 단출한 차림이어야 맞지 않나 싶다.

등교하는 아이들 앞에서 움츠리는 모습 보이기 싫어 이깟 추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어깨를 펴고 선다. 초임 시절만 해도 겨울철 처마 밑은 늘 고드름 차지였는데, 요즘엔 눈이나 비가 온 뒤에도 구경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예전엔 고드름을 따 먹기도 했다는 걸 과연 알까.

오전 7시 40분. 기온은 올랐어도, 해 뜨는 시간만은 변함이 없다. 짙은 어둠이 걷히고 환해지자 뿌옇던 입김도 조금씩 사라진다. 통학버스와 자가용들이 교문 앞에 늘어서고, 등굣길 왁자지껄 아이들의 수다가 학교의 아침을 깨운다.

등교하는 아이들 옷차림을 보면, 유행인 양 공통점이 몇 있다. 우선, 속옷은 얇고 겉옷은 두껍다. 방한에는 목도리와 털장갑만 한 게 없는데, 그런 차림을 한 아이는 거의 없다. 부러 이유를 물어보면, 십중팔구 추위에 떨지언정 거추장스러운 건 질색이라고 말한다.

블라우스에 조끼, 재킷 차림의 교복이 지정돼 있지만, 갖춰 입으라고 강제하긴 힘들다. 당장 그것만으로 추위를 막긴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겨울만 그런 건 아니다. 하복은 하복대로 여름철 무더위에 도움이 안 돼, 아이들은 기능성 의류를 챙겨 입는 경우가 다반사다.

교복이 통일성을 위한 거라면, 굳이 입지 않아도 될 만큼 아이들의 옷차림은 비슷하다. 몽실몽실 플리스 아니면, 두툼한 패딩 차림 둘 중 하나다. 심지어 반소매 속옷에다 두꺼운 외투만 입고 오는 아이도 있다. 추위를 막는 데 그것만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교실에 가면 아이들은 대개 외투를 벗어 걸어둔다. 교실마다 외투 걸이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앉아 수업을 받기가 불편할 것이다. 난방기가 종일 가동되어 교실 안은 항상 훈훈하다. 적어도 학교에선 추위를 잊고 지낸다.

기실 무더운 여름에도 학교 안은 천국이다. 종일 에어컨이 가동되어 쾌적하게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아이들은 여름철 에어컨이 없는 학교, 겨울철 난방기가 가동되지 않는 교실을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들에게 폭염과 혹한을 경험할 기회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래선지, 여름과 겨울을 견디는 힘조차 시나브로 약해진 듯하다. 아이들은 교실이 조금만 덥거나 추워도 짜증을 내고 애꿎은 리모컨에 화풀이를 한다. 교실에서 반소매 차림으로 추워 죽겠다며 난방 설정 온도를 높여달라고 말하는 아이들 앞에서는 할 말을 잃게 된다.

내가 아는 한, 한파주의보가 내려진다 해도 내복을 입겠다는 아이는 없다. 불편함과 귀찮음을 못 견뎌 하는 아이들에게 내복은 이미 머릿속에 없는 물건이다. 어른들이라고 크게 다를까마는, 요즘 아이들에게 편리함을 좇는 건 종교 그 자체다.

종이컵, 플라스틱 용기, 비닐봉지, 스티로폼, 그리고 핫팩까지. 사실 핫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여기까지 왔다. 일회용품 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은 이제 식상할 지경이다. 지금 태평양에 한반도 면적의 7배나 되는 플라스틱 섬이 떠다니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도 일회용품 소비 증가로 인한 환경 파괴의 부작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곧, 일회용품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소비를 줄여나가는 게,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사는 우리의 의무다. 학교 교육의 고갱이도 이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교실과 교무실 쓰레기통마다 버려진 핫팩으로 가득하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매일 털장갑 대신 주머니마다 핫팩을 챙긴다. 길어야 12시간이 지나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일회용품이다. 겨울 한 철 반짝 소비되는 물건이지만,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개씩만 사용한다고 해도, 우리 학교에서만 매일 얼추 천 개가 버려진다. 정확히 재보진 않았지만 개당 무게가 300g 남짓 될 테니, 모두 합하면 300kg이다. 열흘이면 3천kg, 곧 3t인데, 혹한기 한 달만 쓴다 해도 9t에 이른다. 한 학교에서 그렇다는 이야기다.

알다시피, 핫팩은 재활용이 안 된다. 겉은 부직포고, 내용물은 쇳가루와 숯가루 등이 섞여 있는데, 취급상 주의 사항에 사용 후 찢거나 내용물을 꺼내지 말고 그대로 휴지통에 버리라고 적혀있다. 핫팩으로 가득 찬 쓰레기 관급 봉투는 워낙 무거워 들다 이따금 찢기기도 한다.

내용물의 특성상 여느 쓰레기처럼 소각하거나 바다에 내다 버릴 순 없을 듯하다. 그렇다면, 땅에 묻는 방법뿐인데, 그 엄청난 양을 감당할 만한 터가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지방 정부마다 쓰레기 매립장 건립을 두고 주민들끼리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버려진 일회용 마스크를 걱정했었는데, 핫팩으로 가득한 쓰레기통을 보니 그건 약과였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아파트 단지의 분리수거장에 배달 음식을 담았던 플라스틱 용기와 스티로폼이 매일 산더미처럼 쌓이는 마당에, 고작 핫팩이 대수냐 싶긴 하다.

다만, 달리 방법이 없어 못하는 것과, 방법은 있지만 불편해서 안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코로나 감염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불편해서 그렇지 종이컵과 비닐봉지뿐만 아니라 핫팩 역시 대체할 수단이 얼마든지 있다.

부지런한 분들은 콩이나 팥을 천 주머니에 넣어 전자레인지에 돌려 핫팩 대신 사용한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겨울철 과일인 귤의 껍질을 랩에 싸서 전자레인지로 덥히면 온기가 꽤 오래 간다는 이야기도 있다. 천천히 식는 뜨거운 물주머니를 활용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게 귀찮다면 그냥 털장갑 하나로 족하다. 손이 아닌 귀라면 귀마개를 착용하면 되고, 목과 등이 시리다면 목도리를 두르면 된다.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닐 것이다. 값싸고 편리한 핫팩을 두고 굳이 번거롭게 챙길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다.

편리함은 인류의 행복을 가져온 문명의 성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편리해진 만큼 언젠가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생태계의 파괴가 코로나와 같은 지구적 감염병을 몰고 왔듯이, 경제 발전의 이면을 끊임없이 성찰해야 한다.

아침 내내 교문에 서서 떨고 있는 모습이 가엾어 보였던지, 등굣길 한 아이가 호주머니에서 핫팩을 건네주었다. 괜찮다고 했더니, 가방에 몇 개 더 챙겨왔다며 꺼내 보여주었다. 가방 속에 책은 없고, 비닐 겉봉지가 뜯기지 않은 새 핫팩이 세 개나 들어있었다.

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이내 쓰레기통에 버려질 걸 생각하니 씁쓸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일회용품 운운하며 그를 나무랄 순 없는 노릇이다. 그가 건넨 것까지 지금 내 호주머니에도 핫팩이 벌써 두 개다. 하나는 동료 교사가 출근길에 준 것이다.

오전 8시 반. 양쪽 호주머니에 든 핫팩 덕분에 편하게 근무를 마쳤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일회용품을 쓰지 않겠노라 다짐하면서도 시린 발을 덥히는 전용 핫팩이 없을까 고민했다. 남들 앞에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며 떠들어대는 내 모습이 초라해졌다.

자신의 익숙한 생활 습관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 하물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오늘 아침 한 시간 반 동안 교문에서 등굣길 아이들과 만나며 새삼 깨닫게 된 사실이자 다짐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