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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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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구례군 봉덕리 95-4번지 시설 하우스에서 토마토를 기르다가 물 폭탄으로 전 재산을 잃어버린 한덕수 농부를 만났던 날은 지난 9월 2일,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습니다.

까맣게 탄 얼굴에 핏빛의 눈동자를 반짝이던 그는 흙탕물 묻은 장화와 몸뻬 바지, 햇볕가림 군용 모자, 헐렁한 셔츠 그리고 자전거 한 대가 그에게 남겨진 자산의 전부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더 잃을 것도 없지만 포기하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차도 침수되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쓰레기장이 돼버린 하우스를 정리하고 당장 오이를 파종해야 하는데 폐기물을 들어낼 중장비 비용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40년 농사 중에 이런 막막한 일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저와 같은 나이, 갑장이었습니다. 같이 울어줄 뿐, 도와줄 방법은 없지만 동병상련의 마음을 함께 나누자고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날 이후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1차 복구를 마치고 농협에 빚을 내어 겨우겨우 오이를 파종했다는 그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의 농장으로 갔습니다. 덕수네 농장에는 오이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600평 농장에는 6500주의 오이가 어느새 키만큼 자라 노란 꽃을 피웠습니다. 보기에도 탐스런 오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는 약속처럼 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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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10월 초순까지는 오이를 식재해야 하는데도 엉망이 돼버린 하우스를 정리하느라 10월 25일에야 겨우 심었노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50일이 지난 오늘, 그는 첫 물 오이를 수확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이 하나를 들어 먹어보라 권했습니다. 아, 정말로 눈물 나는 오이 맛입니다.

그는 약속처럼 해냈습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 40년 오이농사 경험치와 인생 모든 것을 걸고 꼭 해내겠다'는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6500주의 오이꽃과 달콤하고 시원한 오이 맛!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작품을 봅니다. 어느 유명한 화가도 그려낼 수 없는 그림이며, 그 어떤 기술자도 해낼 수 없는 한덕수 농부만의 역작입니다.

속도 없는 농부는 그런 피눈물 나는 오이를 한 박스 싸서 안겨줍니다. '아니야, 아니 절대 가져갈 수 없다'. 겨우겨우 그를 말렸습니다. 처음 만났던 날은 슬퍼서 억울해서 같이 울었지만, 오늘은 기뻐서 그가 장해서 같이 울었습니다.

고마워요. 약속을 지켜주어서 고맙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오이꽃 피어주어서 감사합니다. 한덕수, 한 농부의 이름 석 자가 정말로 크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태그:#모이, #구례수해, #구례오이, #구례침수, #한덕수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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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섬진강가 용정마을로 귀농(2014)하여 몇 통의 꿀통, 몇 고랑의 밭을 일구며 산골사람들 애기를 전하고 있는 농부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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