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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어간다. 관련 소식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많이 들어서 그런지 무뎌져만 가는 상황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어야 이 비극이 멈출지 모르는 상황이다. 나는 물류창고에서 겪은 일을 떠올린다. 

갑자기 유난 떨던 하루

"오늘은 랩 치는데(랩을 칭칭 감음) 조금 살살 돌고 그러셔요."

관리자가 갑자기 낯선 말을 우리 영역에 와서 하기 시작했다. 그 지침에 따라 노동자들은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랩도 천천히 치고, 물건도 평소보다 덜 들고, 바빠도 뛰지 않았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싶어서 나는 고참 노동자에게 물어봤다.

"어디에서 안전 감독을 왔다고 하더라."

그제야 나는 관리자가 그런 지시를 한 것이 이해되었다.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안전 감독을 하러 온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을 위해 우리 노동자들은 천천히 작업할 필요가 있었다.

그 사람들이 언제 올지 예고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관리자는 우리에게 일하기 전부터 그런 신신당부를 했다. 오후 4시, 창고에서 무리를 지어 사람들이 올라왔고, 그들은 창고 현장을 꼼꼼히 살폈다. 노동자들은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조금 느리게 움직였고, 그들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창고 전체를 둘러보고 관리자에게 몇 마디 물어보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내려갔다. 노동자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빠르게 뛰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리게 움직인 만큼 쌓인 일들을 처리해야 해서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후에도 안전 감독을 하러 온 사람들이나 회사 임원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때만 조심하고 원상태로 돌아가고는 했다. 덕분에 안전 감독하는 날은 잠깐의 유난만 떨면 되는 하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안전 구호가 넘쳐나지만

물류창고를 다니다 보면 항상 안전 구호를 볼 수 있다. 사방에 주의해야 할 것들을 적어 놓은 포스터와 '아무리 급해도 천천히'와 같은 현수막이 걸려 있으니, 며칠 다니면 보고 외울 정도다. 더욱이 언제인가부터 매일 아침에 "복도에서 뛰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구호를 외치곤 했으니 안전 구호는 일상적인 것이 됐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할 때가 종종 온다. 급해도 천천히 하자고 구호는 강조하지만, 급하면 일이 밀리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구호를 무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일에 적응이 된 사람들은 다칠 일이 적다고 하지만, 오늘 처음 들어온 일용직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

지게차가 급하게 달리다가 물건을 들고 있는 노동자의 발을 밟고 지나가거나, 전산처리를 빨리하다가 날카로운 유리에 베인다든가 하는 정도는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다. 그럴 때마다 관리자는 노동자를 병원에 데리고 간다. 

처음 그런 사건들을 볼 때 나는 매우 놀라고는 했지만, 여느 노동자들이 그랬듯이 나 또한 점점 무뎌져갔다. 사람이 다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아, 그럴 때가 되었나'라는 생각도 같이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깨진 유리
 
깨진 유리 파편(기사와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깨진 유리 파편(기사와 사진은 관련이 없습니다)
ⓒ 언스플래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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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활에도 유난히 기억나는 사건은 있기 마련이다. 여느 때처럼 일하던 어느 날, 나는 물건을 차분히 나르고 분류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여유로웠던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 꽤 괜찮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한 또래 노동자가 깨진 유리를 나르다가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는 장유리가 담긴 상자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잘게 깨진 유리 조각이 그가 든 장유리 포장지 밑에서 쏟아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곧이어 우리 파트 노동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향해 갔다. 유리 파편들이 그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천만 다행히도 튄 유리가 그의 눈으로 들어가거나 하지 않아서, 그는 무사할 수 있었다.

우리 파트의 고참 노동자가 곧 관리자에게 따지러 갔다. 전산 처리하는 과정에서 포장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에게 보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하마터면 한 명의 청년 노동자가 실명할 뻔했기 때문에 사건이 매우 심각했다.

평소에도 처음 들어온 전산처리 부분 노동자가 이러한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도가 지나쳤다. 관리자는 해당 전산을 처리한 노동자를 찾아 다칠 뻔한 청년 노동자에게 사과시켰다. 전산 처리 노동자는 웃으면서 "아이고, 미안합니다"라고 한 마디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당장 화를 내봤자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라서 참고 다른 노동자들이 유리 파편을 치우는 것을 도울 뿐이었다. 이후 문제를 일으킨 노동자가 블랙리스트에 올라 출근하지 못하게 됐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책임 조치는 나오지 않았다.

이 사건이 끝난 후에도 계속해서 정도만 다르지 유사 사례가 나왔고, 나도 수차례 다칠 뻔했다. 나는 처음에 적극적으로 화를 내고 고참 노동자에게 하소연도 해봤으나 그때마다 관리자가 신경 써서 일시적으로만 개선될 뿐 바뀌는 것은 없었다.

조금씩 바뀌는 환경

이것을 누구의 잘못이라고 명확하게 말하기 어렵다. 모든 안전 관리 부실이 엮여서 일어난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수많은 안전 구호가 사방에서 보이고 아침마다 이를 외치지만,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은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쿠팡 물류창고에 처음 들어갔을 때 안전교육을 이수했다고 확인 서명을 했지만, 그때 나는 아무 교육도 듣지 않은 상태였다. 이후에 창고에서 주의해야 할 것을 듣기는 했지만, 안전과 관련한 사항은 미비한 편이었다. 오히려 일을 배우면서 노동자들에게 주의해야 할 사안을 배울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안전 문제가 화두가 되자 쿠팡 물류창고 측에서도 나름의 조치를 마련했다. 더 많은 안전 구호, 안전 포스터가 늘어났다. 간단한 사항이지만 사측에서도 매일 안전 유의사항을 발표하고 노동자들에게 알려주었다. 

가장 획기적인 변화는 안전화를 지급하는 것이었다. 좋은 품질의 안전화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안전화가 있어서 물건에 발이 찍혀 다칠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처음에 안전화를 신었을 때 발은 아팠지만, 든든해서 온종일 좋았던 기억이 있다.

대수롭지 않은 상처들

물류창고 노동자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되고는 했다. 반품되는 물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났고, 노동자들의 수는 일정했다. 간혹 많은 신규 노동자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이들 대부분은 전산 처리 등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물건을 정리하는 노동자의 수는 크게 늘지 않았다.

전산 처리 노동자의 수가 늘어나고, 물건을 정리하는 노동자의 수는 그대로인 상황. 당연히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현장은 더 바빠지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노동자는 최대한 빨리 움직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다가 물건에 긁히고 다치고는 했지만, 그것은 별 대수가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는 했다.

나 또한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는데, 동생이 팔에 난 상처는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놀라서 내 팔을 보니 나도 모르는 상처들이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 하다 보면 다 그렇지"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현장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내 경우는 운이 좋았다. 안전화도 받지 못하고, 창고 현장에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안전 교육 이수 확인서라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일을 마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 심하게 다치고 쉬는 노동자들도 보았다.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죽어가는 사회에서 안전 조치 강화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현장은 일이 많다는 핑계로,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안전 조치를 최소화하거나 노동자들이 그것을 스스로 어기는 것을 방치하고는 한다. 노동자 목숨 일부를 담보로 안전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 누구도 일하다가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늘도 노동자들의 부고는 올라온다. 이를 막고자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의 목숨을 보호하고자 하는 중요한 법인데도 불구하고, 그 통과는 아직도 어려워 보인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씨가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6일째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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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참다못한 사람들이 농성에 나섰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망한 노동자 김용균씨의 유가족인 김미숙씨는 농성장을 찾은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우리나라에서 일하다가 이렇게 많이 죽고 다치는 것은 하루빨리 끊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회기 안에 안 하면 다음에 무슨 일이 있을지 어떻게 아나, 이번에 또 못하게 될까 봐 그게 제일 우려스럽다"(이낙연 이어 주호영도 농성장행... 중대재해법 탄력받을까 http://omn.kr/1qzox)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했다.

노동자들은 오늘도 생과 사 사이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 일을 해 사회에 헌신하고, 이 헌신에 국회가 답해야 할 것은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작업환경이 아니라 안전한 작업환경일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으로 안전한 작업환경이 만들어지기를 소망한다. 되도록 빨리 그날이 오면 더 좋을 것이다. 안전을 걱정하며 물류창고를 다니던 날들의 기억은 추억으로만 남기고 싶을 뿐이다.

태그:#노동,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쿠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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