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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유엔 주거권특보인 '레일라니 파르하'가 활동하는 쉬프트(THE SHIFT) 등 세계 20개국 30개 조직들은 지난 12월 7일부터 '국제 홈리스행동(Global Homelessness Action)'을 시작했다. 행동 측은 "전 세계적으로 1억 5000만 명이 홈리스 상태"에 있고 이는 "영국과 프랑스의 인구를 합한 것과 같은 규모"라며, "코로나19는 주거 위기를 악화시켰고, 주거 위기는 곧 인권의 재앙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행동 측은 "안전하고 적절한 주거를 구하는 일이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문제가 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세계 150개국의 당국자들에게 홈리스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긴급 조치를 시행하라는 공개 요구서를 채택하였다.

공개 요구서는 ▲ 동정의 수혜자나 범죄자가 아니라, 삶의 권리 주체이자 전문가로서 홈리스를 대할 것 ▲ 거리와 같은 열악한 주거상태에 처한 이들에게 적절한 숙소를 즉시 제공하고, 물, 위생, 음식, 사회적 지원과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것 ▲ 홈리스 상태에 있는 이들을 코로나19 경제 회복 계획의 최전선에 둘 것 ▲ 거리 홈리스의 존재, 생존을 위한 그들의 필수적인 행동을 범죄화하지 말 것 ▲ 홈리스들에게 무료 법률 정보, 상담, 주거권과 인권 침해 대처 방안을 보장할 것의 다섯가지 내용을 담았다.

홈리스행동도 국제 홈리스행동의 참여 단체로서 국토부 장관 내정자에게 해당 서한을 발송하였다. 위 캠페인이 제기하듯, 홈리스에게 있어 코로나 위기는 주거의 위기, 한계적인 주거특성으로 인해 증폭되는 위기로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할 주거대책 절실

홈리스들의 열악한 주거 상태가 코로나19 위기를 증폭시키는 상태에서 주거대책만큼 절박한 것은 없다. 우선, 거리홈리스에게 주거를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숙인복지법이 정한 '임시주거비 지원'을 보강하고 확대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사업은 거리홈리스에게 쪽방, 고시원과 같은 저렴 주거를 제공하는 것인데, 2021년 월 임차료를 27만 원으로 정했다. 올해보다 1만 원 오른 것이다. 내년도 주거급여 1인 가구 기준임대료(서울 기준)가 31만 원이란 점을 상기할 때 턱없이 적다. 실제 이 금액으로 방을 구할 경우 먹방(창이 없는 방)이나 초 밀접한 공간 밖에 얻을 수 없다. 소집단 감염우려를 줄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통풍(창문), 거리두기(밀집도, 공용설비 당 적정 사용인원 등)를 고려한 예산을 편성해야 함에도 그러한 계획은 전혀 없다.

지원 대상자의 수도 900명으로 올해보다 단 한 명도 늘지 않았다. 그나마 홈리스에 대한 주거지원이 가장 양호한 서울이 이 수준이다. 팬데믹 이후로부터 7월까지 거리, 야간 대피소 등지의 주거취약계층 약 1만 5000명에게 호텔과 다양한 형태의 긴급 숙소를 제공한 영국의 사례와 비교할 때 정부와 서울시의 대처는 지나치게 안이하다. 둘째, 홈리스들의 주요 거처로 활용되고 있는 쪽방과 고시원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거처들의 주거 환경개선이 속히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최소한 기저질환자, 유사증상 및 유증상자, 감염 의심자 등이 이동 가능한 주거 대안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

서울시는 지난 7, 8월 무더위 대책으로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60세 이상의 홀몸, 고령부부 등 가족 내 돌봄 자원이 부족한 저소득 주거취약계층 중점 지원"을 위해 안전 숙소를 운영한 바 있다(지역 민간 숙박시설 등 활용). 이를 쪽방과 고시원 등지의 홈리스를 대상으로 연중, 상시 확대 운영할 계획이 필요하다.
  
쪽방촌과 고시원 방역 지침. 더 나은 주거에 대한 대책 없이 이뤄지는 ‘공용 공간 이동 자제’ 따위의 권고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아무런 지침도 될 수 없다.
 쪽방촌과 고시원 방역 지침. 더 나은 주거에 대한 대책 없이 이뤄지는 ‘공용 공간 이동 자제’ 따위의 권고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아무런 지침도 될 수 없다.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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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촌과 고시원 방역 지침. 더 나은 주거에 대한 대책 없이 이뤄지는 ‘공용 공간 이동 자제’ 따위의 권고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아무런 지침도 될 수 없다.
 쪽방촌과 고시원 방역 지침. 더 나은 주거에 대한 대책 없이 이뤄지는 ‘공용 공간 이동 자제’ 따위의 권고는 감염병 예방을 위한 아무런 지침도 될 수 없다.
ⓒ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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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도 순환형 쪽방 대책 마련

'위기'를 '기회'로 읽는 이들이 있다. 양동(현, 남대문로5가 542번지~626번지) 재개발지역 쪽방 건물주들 얘기다. 그들은 세입자 이주대책을 회피하고, 이를 모두 다 개발이윤으로 독식하려 개발에 앞서 쪽방 주민들을 퇴거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서울시나 정부의 개입은 전무하다. 서울시는 토지 등 소유자가 향후 정비계획을 입안 제안할 경우 "적정한 주거대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겠다고 할 뿐 진행형인 주민 퇴거, 쪽방 소개 조치들에 손을 놓고 있다.

다른 쪽방들도 안전한 것은 아니다. 국내 최대 쪽방촌인 동자동은 지난 5월 말 특별계획구역에서 해제되었지만 여전히 개발사업(지구단위계획) 지역이고, 창신동은 정비예정구역으로 정비계획이 수립 중이다. 한편, 서울시는 돈의동 쪽방촌에 대해 도시재생(새뜰사업)이 진행돼 주민공동시설이 설치되고 집수리지원이 완료되었다고하나 주민 개별 주거공간의 낙후함은 재생사업 전과 크게 달라진 바 없다. 여전히 현재 모든 쪽방은 열악하고, 개발사업으로 쫓겨나거나 그러할 위기에 있다.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제26조)은 시장·군수 등이 순환정비방식으로 정비사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직접 정비사업을 시행하거나 토지주택공사 등을 사업시행자로 지정하여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법제를 활용하여 모든 쪽방지역에 대한 공공주도 순환형 개발을 통해 주민들이 더 이상 쫓겨나지 않고 개발 이후 나아진 주거환경을 전유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쪽방주민들에 대한 예비퇴거조치부터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의 모습. 지난 봄, 한 쪽방 건물주는 “붕괴 위험”을 들어 주민들을 퇴거시켰으나 아직까지 어떤 개보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의 모습. 지난 봄, 한 쪽방 건물주는 “붕괴 위험”을 들어 주민들을 퇴거시켰으나 아직까지 어떤 개보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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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의 모습. 지난 봄, 한 쪽방 건물주는 “붕괴 위험”을 들어 주민들을 퇴거시켰으나 아직까지 어떤 개보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의 모습. 지난 봄, 한 쪽방 건물주는 “붕괴 위험”을 들어 주민들을 퇴거시켰으나 아직까지 어떤 개보수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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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거의 공급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하는 홈리스에 대한 주거대책은 당연히 임시대책으로 끝나서는 안 되며 항구적인 주거제공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 질병관리본부(CDC)도 홈리스 복지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가이드를 통해 "임시 장소 체류 이후 어떻게 주거기회와 연결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계획을 세우라"고 권고하고 있다(2020.8.5.).

영구적 주거제공을 위해서는 쪽방, 고시원, 노숙인시설 등지 거주자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이 가장 주효하게 활용되어야 한다. 정책의 표적이 홈리스이고, 수시로 공급된다는 탄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 사업은 공급 부족, 특히 매입임대주택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고질적으로 겪고 있다. 정부는 작년말에서 올해 초에 이르도록 쪽방과 노후고시원 입주자에 대한 수요조사를 진행하였고, 이를 통해 이주수요 6283호를 발굴하였는데, 이는 대기기간 증가의 문제로 비화되고 있다.

더욱이 2020년 7월 29일 지침 개정으로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거나 침수피해 우려가 있는 반지하(지하층) 거주자"가 지원대상으로 추가되어 물량 확대의 필요는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태다. 지하거주가구는 36만 3896가구(2015년 기준)로, 지난 지침 개정으로 기존 입주대상자 규모와 유사한 수의 사람들이 정책대상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2019년도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 공급 물량은 3905호로 전년도(1638호)보다 2배 이상 늘었다. 그러나 3905호 중 전세임대주택, 즉 민간 주택에 보증금을 지원하는 방식의 지원이 3194호로 대다수를 차지할 뿐, 공공이 소유하는 매입임대주택은 2016년 530호에서 2019년 711호로 거의 늘지 않았다. 주택 물색의 어려움, 그에 따른 주택의 질 저하, 재계약 시기 임대료 상승 등 전세임대주택의 문제는 익히 알려진 바다. 공공주택 공급의 부족은 물론 공급된 주택마저도 질과 점유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홈리스 추모주간을 보내고 있다. 집이 없어 생긴 죽음을 추모하는 일주일을 지나는 중이다. 반복되는 애도만큼 무력하고 무책임한 것도 없다. 그러나 감염병의 진로는 그 끝을 알 수 없고, 홈리스에 대한 당국의 주거대책 또한 미궁 속에 있다. 정부와 서울시는 더 이상 홈리스들을 향해 코로나19 위기를 맨몸으로 넘어서라 주문하며 그들의 삶과 죽음을 저울질 해서는 안 된다. 홈리스들에 있어 코로나 위기는 바로 주거의 위기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백신은 이미 당국의 손에 쥐어져 있다.
 
2020 홈리스 추모제 :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2020 홈리스 추모제 :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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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홈리스 추모제 기고] 
① 강제 퇴거에 취업 제한까지... 홈리스는 범죄자가 아닙니다 http://omn.kr/1qwok
② 또 다른 절망, 코로나19 위험이 쪽방촌으로 왔다 http://omn.kr/1qxkq
③ '급식대란'의 책임, 코로나에 물을 수 없다 http://omn.kr/1qy9x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홈리스행동’의 활동가 이동현님이 작성하셨습니다. 이 기사는 또한 비마이너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홈리스, #쪽방, #추모, #인권
댓글1

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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