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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많이 걸었다. 피곤한 덕분에 잠에 푹 빠져들었다. 그래서일까, 산속에서 맞는 아침이 싱그럽게 다가온다. 지인이 끓여준 커피 향도 여느 때와 다르다. 매일 아침이 오늘과 같다면 바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지인을 찾아온 사람을 만났다. 오래 전에 독일을 떠나이곳에 정착했다고 한다. 동네를 다니며 궂은 일을 하는 핸디맨(handy man)이다. 젊어 보인다고 하니 노인 연금을 받을 나이가 넘었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나이에 비해 어려 보인다는 말도 덧붙인다.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 자유로운 삶을 지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색소폰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에게서 색소폰을 받았다고 한다. 내가 색소폰을 연주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저것 묻는 것이 많다. 자기 집에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색소폰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자동차에 올랐다. 큼지막한 오래된 사륜 구동차다. 자동차 안에는 각종 연장이뒤섞여 있어 조수석만 간신히 비어 있다. 자동차는 털털거리며 웅덩이가 팬 비포장 도로를달린다. 야영장이 있다는 화살표를 따라 왼쪽 도로에 들어선다. 야영장 입구에는 빈자리가 없다는 안내판이 있다. 님빈을 찾는 관광객이 많다는 것을 새삼 떠올린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허름한 입구가 나온다.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 공동 구역이다. 입구에 들어서니 바나나 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가파른 언덕을 조금 오르니 집이 보인다. 규모가 크고 잘 지은 목조 건물이다. 바로 옆에는 새로 지은 작은 숙소도 있다. 빌려주는 집이라고 한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집이다. 경치가 좋을 수밖에 없다. 앞마당에서 경치를 보고 있으니 전망대에 와 있는 착각이 들 정도다. 멀리 내려 보이는 산들이 병풍처럼 초원을 감싸고 있다. 어제 보았던 님빈 바위가 멀리 내려 보인다. 잠시 들린다고 생각해 카메라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 풍광이다.  
   
집 안에 들어선다. 넓은 마룻바닥과 통나무로 만든 가구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독특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초등학생 정도 크기의 대형 스피커 두 개다. 자신이 통나무로 직접 만든 것이라며 자랑스러움을 감추지 않는다. 문득 색소폰을 핑계로 집 자랑을 하고 싶어 초대한 기분이 든다. 

독일에서 사진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사진가로 생활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필요한 곳을 찾아가 잡다한 일을 하며 생활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부족함을 찾아볼 수 없는 밝은 모습이다.   

집안과 마당에는 부처 조각들이 많다. 아는 스님이 매년 찾아와 함께 지낸다고도 한다. 불교에 나름대로 조예가 깊은 것 같다. 히피의 동네라고 불리는 님빈에서는 부처상이 많이 눈에 띈다. 선물 가게에서도 부처 조각이 유난히 많다. 부처도히피였을까, 물질을 추구하는 세상을 멀리하고 자신만의 삶을 추구하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히피의 동네 님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처상.
 히피의 동네 님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처상.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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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삶을 지내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은드럼 서클(Drum Circle)이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나누고 춤도 추는 모임이라고 한다. 지인과 함께 가기로 했다. 색소폰을 가지고 가라는 권유는 사양했다. 실력도 부족하지만, 분위기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저녁 시간에 맞추어 동네 중심가에 도착했다. 저녁은 잔디 볼링장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하기로했다. 볼링장에 들어서니 많은 사람이 볼링을 즐기고 있다. 호주에서 잔디 볼링은 주로 노인들이 즐긴다. 그러나 이곳에는 중장년층이 많다. 

식당에 들어섰다. 무대에서는 청년이 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있다. 문신으로 몸을 가린 여자가 주문을 받는다. 주문을 받으면서도 음악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기분파 직원이다. 히피의 동네 님빈에 와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노래를 들으며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기타와 노래 솜씨가 보통 이상의 실력이다. 기타 케이스 안에는 자신의 노래가 담긴 음반이 들어 있다. 자신의 노래가 담긴 음반을 팔고 있는 것이다. 노래를 들으며 박수 치는 지인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막연히 아는 사이라고 한다. 
 
 볼링 클럽 식당에서 노래하는 청년, 수준급이다.
 볼링 클럽 식당에서 노래하는 청년, 수준급이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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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지 않아서일까, 생각보다 한결 좋은 음식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드럼 서클이 모이는 장소로 걸음을 옮긴다. 카페 도착하니 드럼 소리가 요란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사람, 차를 마시며 분위기에 젖어 있는 사람들 틈에 함께 앉아음악에 빠져든다. 

서너 명의 젊은이가 정신없이 드럼을 두드린다. 원주민 청년이 통나무로 만든 원주민 악기 디저리두(didgeridoo)를 드럼 리듬에 맞춰 연주한다. 연주 솜씨가 보통을 넘는다. 내 바로 옆에서 드럼을 두드리는 아가씨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몸은 이곳에 있지만, 마음은 딴 세상에 있는, 황홀경에 빠진 모습으로 드럼과 하나가 되어 있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고 분위기가 고조 된다. 드럼을 앞장세워 동네 중심가로 자리를 옮긴다. 늦은 밤, 인적 드문 동네 한복판에서 드럼 리듬에 맞추어 이런저런 악기가 참여한다. 트럼본, 기타, 클라리넷을 비롯해 톱 연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 모두 음악과 하나가 되어 간다.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가지고 와서 자유롭게 참여하는 거리의 음악가.
 자신이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가지고 와서 자유롭게 참여하는 거리의 음악가.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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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시간까지 음악과춤 속에 섞여 보냈다. 주어진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비하는 삶을 만나 보았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면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 자유로움이 물씬 풍기는 것은 숨길 수 없다.

개발이라는 구호로 뒤덮여 있던 70년대, 나의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그 당시 잣대로 보면 퇴폐적인 삶의 모습이다. 지금도 정상적인 삶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인 삶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개발이라는 구호 아래 환경오염으로 지구를 신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개발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소비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사람과 지낸 님빈에서의 시간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결심을 하나 더 추가한다. 나의 잣대로 나와 다른 삶을 비판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드럼 서클이 모이는 카페, 카페 주인이 드럼 서클을 주도한다.
 드럼 서클이 모이는 카페, 카페 주인이 드럼 서클을 주도한다.
ⓒ 이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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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주 동포신문 '한호일보'에도 연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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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에서 300km 정도 북쪽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은퇴 생활하고 있습니다. 호주 여행과 시골 삶을 독자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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