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같은 분야에서 또는 같은 목적을 위해 서로 경쟁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라이벌의 어원은 강을 뜻하는 리버(River)의 라틴어 어원인 리파리아(Ripaira)와 강가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 이웃을 뜻하는 라발레스(Rivales)에서 비롯됐다. 평소에는 가까운 이웃이지만,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물의 소유권-강의 통행권 등을 놓고 불가피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관계를 의미한다.

여기서 라이벌은 적을 뜻하는 에너미(Enemy)와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라이벌이란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서로를 인정하고 발전하는 구도라 할 수 있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따위는 없고 그냥 적의나 악감정으로 가득차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인 관계라면 '앙숙'이나 '숙적'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라이벌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15일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KCC 이정현이 공을 바라보고 있다.

15일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KCC 이정현이 공을 바라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정현(전주 KCC)과 이관희(서울 삼성)의 관계는 과연 라이벌이라고 할수 있을까? 두 선수간의 불화는 농구계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져있을만큼 뿌리가 깊다. 연세대 1년 선후배이자 상무 농구단에서도 선후임 사이로 오랫동안 함께 농구해온 관계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은 농구판에서 알아주는 앙숙이 됐다. 이제는 두 선수가 만날 때마다 소속팀의 경기보다도 이들의 신경전과 충돌 여부가 더 관심을 끌 정도다.

이정현과 이관희는 이미 코트 위에서 여러번 충돌했다. 2017년 안양 KGC와 서울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는 이관희가 이정현을 밀착 수비하는 과정에서 이정현이 팔로 이관희를 밀어 넘어뜨리자, 격분한 이관희가 곧바로 일어나 팔꿈치로 이정현의 가슴을 밀었다. 이정현은 파울을 얻었고, 이관희는 퇴장당했다. 이 장면은 경기후에도 농구팬들 사이에서 크게 이슈가 됐고 두 사람의 불편한 관계가 본격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도 3년이 넘게 흘렀지만 두 선수의 관계는 여전히 냉랭하다. 한때 올스타전에서 두 선수가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장면도 나오며 사이가 회복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지만, 정작 이후로도 두 선수는 실전에서 마주칠 때마다 계속해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올시즌에도 9월 컵대회와 지난 5일 2라운드 맞대결에서 벌써 두 번이나 충돌한 바 있다. 5일 경기에선 두 선수의 매치업 상황 때 팔이 엉키자 이정현이 신경질적으로 이관희의 팔을 뿌리쳤고, 이관희가 발끈하여 삿대질을 하면서 둘이 거친 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두 선수는 이날 경기에서 나란히 23점을 올리며 맹활약했으나 경기는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접전 15일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삼성 이관희가 빈틈을 찾고 있다.

▲ 접전 15일 전북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0-2021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와 서울 삼성의 경기. 삼성 이관희가 빈틈을 찾고 있다. ⓒ 연합뉴스

 
KCC와 삼성은 지난 15일 열흘 만에 3라운드에서 다시 만났다. KCC는 이날 91-72로 승리하며 지난 대결의 패배를 복수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주목을 받았던 이정현과 이관희의 리턴매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정현이 약 22분을 뛰며 5점 4어시스트, 이관희가 약 25분을 뛰며 8점 5어시스트에 그쳤다. 일찌감치 점수차가 벌어지며 KCC 쪽으로 승부가 기운 탓에 주축 선수들을 무리시키지 않은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지난 경기의 영향을 의식한 듯 양팀 모두 이정현과 이관희의 매치업을 되도록 피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프로스포츠에서 라이벌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NBA의 매직 존슨 vs. 래리 버드, 축구의 리오넬 메시 vs.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처럼 높은 수준의 기량과 뚜렷한 개성을 지닌 라이벌들의 경쟁은 서로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며, 흥행과 화제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국내 프로농구에는 이런 화제성 있는 라이벌 구도가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래서 일부 미디어를 중심으로 이정현과 이관희의 특수한 관계를 '이슈메이킹' 차원에서 더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엄격한 선후배 관계와 학연-인맥으로 얽혀있는 좁은 농구판에서 이렇게 대놓고 으르렁거리는 관계를 보기 힘들다는 희소성과도 관련이 있다.

하지만 단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라이벌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이들의 갈등이 단지 자극적인 가십거리를 넘어 프로농구의 흥행이나 볼거리를 위하여 무슨 생산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80년대 NBA의 대표적인 라이벌로 꼽히는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는 선수 경력이나 출신 배경 모두 극과 극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만날 때마다 치열한 자존심 경쟁을 펼쳤지만, 코트 밖에서는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이였고 은퇴식까지 참석할만큼 깊은 우정을 나누었던 '절친'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 농구대잔치 시대를 풍미한 서장훈과 현주엽은 전성기 시절 당대를 대표하는 라이벌로 꼽혔지만 사적으로는 휘문중고교 1년 선후배이자 서로를 '농구인생의 동반자'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훌륭한 경쟁자의 존재가 있었기에 스타들은 상대를 뛰어 넘기 위하여 그만큼 더 분발해야 했고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로의 세계에서 진정한 라이벌의 가치란 바로 이런 관계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정현과 이관희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존중'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정현은 이관희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고, 이관희는 이정현의 이름조차 호명하기 싫어서 '그 선수'라고 지칭한다.

서로에 대한 노골적인 악감정만 가득한 선수들끼리 마주쳤을 때 겉보기에 승부욕은 불타오를지 몰라도, 정작 페어플레이나 동업자로서의 매너는 기대하기 어렵다. 경기중 도발과 신경전은 예사고 심지어 경기가 끝난 뒤에도 패자를 자극하는 세리머니를 하는 등 서로 스포츠맨십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동들이 둘 사이에 난무한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소속팀이나 KBL의 이미지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의 이정현과 이관희는 그저 앙숙에 불과할 뿐 건강한 의미의 라이벌이 아니다. 농구선수들의 대결이라면 우선 농구 그 자체로 기대감을 줘야하는데, 선수들의 감정적-물리적 충돌 여부로 더 이슈가 되는 것부터가 주객이 전도된 현상이다.

두 선수가 사적인 감정은 코트밖에서 해결하고, 코트에서는 오로지 페어플레이로 경쟁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팬들도 진정으로 박수를 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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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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