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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복소비는 '외부요인에 의해 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을 뜻하는 말입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여러 분야에서 보복소비가 이뤄졌다는 말이 들리는데요. 올해 내 지갑을 가장 많이 열게 한 일은 무엇이었는지 시민기자들의 이야길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다시 시작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남의 집 뒷마당 이야기가 아니다. 코로나19가 턱밑까지 조여들어 오고 있다. 가끔 가던 빵집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겨울을 맞아 제대로 날뛰기 시작한다. 지긋지긋한 코로나 세상. 그럼에도, 우리는 하루하루를 견뎌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코로나19는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마스크가 없으면 낯설고, 핸드크림보다 손 소독제를 더 많이 사용한다. 집에서 마시는 술이 늘다 보니 보일러실에는 엿으로 바꾸어도 한참 먹을 분량의 술병이 나뒹군다. 술병 옆으로는 배달시켜 먹은 일회용 용기가 병든 지구의 표정을 하고 수북히 쌓여 있다.

내 손으로 거실에 PC방을 차린 이유
 
코로나 19로 인해 PC방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거실에 PC방을 만들었다.
▲ 거실에 차린 PC방-1 코로나 19로 인해 PC방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거실에 PC방을 만들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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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만이 아니다. 외출과 여행이 제약을 받다 보니 집안에서 마찰과 충돌이 생기게 마련이다. 한창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성장기 사내아이 둘을 키우는 집은 상상 초월이다.

축구라도 시킬 만큼 커다란 거실이라면. 탁구장이라도 들여놓을 수 있는 커다란 방이 있다면. 아비에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서로 툭탁거리다 지친 아이들은 심심한 나머지 삶의 방향성을 상실한 표정으로, 똑같은 만화책을 세 번째 읽고 있다.

아이들에게는 활동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고, 견문을 넓히는 여행도 필수다. 아무리 코로나가 판을 친다 해도 부모로서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불과 이삼 년만 지나도 사춘기랍시고 방에 틀어박혀 대화조차 어색한 관계가 될지 모른다. 코로나 따위에게 소중한 시간을 빼앗길 수는 없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얼마 전, 아이들에게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쳤다. 안 그래도 게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아이들에게 게임을 가르친다고? 부모의 시야 밖에서 몰래 하는 것보다는 양지에서 함께하며 소통의 시간을 갖자는 것이 나의 교육 방침이다. 더군다나 우리 아이들은 아직 스마트폰이 없어서(안 사주니까) 게임에 중독될 정도는 아니다.

아이들은 주말이 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아빠와 함께 PC방에 가서 짜장라면을 시켜 먹으며 오전 내내 스타크래프트를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다. 행복은 오래 갈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인가.

한 달쯤 지나서 코로나가 급속히 번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소원은 코로나가 하루빨리 종식되어 인류에 평화가 오는 것보다, 예전처럼 PC방에 가는 것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끈질기게 확산되고 있었다.
 
거실에 PC 두대를 설치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다.
▲ 거실에 차린 PC방-2 거실에 PC 두대를 설치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하며 코로나를 극복하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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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책은 하나뿐이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자. PC방에 갈 수 없으니, 집에 PC방을 차리기로 했다. 회식이나 술자리가 눈에 확 띄게 줄어든 관계로 지갑은 충분히 여유가 있다. 중고 컴퓨터 두 대와 PC방 전용 모니터 두 개를 할부로 과감히 질렀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사용하지 않는 스피커도 얻었다. 식탁 대용으로 쓰던 2인용 책상을 거실로 옮겨 컴퓨터를 설치했다. 아이들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집안에 PC방을 만들고, 예전처럼 주말이 되면 아이들과 스타크래프트를 한다. '마린'과 '질럿'에 감정을 이입한 아이들은 맵(map) 위를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가끔 끓여주는 짜장라면이나 구운 오징어는 원가 수준으로 용돈에서 삭감했다. 어릴 적부터 경제 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중요하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공짜도 없는 법이니까. 소원을 성취한 아이들에게 불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타크래프트를 빌미로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도 기꺼이 해낸다.

떠날 수 없다면 주사위를 던져라 

코로나가 장기화하며 생긴 또 하나의 욕구불만은 여행이다. 이는 비단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로, 특별한 약속이 없는 한 국내로 거의 매주 여행을 떠나곤 했다.

전국 각지의 명소나 풍경을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지난 십 년 동안 우리나라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한라산과 지리산까지 함께 올랐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꼼짝없이 발이 묶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갈수 없어서 보드게임을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 세계 여행 대신 모두의 마블 코로나19로 인해 여행을 갈수 없어서 보드게임을 하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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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또 지갑을 살짝 열었다. 세계를 여행하는 보드게임을 장만했다. 어렸을 적, 좀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으레 있던 'ㅇㅇ마블'의 개선판이다.

두 개의 주사위가 가리키는 숫자만큼 우리는 전 세계를 향해 걸어 나간다. 땅도 사고 건물도 올리고,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 같은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를 건설하며(물론 코로나가 사라진다 해도 쉽게 데려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대리만족을 느꼈다.

처음에는 옛날 기억도 소환되고, 통행료를 받아 재산 불리는 재미가 나름 쏠쏠해서 흔쾌히 여행에 동참했다. 게임인데도 서울의 땅값과 건설비용이 가장 비싸서, 서로 차지하려고 경쟁하는 것이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근데 한번 게임 할 때마다 두세 시간쯤 걸리고, 하고 나면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결려서 진짜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피곤했다. 큰아이가 워낙 좋아해서 요즘은 한 달에 한두 번 둘러앉지만, 그래도 매번 여행 분위기는 느껴진다.
  
몸으로 발산해야 하는 에너지를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두뇌로 발산하고, 발로 누비며 느껴야 하는 세계를 말을 통해 움직인다. 어찌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수동적으로 통제되고 억눌려 있다는 기분에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방법이 또 있을까?

코로나를 종식시킬 만한 능력을 지닌 아빠가 아니라면, 이번 기회에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를 생각해보자. 어릴 적에 하던 십 원짜리 동전 농구나 책받침을 오려서 볼펜 끝으로 튕기던 축구, 스프링 노트에 볼펜을 매달아 스윙하던 야구나 지우개 레슬링 같은 추억의 놀이들. 아이들은 생각보다 이런 고전적인 놀이를 좋아한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서 인류는 코로나를 극복할 것이다. 하지만 언택트로 대표되는 생활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집안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출 절호의 기회다. 코로나가 모든 면에서 부정적일지라도,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밝은 면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 난국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태그:#코로나19, #스타크래프트, #보드게임, #PC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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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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