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팀의 지휘봉을 잡고 4년간 FA컵 우승과 준우승 각 1회, 2년 연속 리그 준우승, 이 정도면 웬만한 감독들에겐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성적표다. 하지만 그 자리가 바로 울산 현대의 감독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그것도 K리그 역대 최고 수준의 투자와 선수층을 지원받고도 정상보다 2인자에 머무르는 경우가 더 많았다면 냉혹한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바로 울산 현대의 김도훈 감독 이야기다.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이 12일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일본 빗셀 고베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도훈 울산 현대 감독이 12일 카타르 도하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일본 빗셀 고베와의 준결승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공격수이자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인 김 감독은 인천 유나이티드 사령탑을 거쳐 2017년부터 울산의 지휘봉을 잡았다. 첫해부터 FA컵에서 정상에 오르며 지도자 데뷔 첫 우승으로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 했지만 이듬해는 결승에서 대구FC에 덜미를 잡혀 2연패에 실패했고, K리그에서는 '현대가 라이벌' 전북 현대의 벽을 넘지 못하고 2년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울산 역사상 최고의 복장

김도훈 감독은 울산 역사상 최고의 복장(福將)으로도 꼽힌다. 김호-김정남-차범근-고재욱-김호곤 등 K리그를 대표하는 여러 명장들이 거쳐 갔던 울산의 역대 감독중에서도 재임기간 가장 빵빵한 구단 지원과 전력보강을 등에 업은 감독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이청용-조현우-홍철-박주호-원두재-주니오-비욘 존슨-불투이스 등 국내와 외국인 선수들을 가리지 않는 울산의 호화 진용은 가히 국가대표급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정도면 매년 우승트로피에 '당연히' 도전해야 하는 전력이었다.

김도훈 감독이 이끈 4년간 울산의 K리그 순위는 4-3-2-2로 꾸준히 상위권에 머물렀고, FA컵 결승에도 3번이나 진출했으나 들어올린 트로피는 단 한번, 우승을 위한 번번이 마지막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고 발목이 잡히며 '새가슴 축구'라는 오명을 써야만했다. 올 시즌 내내 양강구도를 형성했던 전북과 총 5번의 맞대결에서 단 한번도(1무 4패) 이기지 못하고 리그와 FA컵 타이틀을 모두 내준 장면은 가장 치명타였다.

특히 중요한 경기마다 악수에 가까운 용병술로 경기를 망쳤던 김도훈 감독의 지도력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우승이 멀어지면서 김도훈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 논란으로 언론과도 갈등을 빚었고, 코칭스태프가 경기중 부상당하여 치료받던 선수를 억지로 그라운드에 밀어넣는 장면이 도마에 오르며 울산 팬들 사이에서도 김도훈 체제를 바라보는 여론이 악화된 상황이었다.

울산은 국내 무대에서 빈손으로 시즌을 마감한 뒤 다시 2020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무대에 나서야 했다. 올해를 끝으로 울산과의 계약이 만료되는 김도훈 감독이 사실상 울산 지휘봉을 잡고 나서는 '라스트 댄스'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립지역인 카타르에서 재개된 ACL를 앞두고 울산을 바라보는 기대치는 솔직히 그리 높지 않았다. 국내 무대에서 3년연속 무관의 충격이 준 후유증이 커보인 데다, 김도훈 감독은 같은 기간 ACL에서도 16강이 최고성적이었을 만큼 아시아무대에서도 크게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 울산 전력의 핵심인 골키퍼 조현우가 국가대표 소집기간동안 벌어진 코로나19 확산 후유증으로 ACL에 불참하는 전력누수까지 겹쳤다. 조현우는 최근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선수 보호 차원에서 끝내 이번 ACL 명단에서는 제외됐다. 사실상 우승보다는 최소한의 자존심만 지키고 큰 탈없이 무사히 대회를 마치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울산은 ACL에서 보란 듯이 반전 드라마를 쓰고 있다. 울산은 ACL에서 조별리그부터 무려 8경기 무패행진(7승 1무)을 달리며 어느덧 4강까지 진출했다. 김도훈호 출범 이후 ACL 최고성적이다. 전북과 서울이 조별리그에서 탈락했고, 수원이 8강에서 승부차기 끝에 고배를 마시며 울산은 이제 K리그 4팀중 이제 유일한 생존팀이 됐다.

울산은 단판승부로 치러지고 있는 ACL 토너먼트 16강에서 멜버른 빅토리(호주)를 3-0, 8강에서는 베이징 궈안(중국)을 2-0으로 각각 꺾었다. 울산이 ACL에서 4강에 오른 것은 역대 세 번째(2006·2012·2020년)이며 김호곤 감독 시절 정상에 오른 지난 2012년 이후로는 무려 8년 만에 우승 도전이다.

현재로서 울산은 ACL의 가장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울산은 조별리그 6경기와 토너먼트를 합쳐 8경기에서 무려 19골을 몰아쳤다. 챔피언스리그 재개 이후 상하이선화(중국)와 조별리그 F조 2차전(3-1)부터 베이징과의 8강전까지 7경기 연속 멀티골을 터트렸다.

2013년 ACL 우승팀인 광저우헝다(중국)의  6경기 연속을 넘어선 신기록이기도 하다. 주니오와 비욘 존슨, 윤빛가람이 각각 4골씩을 기록했고, 김인성(2골), 이상헌, 원두재, 김기희, 박정인(이상 1골) 등도 두루 골맛을 봤을 만큼 득점분포가 고르다는 것도 강점이다.

공격에 가려졌지만 수비도 8경기에서 5실점으로 0점대 실점률에 불과하고 최근 토너먼트 2경기에서는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하는 등 무려 210분 연속 무실점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최대 불안요소로 꼽히던 국가대표 골키퍼 조현우의 공백을 올시즌 리그 경기 출전이 전무했던 백업 키퍼 조수혁이 완벽하게 메우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이다. 공수 모두 이근호-곽태휘-김신욱 등을 주축으로 하여 '철퇴축구'로 아시아 정상을 제패했던 2012년과 비슷한 흐름이다.

울산이 13일 4강에서 만나게 된 빗셀 고베(일본)는 공교롭게도 김도훈 감독이 현역 시절에 활약했던 친정팀이기도 하다. 김 감독은 1998-99년 2시즌간 고베의 주전 공격수로 활약하며 58경기 27골이라는 훌륭한 성적을 기록한 바 있다. ACL 무대에는 올해 처음 진출한 고베는 8강에서 수원을 승부차기 끝에 간신히 누르고 준결승에 올라오며 구단 역대 최고성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고베 중원의 핵을 담당하던 스페인 국가대표 출신 이니에스타가 부상으로 준결승전 출전이 불투명한 것을 비롯하여 여러 선수들이 부상에 시달리고 있어서 전력누수가 크다는 것은, 이미 전력이나 체력에서 앞서는 울산에게 더욱 호재가 될수 있다.

김도훈 감독은 그동안 울산의 지휘봉을 잡으며 찬사보다는 비판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레알 마드리드나 유벤투스처럼 매년 기대치가 우승에 맞춰져 있는 빅클럽 감독의 숙명이라고 할 만하다. 냉정히 말하면 '선수빨'로 그나마 성적을 냈다는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김 감독을 바라보는 평가였다.

하지만 올해 ACL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면 김 감독을 바라보는 평가는 다시 한 번 뒤집힐 수 있다. 현실적으로 김 감독이 내년에 다시 울산의 지휘봉을 잡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시아를 제패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영원히 남는다. 김도훈 감독의 향후 지도자 인생에 있어서도 재기와 명예회복을 위한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김도훈과 울산의 라스트 댄스는 과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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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현대 김도훈 AC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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