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대중문화 방면에도 미·중 갈등의 불똥이 튀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코리아소사이어티의 밴플리트상 수상식 때 한미동맹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을 언급한 일을 놓고 중국 국민들이 SNS로 공격을 가하더니, 최근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 타이완 국기가 등장한 일을 두고 중국인들이 비판을 쏟아 붓고 있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한 장면.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 한 장면. ⓒ SBS

 
지난 6일 <런닝맨>에 등장한 1980년대 보드게임 부루마블(Blue Marble, 지구)이 사태의 발단이 됐다. 세계 도시들을 순회하며 자산 투자 게임을 하는 이 보드판의 출발점 바로 옆에 타이완 국기가 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중국의 오성홍기가 그려 있었다.
 
이 장면이 중국 누리꾼들을 자극했다. 타이완 국기의 등장이 타이완의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것처럼 비친 것이다. 방송을 시청한 중국인들은 타이완 국기를 보고 "중국은 하나뿐"이라며 <런닝맨>을 더이상 시청하지 않겠다고 분을 터뜨렸다.

2015년 11월 텔레비전 화면에서 타이완 국기를 흔든 트와이스 멤버 쯔위를 상대로 분노를 표했던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중국인들이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한 장면.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한 장면. ⓒ SBS

 
한국 대중예술에 대한 중국 시청자들의 비판이 잦아지는 것은 한류가 그만큼 확산됐음을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중국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으로 인한 미·중 갈등이 한국의 정치·경제뿐 아니라 문화·예술 등에도 침투하는 최근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의 정통성이 자국에 있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은 홍콩·마카오·티베트·신장위구르와 관련해서도 이 원칙을 내세우지만, 타이완(대만·중화민국)과 관련해서는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이는 홍콩·마카오·티베트·신장위구르와 달리 타이완은 국가 형태를 갖추고 있고 경제·군사적 역량이 상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이 타이완을 경유하는 일이 특히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이완은 이스라엘이나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미국의 비호를 많이 받는 국가다. 중국공산당과의 전쟁인 국공내전에 패해 타이완섬으로 영토가 축소된 1949년 이후로도 중화민국은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지위를 유지했다. 이 상태는 1971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그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 유지됐다. 중화민국이 오랫동안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중화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지지해줬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베트남전쟁 부진으로 인해 1968년부터 곤경에 빠진 미국은 1969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체결할 때 미국·소련·영국·프랑스의 핵 보유와 더불어 중국의 핵 보유를 예외적으로 승인해줬다. 그런 뒤 1971년에 타이완의 상임이사국 지위를 빼앗아 중국에 줬다. 1972년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양국의 데탕트(화해)를 심화시켰다. 이 시기에는 미·중 탁구 경기로 상징되는 핑퐁 외교가 발전했다.
 
그렇지만 정식 수교는 1979년에 가서야 성사됐다. 시간이 오래 걸린 것은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미련 때문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정통성을 전제로 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선뜻 인정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정치·군사적 필요 때문에 중국과 손을 잡으면서도 타이완을 섣불리 내칠 수 없는 미국의 처지를 반영하는 장면이었다.
 
미국의 미련은 또 다른 장면들로도 나타났다. 미국은 1979년 1월 중국과 수교하면서 타이완과의 상호방위조약을 폐기했다. 하지만 그해 4월 타이완관계법(대만관계법)이라는 법률이 미국 의회를 통과했다. 타이완의 평화 유지를 위해 방위물자를 제공하고 타이완 문제에 개입할 근거를 남기는 법률이었다.
 
미국은 이듬해인 1980년에는 타이완과의 국교 회복에 근접하는 조치들을 시행했다. 1년 전에 헤어진 타이완과 준외교 관계를 체결한 것이다. 양국은 대사관을 대신할 기관들을 상대국에 설치했다. 미국은 타이베이와 가오슝에 타이완미국연구소를 설치하고, 타이완은 워싱턴에 타이베이경제문화대표부를, 12개 도시에 타이베이경제문화사무소를 설치했다.
 
미국이 이렇게 한 이유는 베트남전쟁 패배를 만회하고 아시아·태평양에 대한 영향력 유지를 위해 중국과 협력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중국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이완섬은 작지만, 일본열도-오키나와와 필리핀-괌을 잇는 중간 지역이다.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차단하는 동시에 미국의 서태평양 방어선을 이어주는 지역인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지이기에,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해주면서도 타이완과의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타이완해협 양쪽 연안에 있는 중국과 타이완의 양안 관계는 항상 긴장감을 띨 수밖에 없었다. 중국을 선택한 듯하면서도 타이완의 손을 놓지 않는 미국의 '전략적 모호성' 때문에 그런 긴장관계가 배가될 수밖에 없었다.
 
양안의 긴장은 시진핑이 국가주석이 된 2013년부터 한층 더 팽팽해지고 있다. 그가 '일대일로'로 표현되는 공격적인 해외 팽창정책에 착수한 것도 원인 중 하나였다.
 
여기에 더해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도 원인이었다. 그해 11월 8일 당선된 트럼프는 12월 2일 차이잉원 타이완 총통과 전화 통화를 하는 방법으로 중국의 신경을 자극했다. 타이완과 국가 대 국가 관계를 할 듯한 액션을 취한 것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할 수도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던 것이다. 취임 전부터 이랬던 트럼프가 중국을 압박하고 타이완을 두둔하면서 양안의 긴장감은 한층 뜨거워지게 됐다.
 
핑퐁외교 이전과 이후, 그리고 트럼프 당선 이후를 관통하는 공통점은 미국이 타이완을 지렛대로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 뒤에 미중관계가 적대적이 됐기 때문에 타이완을 통한 미국의 대중국 견제는 앞으로도 계속 치열할 수밖에 없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그리고 한국

양안에서 조성된 불똥들이 한국에 튀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 친미 진영 중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는 한국이고 한·중 교류가 활발하다 보니, 특히 그렇다.
 
시진핑 주석은 1국가 2체제의 일국양제 방식으로 타이완을 통일하겠다고 하면서도,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반국가분열법에 의거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타이완을 위협하고 있다. 평화 통일을 추구하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 사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전쟁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의 미국과 중국은 전쟁만큼은 가급적 억제하는 방향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볼 때, 타이완과 전쟁을 벌이면 홍콩은 물론이고 신장위구르·티베트마저 동요할 가능성이 크다. 안그래도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의해 세계 곳곳의 대중국 포위망이 촘촘해지는 마당에 자국의 서쪽·남쪽·동쪽을 동시에 위험하게 하는 일만큼은 가급적 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중국의 처지다.
 
미국 입장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자극하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1949년 이래 일관되게 유지되는 미국의 정책은 중국과 타이완의 싸움을 붙이는 게 아니라 타이완의 존재 자체를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이다. 양안의 긴장을 고조시키되 전쟁만큼은 최대한 억제하자는 것이 미국의 일관된 태도다.
 
이처럼 미·중 양국 정부가 긴장감을 조성하면서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한 긴장감은 정치·군사가 아닌 경제·문화·예술 등을 통해 상당부분 해소될 수밖에 없다.

중국·타이완·미국의 정부들이 긴장을 고조시키면서도 전쟁을 자제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나서서 설전이라도 벌이지 않으면 긴장감이 해소되기 힘든 여건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중국 국민들이 한국 예능 프로그램이나 대중문화 예술인들을 더욱 더 민감하게 관찰하는 데는 이런 여건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런닝맨 부루마블 하나의 중국 타이완 양안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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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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