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람 폭행 관련 기자회견 갖는 이택근 넥센 히어로즈 이택근이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문우람 폭행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택근은 2015년 같은 팀 후배인 문우람을 폭행한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이택근 ⓒ 연합뉴스

 
프로야구 선수 이택근이 전 소속팀인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충격적인 내부 폭로를 단행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히어로즈 구단이 이에 대해 정면 반박하며 전혀 다른 주장을 하고 있어서 양측의 진실 공방이 불가피해졌다.

최근 이택근이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키움 구단과 관계자에 대한 '품위 손상 징계 요구서'를 제출한 사실이 알려졌다. 히어로즈 구단이 지난해 6월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캐치볼 논란 영상을 촬영한 제보자를 CCTV를 통해 색출하려 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른바 구단이 내부고발자를 찾기 위하여 '사찰'을 저질렀다는 것인데, 사실로 드러날 경우 큰 후폭풍이 예상된다.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택근과 히어로즈 구단간 '애증의 관계'부터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이택근은 히어로즈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히어로즈의 전신 격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1999년 지명-고려대 졸업후 2003년 데뷔)부터 인연을 맺어 잠시 LG 트윈스(2010-11)으로 이적했던 2년을 제외하면 내내 히어로즈 구단에서만 선수생활을 보낸 팀의 상징과 같은 선수였다.

KBO리그 통산 1651경기에서 타율 .302, 136홈런, 773타점을 기록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국가대표로 한국야구가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따내는 데도 기여했다. 전성기였던 2011년 히어로즈와 4년 총액 50억의 특급계약을 체결하며 친정팀에 금의환향한 뒤 주장을 맡는 등 팀에 공헌했다. 한때는 히어로즈에서 영구결번이 나온다면 1순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할만큼 오랫동안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기량이 하락면서도 팀내 입지가 점점 줄어들었고 특히 2018년 팀 후배 문우람의 폭행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이택근과 히어로즈의 탄탄한 관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택근은 훈육을 명분으로 후배 문우람을 배트로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며 KBO에서 36경기 출전 정지를 받았고 법원에서도 유죄가 인정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택근은 2020시즌을 앞두고 전년보다 90%나 삭감된 연봉 5000만 원에 재계약하며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지만, 1군에서 고작 2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193(57타수 11안타)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는 데 그쳤다. 이택근을 아끼던 이장석 대표체제가 몰락하면서 바뀐 구단 수뇌부에 이택근은 전성기가 지나고 이미지도 좋지 않은 평범한 노장선수에 불과했다.

히어로즈는 결국 지난 11월 선수단 개편 방침에 따라 이택근에게 재계약 불가 의사를 밝히고 방출을 통보했다. 이택근은 조용히 현역 생활을 마감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구단 차원의 공식 은퇴식은 없었지만 이미 지난 10월에 선수단이 자발적으로 이택근의 은퇴식을 치러준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구단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스타였던 선수와의 마지막 작별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초라했다.

하지만 이택근과 히어로즈의 악연은 끝나지 않았다. 이택근은 히어로즈 소속이었던  지난 8월에도 구단에 두 차례나 내용증명을 보내 자신이 구단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KBO에 품위손상 징계요청서까지 제출하면서 사실상 히어로즈 구단과는 완전히 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넜다. 선수가 구단을 상대로 KBO의 징계를 요청한 것은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사건이고, 그만큼 이택근과 히어로즈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키움 구단은 지난해 6월 허민 히어로즈 이사회 의장의 캐치볼 논란 영상이 외부로 공개되면서 큰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허민 의장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사적인 의도로 프로 선수들을 불러 캐치볼을 한 것은 명백한 갑질에 해당하고, '구단 사유화' 논란에 불을 붙이는 계기가 됐다. 당시 관련 영상을 촬영한 제보자는 바로 이택근의 팬으로 알려졌다.

이택근의 주장에 따르면 구단이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CCTV를 확인한 것은 물론이고 이택근에게도 제보자의 신원에 대하여 추궁했다는 것이다. 이택근은 방송사에 김치현 단장과의 대화가 담긴 녹취록까지 공개하기도 했다. 이택근은 야구인들을 위해서라도 이 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해 키움 구단과 관계자에 대한 품위 손상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다는 입장이다.

한편 히어로즈 구단은 이택근의 주장에 반박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히어로즈 구단은 이택근이 사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오히려 좋지 않은 의도를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단 구단은 CCTV를 확인한 것이나 단장이 이택근에게 문의한 것은 모두 사실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CCTV의 경우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에서 해당 영상이 촬영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보안' 차원에서 확인한 것이고, 영상을 촬영한 팬에게도 어떠한 행위도 저지르지 않았기에 '팬을 사찰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이택근에 문의한 것도 시기적으로 캐치볼 논란이 한참 지나고 난 뒤에 김치현 단장이 개인적인 궁금증 차원에서 물어본 정도에 불과하고, 아무리 구단이라도 선수에게 야구와 관련되지 않은 일을 지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관련 해명과 더불어 히어로즈 구단은 "이택근 선수는 김치현 단장에게 시즌 후 코치직, KBO 규약상 감액된 출장 정지 기간의 급여 지급, 유학비 지원 등을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은 법적 공방과 별개로 KBO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진실을 규명해야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KBO도 전례가 없는 일인 만큼 어떤 사안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 구단과 선수 양측에 확인한 뒤 징계위원회를 열 사항인지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사건의 본질을 살피려면 히어로즈 구단 운영에 대한 투명성 의혹부터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번 사안 관련 히어로즈 구단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곱지 않다. 앞서 2014년 롯데 자이언츠는 CCTV 선수 사찰 논란으로 사장과 단장이 모두 사퇴하고 구단이 공식사과하는 등 큰 파문을 겪은 바 있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일반 팬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지난해 6월 캐치볼 논란을 겪은 히어로즈 구단은 올해 장정석-손혁 감독이 연이어 석연치 않게 사퇴하는 과정에서 '수뇌부의 전횡과 사유화'를 둘러싼 의혹에 휩싸였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들을 순 없었다. 이런 구단의 태도는 사안을 더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만일 뒤로는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하여 혈안이 됐고, 심지어 일반인 팬까지 사찰하려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택근과 법적인 공방과는 별개로, 히어로즈 구단 수뇌부가 직접 나서서 관련된 의혹에 관한 구체적 해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내놓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팬들의 불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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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히어로즈 이택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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