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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첼 바첼렛 유엔 인권 최고대표는 "이미 경제적으로 간신히 생존하고 있던 이들은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해 채택된 조치에 의해 너무도 쉽게 궁지에 내몰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단순한 우려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다.

모두의 동참을 요구하는 방역조치와 코로나로 인해 실시되는 정책들이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력은 일부의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으로 치부될 뿐 사회적 논의조차 없이 용인되고 있다.

방역 빌미로 홈리스 강제퇴거, 국제사회의 우려 실현하다

지난 5월 6일부터 심야시간대 부산역 대합실이 폐쇄됐다. 2011년 서울역 코레일이 자행했던 '노숙인 강제퇴거'와 같은 조치다. 방역을 핑계로 한 부산역 홈리스 강제퇴거 조치는 영구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초기였던 3월에는 서울역 대합실에 있던 의자들이 폐쇄됐다. 폐쇄는 주로 홈리스들이 쉬던 공간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용할 수 없게 된 의자에는 '방역을 위한 조치'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불 가능한 사람만 공공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명확한 차별과 혐오의 메시지를 내뿜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1년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조치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계속됐던 폭력이다. 서울역 대합실 의자에 앉아있는 홈리스들을 대상으로 "티켓을 보여달라", "티켓이 없으면 나가라"며 행해지는 퇴거조치는 일상적으로 존재해 왔다.

코로나19 시대, 그 일상의 폭력이 방역을 핑계로 증폭되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아주 조그마한 크기의 자리를 폐쇄하는 조치가 방역에 얼마나 효과를 낸다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공공역사 내 홈리스가 자주 머무는 장소를 폐쇄조치한 모습. "노숙자 상주지역"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공공역사 내 홈리스가 자주 머무는 장소를 폐쇄조치한 모습. "노숙자 상주지역"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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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2일, 구청 공무원과 역무원, 경찰이 쓰레기차 두 대를 동원해 서울역 광장에 출동했다. 그들은 서울역 광장에 있던 홈리스들의 이불, 옷가지를 포함한 물품들을 '행정대집행'하기 시작했다. 현장에 도착한 홈리스행동 활동가와 당사자들의 항의로 집행은 중단되었지만, 이미 많은 짐이 쓰레기 처분된 뒤였다.

'행정대집행'은 공익을 심각히 해하는 상황에 국한해 실시되며, 사전에 계고해야 한다. 하지만 당일 집행에는 어떠한 사전 계고도 없었다. 더욱이 거리홈리스들의 짐이 어떻게 공익을 심각하게 해한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공공기관에서 실시하는 행위가 공공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중구청은 당시의 문제제기에 대해 "민원 처리를 해야 해서 계고할 시간이 없었다", "당사자가 현장에 있으니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공익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지 않고 취하는 공공기관의 행위가 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얼마나 큰 폭력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전형이었다. 홈리스들의 짐을 강제로 처분하고 퇴거를 종용하는 폭력은 서울역뿐 아니라 용산역을 비롯한 거리홈리스들이 산재해 있는 곳곳에서 계속 발생하고 있다.
  
서울역 광장 내 거리홈리스의 물품을 임의철거하는 모습.
 서울역 광장 내 거리홈리스의 물품을 임의철거하는 모습.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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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과 서울역 광장을 비롯한 공공공간은 홈리스들이 삶을 유지하기 위해 이용하는 공간이자, 각종 범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이기도 하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코로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홈리스들에 대한 보호를 위해 "홈리스의 야영지 강제퇴거 또는 철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와 같은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을 넘어 우려를 고스란히 현실로 구현해내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실시된 정책, 홈리스에겐 차별과 혐오의 강화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코로나에 대응하기 위해 시행된 정책에서도 나타났다. 5월부터 8월까지 실시된 전 국민 대상 재난지원금 제도는 거리홈리스들로 하여금 재난지원금을 '기부' 처리하도록 사실상 강제하였다.

최초 신청 당시부터 조건으로 제시된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 신용카드는 거리홈리스에게 신청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동사무소를 통해 현장 신청 및 수령이 가능했지만, 신분증이 없는 경우엔 그마저도 불가했다. 또한 주민등록상 마지막 주소지에서 신청해야 하는 탓에 현재 노숙하고 있는 지역과 행정상 주소지가 다른 경우 교통비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재난지원금을 수령한다고 해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었다. 해당 지역에서만 사용해야 했기에 현재 생활권에선 사용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현금으로 지급되지 않았기에 가장 시급한 주거지를 구할 수도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정부 재난지원금 개선요구 기자회견. 그러나 당사자들의 요구가 제도에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정부 재난지원금 개선요구 기자회견. 그러나 당사자들의 요구가 제도에 반영되는 일은 없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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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30월,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해 구직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한 '코로나19 극복 희망일자리' 중 아동·청소년과 대면하게 되는 특정 사업 유형에서 노숙인의 참여를 제한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그리고 '노숙인'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 전산망을 이용하겠다고 덧붙였다.

노숙인은 '노숙인등의복지법' 상 주거가 없거나 쪽방·고시원·여인숙·만화방·PC방 등 집답지 못한 거처에 사는 사람에 대한 정의이지 범죄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상태는 범죄와 어떤 연관성이 없음에도, 이를 범죄화하여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국가 차원의 형벌화 조치였다. 복지지원 대상을 선별할 목적으로 전산망을 통해 노숙이력을 확인하겠다는 방침 역시 같은 맥락이다. 코로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팬데믹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홈리스 권리 침해는 방관
  
반대로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홈리스가 겪고 있는 권리침해에는 손을 놓고 있다. 과거부터 계속되어 온 명의범죄나 요양병원 유인입원, 염전 등지로의 강제노동 유인행위는 말할 것도 없다.

최근에는 노숙을 주제로 한 개인방송이 계속 늘고 있다. 방송별로 목적과 방식은 다르지만, 불러일으키는 효과는 다르지 않다. 다양한 정체성과 조건을 가진 사람들을 집단으로 명명하여 유포하게 되면 사회적 편견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방송이 어떤 방식과 목적을 갖고 있던, 다양한 권리 박탈 상태에 놓인 홈리스의 삶을 공중에 직접적인 '우스갯거리'로 조롱하거나 '동정 거리'로 소비할 뿐이다.

"찾아가 봤는데 없더라", "구경 가야겠다" 운운하는 개인방송에 달린 댓글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아무도 방문할 예정이 없는 상태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가 달가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개방된 공공공간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과 나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의 무게는 다르다.

더불어 "인간말종들", "일할 생각도 안 한다" 운운하는 다수의 댓글에서 차별과 혐오가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통제와 규제 없이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개인방송을 통해 나오는 수익은 모두 기업과 채널을 운영하는 개인에게 돌아간다. 빈곤 비지니스. 그들이 개인방송을 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모두가 안전한 사회를 위해
  
글을 쓰다 보니 총체적 난국이다. '바이러스에 맞선 내전'으로 표현되곤 하는 코로나19 시대, 사회·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최소한의 물자 지급은커녕 차별과 혐오를 강화해가는 사회에서, 과연 우리 모두는 안전할 수 있을까.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럴 수 있을 리 없다. 정부를 포함한 공공기관은 홈리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모든 행위를 즉각 멈추어야 한다.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서울역과 부산역을 비롯한 공공공간을 개방해야 한다. 그와 동시에 홈리스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바이러스에 안전한 집을 달라. 주거를 유지하기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달라.

가장 약한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가 바로 모두의 안전이 담보되는 사회다.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 2020 홈리스 추모제 홈리스의 사망은 열악한 복지지원체계에 따른 홈리스 생활의 장기화, 그에 따른 손상과 질병의 심화와 같은 연쇄반응의 결과다. 따라서 홈리스 추모제는 망인의 명복을 비는 것을 넘어, 예견되고 막을 수 있었던 죽음들을 더 이상 용인하지 말자고 사회에 호소하기 위한 자리가 되고 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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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2020 홈리스추모제 공동기획단'에 함께하고 있는 '빈곤사회연대'의 정성철 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 또한 비마이너에도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홈리스추모제, #홈리스, #노숙인, #인권,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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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행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약칭,노실사)'에서 전환, 2010년 출범한 단체입니다. 홈리스행동에서는 노숙,쪽방 등 홈리스 상태에 처한 이들과 함께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인권지킴이, 미디어매체활동 등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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