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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2018.9.8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린 8일 오전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 북광장에서 성 소수자 단체 회원과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시민이 플래카드를 들고 맞서고 있다. 2018.9.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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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머리가 짧은데 가슴이 있네. 남자야 여자야?"
"동성애 하면 지옥 간다!"
"부모님이 널 낳은 걸 후회하겠다."
"너희들이 태어난 것 자체가 재앙"

2018년 9월 8일, 제1회 인천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축제 반대 측으로부터 들었다는 얘기들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지난 2000년부터 서울을 시작으로 각 지역에서 매년 열고 있는 성소수자들 축제다. 성 정체성에 자긍심을 갖고 축제를 여는 그들에게 일부 사람들은 혐오로 응답했다. 당시 '차별금지법'이 있었다면, 그들이 혐오의 목소리에 괴로워할 필요가 있었을까. 결과는 좀 다르지 않았을까. 

지난 6월 29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차별금지법은 국가, 인종, 성별, 성적 지향, 가족형태, 장애 등의 이유로 차별을 금하는 법이다(관련 기사: 차별금지법 제정... 저 장혜영, 하다하다 이것까지 해봤습니다). 

차별금지법이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입법 권고로 2007년 정부가 처음으로 발의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발의했으나, 대부분 이후 임기만료로 폐기되거나 철회됐다. 일부 보수 개신교의 강한 저항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법안 논의에서 '성적 지향'은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보수 개신교 진영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하고 표현과 종교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런 주장에 과연 합리적인 근거가 뒷받침돼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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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제1회 제주 퀴어문화축제 행사 당시 모습.
 2018 제1회 제주 퀴어문화축제 행사 당시 모습.
ⓒ 제주퀴어문화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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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차별금지법은 동성애를 조장한다? NO!

차별금지법에 '성적 지향'이 포함된 것은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지 동성애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인간이 가진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 중 하나로, 특별히 조장한다고 늘거나 억압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보수 개신교 진영은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성적 지향이 아닌 '질병'이라는 낡은 관점을 고수한다. 하지만 미국정신의학회는 이미 1973년,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를 삭제하면서 동성애가 더 이상 질병이 아니라는 점을 천명했다. 세계정신의학회도 2016년 3월 성명을 통해 "주요 국제질병사인분류체계인 ICD010와 DSM-V에서는 동성애 대한 성적 지향, 끌림, 행동, 그리고 성별 정체성을 병리 현상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감각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2011년 미국정신의학회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선택한다는 감각을 느끼지 않거나, 아주 약하게 경험한다"고 말했다. 즉, 대부분 이성애자가 스스로 성적 지향을 적극적으로 선택해 이성애자가 되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자 역시 스스로 선택해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고 해서 이성애자였던 사람이 동성애자로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해외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차별금지법 반대진영에서는 영국이 평등법(차별금지법에 해당)을 2010년에 도입한 뒤 성소수자가 2500% 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주한영국대사관은 동성애자 비율을 처음 통계로 집계한 2014년에는 1.6%, 4년 뒤인 2018년에는 2.2%로 폭발적인 증가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 영국 정부 통계에 의하면 평등법 시행 전후 법적으로 성별을 바꾼 트랜스젠더 숫자도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2010년 260명→2012년 236명→2014년 244명).

② 차별금지법 생기면 동성애 반대설교 처벌? NO!

차별금지법 반대진영은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반대 설교와 자유로운 전도 활동을 처벌할 것이라며 필사적으로 반대한다. 과연 그럴까? 차별금지법안, 국가인권위원회가 입법 권고한 평등법 시안에는 법 적용을 받는 분야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 영역으로 구분했다.

1. 고용
2. 재화·용역의 공급이나 이용
3.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4. 행정·사법절차 및 서비스의 제공·이용


이처럼 종교는 법안에서 규정하는 영역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동성애 반대 설교를 한다고 차별금지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

​③ 차별금지법 생기면 전도 활동 처벌? 그 또한 NO!

'공공장소에서 전도 활동을 하면 처벌받는다'는 주장은 어떨까. 그것도 사실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에는 전도 활동을 처벌할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또 차별금지법이 없는 현재도, 전도 활동은 상황에 따라 처벌받을 수도 있다. 가령 대구지방법원은 지난 2017년 6월 지하철역과 전동차 내에서 성경을 읽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방식으로 선교 활동을 한 사람에게 경범죄처벌법을 적용해 벌금형을 선고했다.

반대로 노방전도를 한다고 무조건 처벌받는 것도 아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12월, 서울역 앞 공간에서 스피커를 사용해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전도 활동을 벌여 소란 행위로 기소된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사람의 전도 행위가 기독교 종교 활동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스피커 음량 크기도 경범죄처벌법의 '인근 소란 행위'로 인정할 정도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즉, 전도 활동은 차별금지법과 상관없이 기존 법체계에서 제한되기도 보호받기도 한다.

통상 억압받는 당사자는 종교가 아니라 바로 동성애자들이다. 동성애 혐오, 이들을 둘러싼 욕설과 폭력이야말로 동성애자들에 대한 억압적 행동이 아닐까. 지난 2018년 인천퀴어문화축제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방해와 폭력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축제에 참여하려 모인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은 심한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받아야 했다.

이에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의 김승섭 연구팀은 참가자들의 폭력 피해를 파악하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조사결과 보도자료).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욕설, 조롱, 비하, 신체적 폭력에 대한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우울증상, 급성스트레스장애 등 정신건강이 크게 악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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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경험한 언어적, 물리적, 성적 폭력 / 자료제공=고려대 김승섭 연구팀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경험한 언어적, 물리적, 성적 폭력 / 자료제공=고려대 김승섭 연구팀
ⓒ 자료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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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 시행한 해외사례 살펴보니... "성소수자 편견 줄어"

지난 9월 22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선 '차별금지법이 제정된 나라는 지금?'이라는 주제로 컨퍼런스가 열렸다. 프랑스, 영국, 뉴질랜드 등 주한 외국대사관 관계자들이 참가해 차별금지법을 이미 시행하고 있는 국가들 이야기를 공유했다.

프랑스는 1999년 동성 간 결합을 허용, 2013년에는 동성 결혼을 인정했다. 프랑스대사관 산드라 코엔 참사관은 "지난 7년 동안 프랑스 국민 관용도가 13% 증가했고 여성의 사회참여율도 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도 줄었다. 현재 프랑스에는 2000건 정도 동성 결합이 있고 7000건 정도 동성 결혼이 존재한다"며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은 없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차별 해소를 위한 노력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한 외국대사관 관계자들은, 각 나라의 차별금지법 제정 후 사회가 혼란으로 빠지기보다 다양성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진일보했다는 데 목소리를 모았다.

오늘 12월 10일은 '세계 인권의 날'이다.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삶의 현장에서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에 자아가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곤 한다.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문의 정신은, 바로 지금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구현돼야 한다.
 
오늘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문의 정신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구현돼야 한다.
 오늘 12월 10일은 세계인권의 날이다. "모든 사람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는 인권선언문의 정신은 바로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구현돼야 한다.
ⓒ 김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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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승섭 교수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과 기독교 인터넷신문 '뉴스앤조이' 기사 등을 참고했습니다.


태그:#차별금지법, #보수개신교, #동성애, #성소수자, #세계인권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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