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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일본 중부지방 대학에서 한일관계론, 동아시아정치론 등의 과목을 담당하고 있다. 필자가 담당하는 과목에서는 종종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리포트 과제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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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낸 또 다른 리포트는 일본 작가가 쓴 <풍도>라는 역사소설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이 조선과는 어떠한 관계 속에서 치루어진 사건이었냐는 리포트가 조선 중심의 과제였다면, 풍도에 대한 감상문은 고려시대가 배경이 되지만, 일본의 안전 보장에 관해 생각해보게 하는 과제물이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중, 가운데가 <풍도>라는 역사소설이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소설 중, 가운데가 <풍도>라는 역사소설이다.
ⓒ 김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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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작성은 두 가지 과제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인데, 통상 지켜보면 풍도라는 역사소설을 선택하는 수강생은 아주 드물다. 이 소설은 1963년에 쓰여졌는데, 좀 오래된 어투도 읽기 어렵지만, 일본인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고려와 몽골의 낯선 인명과 지명이 자주 등장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소위 '혐한'을 주제로 한 소설은 아니지만,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국제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이에 주목하면서, 이러한 역사소설을 통해 형성되는 혐한 의식을 두 차례로 나눠서 살펴보려고 한다.

원+고려가 연합해 일본을 친 사건... 당시 고려 '충신' 김방경 장군

풍도라는 소설은 원나라의 압력으로 일본을 침공할 수 밖에 없었던 고려의 고뇌를 그린 작품인데, 한국에도 번역돼 있다(1963년 작, 한국어판으로는 <검푸른 해협(소화, 2001년)>으로 번역되어 있다). 일본문학에서는 이런 소설을 서역(西域)소설이라 하여 구분한다. 중국대륙 서북에 위치한 지역을 무대로 한 소설이라는 뜻이다. 이노우에의 작품 중에는 돈황(敦煌), 루란(楼蘭) 같은 소설이 이러한 범위에 속한다.

일본의 고등학교 교과서 일본사에는, 원과 고려연합군이 일본을 침공하였으나 폭풍우로 인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당시 몽골로부터 침입을 받은 고려를 통해 항복을 종용하는 사신을 보낸 적도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이미 공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실제로 일본 침공 당시 쓰시마, 잇끼와 같은 섬은 무너지지만 큐슈에서는 방어태세를 구축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몽골군은 집단전투에 강하고 병기가 우수해 일본 측이 대부분 고전했다. 당시 원나라에 대한 고려와 남송 간의 내부 마찰을 지적하면서, 일본 측은 이를 '내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막부의 통제하에 큐슈지방의 무사들이 잘 싸웠기 때문에' 이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제2차대전 이전과 이후 교과서 내용에는 차이가 보인다. 이전에는 원과 고려연합군 침공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가미(神)가 일본을 보호한 것이고, 이 때문에 태풍이라는 자연현상이지만 가미가제(神風)가 일어났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소박한 사고이지만, 이를 가미(神)가 일본을 보호한 신국사상(神国思想)이라고 한다. 
 
몽고습래회사는 원나라의 일본 원정 당시에 원정군과 일본 무사들과의 싸움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것. 화살, 창, 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원정군과 싸우는 다케자키 스에나가
 몽고습래회사는 원나라의 일본 원정 당시에 원정군과 일본 무사들과의 싸움을 그림과 글로 기록한 것. 화살, 창, 포가 난무하는 가운데 원정군과 싸우는 다케자키 스에나가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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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역사교육에서, 신국사상은 충군애국의 '내셔널리즘', 즉 민족주의로 강조된다. 하지만 패전 뒤에는 달라진다. 신풍과 천황을 잇는 충군사상 대신에, 교육 내용이 바뀌면서는 '폭풍우'라는 자연현상에 방점을 둬 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러가지로 당시 상황을 검증해보니, 태풍급은 아니었고 폭풍우가 적합한 개념이라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안전보장과 관련해, 제2차대전 이전과 이후에 교육내용이 어떻게 바뀌어졌는가를 구별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몽골 제국이 영토를 확장시키는 방식은 피정령국을 통해 새롭게 판도를 바꿔온 것으로 고려를 통해 병력과 선박, 군량을 조달시키면서 일본을 점령하려는 계획을 추진시키고 있었다. 당시 고려는 오랫동안 몽골에 대한 항전으로 국토가 피폐해진 상태였는데, 설상가상으로 몽골에 의해 일본 침공을 위한 병참기지가 되고 고려 백성은 가렴주구(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 때 고려의 사령관이 충신으로 알려진 '도독사 김방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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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1212년~1300년)은 고려 말기 무신이자 문신이다. 전쟁기념관은 지난 2016년 1월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크게 물리친 김방경(金方慶) 장군을 2016년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사진 전쟁기념관 제공)
 김방경(1212년~1300년)은 고려 말기 무신이자 문신이다. 전쟁기념관은 지난 2016년 1월 고려시대 몽골의 침략을 크게 물리친 김방경(金方慶) 장군을 2016년 "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사진 전쟁기념관 제공)
ⓒ 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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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풍도에서는 고려의 고뇌를 짊어진 김방경 장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풍도(風濤)라는 소설 제목은 원의 세조 쿠빌라이가 고려에 건낸 조서 중에 등장하는 귀절에서 따왔다. 풍도는 바람과 파도라는 의미로, 바람이 일으키는 거센 파도라는 뜻이다. 일본 역사에서, 원과 고려연합군에 의한 일본 침공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국난이었기에 이에 합당한 제목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일본 기후교리츠대학 강사입니다.


태그:#혐한, #지한, #한일관계, #김방경,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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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외형적인 성장과 함께 그 내면에 자리잡은 성숙도를 여러가지 측면에서 고민하면서 관찰하고 있는 일본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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