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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감독을 가게 되었다. 도장 중에 만년 도장이라고 있다. 따로 인주를 묻히지 않아도 잉크가 도장 속에 있어 계속 찍을 수 있다. 아주 편리하다. 그걸 하나 만들려고 열쇠 가게를 찾았다.

몇 년 전 어머니 시골집 현관 도어록을 달아준 열쇠 수리공이 떠올랐다. 그래, 그 가게에 가보자. 기억을 더듬어 그곳으로 차를 몰았다. '마술 열쇠', 가게 이름이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자리가 맞는 것 같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게 안은 기억과 비슷했지만 그때 아저씨가 아니다. 며칠 걸린다 해서 맡겨 두었다가 이틀 후 다시 찾았다. 도장을 받고 나오는데 어쩐지 아쉬워서 이전 그분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여기 이전에 다리가 불편한 아저씨가 있었는데……"

마음씨는 좋아 보이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낯빛의 아저씨는 설핏 당황하는가 싶더니 가볍게 대답했다.

"아, 그 사람,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뿌렸습니다."
"아, 어떻게요. 그 분 참 잘해주셨는데..."


가게를 나오는데 알 수 없는 쓸쓸함과 먹먹함이 밀려들었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열쇠수리공과의 짧은 만남이 흘러갔다.

내가 가진 편견이 부끄러웠던 순간

어머니 시골집 현관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 열고 닫기가 불편했다. 그렇다 보니 열쇠로 열고 잠그기도 참 성가셨다. 도어록을 달고 싶은데 전문가 솜씨가 필요한 일이다. 시골이라 그런 사람을 구할 수 없었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도어록을 솜씨 좋게 설치한 모습을 자랑하듯 올린 열쇠 가게 블로그가 있었다. 마침 그렇게 멀지 않은 곳이었다. 열쇠 가게에서 블로그를 운영하다니 참 스마트하다. 전화를 걸어 사정을 말하자 흔쾌하게 가능하다고 하였다. 지금은 차편이 없다 해서 내가 태워드릴 수 있다고 하자 아주 좋다고 하였다.

그렇게 약속을 잡고 가게를 찾았는데 주인 아저씨는 뜻밖의 모습이었다. 첫눈에도 큰 병을 앓고 있는 듯 보였다. 얼굴 한쪽이 돌아가 있고 한쪽 손은 휘어져 있고 한쪽 다리는 절고 있었던 것이다.

'아차, 잘못 왔구나. 블로그에 속았구나. 이런 분이 어떻게 그런 정교한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러나 이미 약속을 했는데 이제 와서 안 되겠노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매정하게 가버릴까?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나는 시골집 사정을 다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귀가 맞지 않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며. 사실은 이건 따져 묻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과연 아저씨가 그 몸으로 되겠냐고. 그러나 아저씨는 눈을 꿈뻑거리며 듣고만 있다가 걱정하지 말라며 오히려 나를 다독거렸다. 그러더니 차에 얼른 타자고 하였다.

하, 이것 참, 모르겠다. 허탕을 치더라도 그냥 가보자. 날은 벌써 어둑해졌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아저씨는 어색함이 전혀 없는지 자기 이야기를 풀어내었다. 돌아갈 때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자기 말을 들어 줄 사람이 그리웠을까. 예의상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이 어두운 시골길을 어쩌자고 이 사람과 달리고 있는 걸까, 난감했다. 그러나 차에서 내려 도어록을 설치하는 모습은 뭐라고 할까, 그야말로 부드러우면서도 절제되어 있었다.

어두운 저녁이었고 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 까다로운데, 아저씨는 자신감이 있었고 또 용기가 있었다. 그렇다. 용기가 있었다. 잘못 건드리면 오히려 엉망이 되어 손을 쓸 수도 없다. 그러나 아저씨는 머뭇거림 없이 드릴로 구멍을 내고 나사를 조이고 문을 깎아내고, 덧대고, 아귀를 맞추고 마침내 도어록을 달았다. 멋있다. 사람이 이렇게 멋있어질 수 있구나.

오고 가는 차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저씨의 삶은 내게 조각 조각 남아 있다. 어느 대학의 연극 동아리 회장을 하고,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좋아하고, 그렇게 자유롭고 유쾌했던 당신의 한때, 어느 날 중풍을 맞아 쓰러진 한때, 그리고 열쇠수리공을 하려고 날마다 자신을 연마하는 한때까지. 아, 결혼을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모습까지. 나는 이렇게나마 기록해 두고 싶다. 이름 없는 한 위대한 평민을.

아이들 모두에게 마술같은 일이 벌어졌으면
 
   '마술 열쇠' 가게의 만년 도장
  "마술 열쇠" 가게의 만년 도장
ⓒ 하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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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열쇠' 가게에서 도장을 받아 들고 다음날 수능 감독을 서게 되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춰 세워도 수능이라는 의식은 치러야 한다. 이번에는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소독제를 뿌리고 서로를 조심해야 한다. 수험생은 홀로 문제 푸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고, 시험 감독관은 이를 돕고 감시해야 한다. 이 살벌한 풍경은 변함이 없다.

여기 이곳은 우리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가장 공정하고도 엄정한 자리이다. 밥벌이와 계급의 사다리를 결정하는. 누군가는 높은 점수를 얻어 이른바 하늘 대학으로 가는 사다리로 갈아탈 것이고 학교들은 그 사다리로 얼마나 보냈나로 호들갑을 떨겠지. 누군가는 찬사를 받고, 나머지 대부분은 물끄러미 그를 부러워하고, 자신을 깎아내리기도 하는 엄혹한 성인식이다.

수능 감독 중간 감독관은 학생 답안지에 감독관 확인 도장을 찍어야 한다. 편리한 만년 도장을 꺼내며 나는 그 열쇠수리공을 떠올렸다. 여기 수험생 중 아무도 열쇠수리공을 꿈꾸는 사람은 없겠지 하며 속으로 실없이 웃었다. 그리고 이어서 어떤 책에서 읽은 열쇠수리공 이야기를 떠올렸다.

한국의 한 기자가 덴마크 어느 웨이터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웨이터는 아들이 열쇠수리공을 한다며 무척 자랑스러워하더란다. 판검사 의사를 권할 생각도 없을 뿐더러 열쇠수리공이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고도 했다. 북유럽에서는 버스 운전기사나 벽돌공이나 교수나 임금 차이가 크지 않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대학은 필요한 사람들이 더 배우러 가는 곳일 테고. 그러니 그곳에서는 학교 시험에서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선생님에게 가서 살며시 물어볼 수도 있겠다. 내가 모르는 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게 본디 시험의 목적일 테니.

수험생 한 명 한 명 이름과 수험번호를 확인하고 답안지에 도장을 찍는다. 그러면서 불경스럽게 빈다. '마술 열쇠' 가게 도장을 받으면 한 명 한 명에게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지길. 이번 겨울, 고등학교 현수막에는 모두의 이름이 걸리길, 성적은 아무려면 어때, 모두가 잘 헤쳐나왔다고, 고생했노라고, 이제 새로운 세상을 꿈꾸자고, 열쇠수리공이 되어도 괜찮은 세상을 노래하자고.

마술 같은 이야기이지만, 그런 게 마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얼마 전 촛불을 들고 외치고, 노래하고, 춤추니 세상이 바뀌기 시작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마술은 시작되었고 우리 이제 새로운 노래와 춤을 추자. 한 명 한 명이 귀한 교육을, 세상을.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말한 책은 오연호 기자가 썼다. 제목에서 이렇게 묻는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오연호 지음, 오마이북(2014)


태그:#수능,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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