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9 12:56최종 업데이트 20.12.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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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기자는 나가시오!"

지금부터 30년 전인 1990년 6월 3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페어먼트 호텔의 한 회의실에 마련된 한·소 정상회담 브리핑 룸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음 날에는 이 호텔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수상 사이에 역사적인 첫 한·소 정상회담이 열리고, 이에 앞서 정상회담에 대한 배경 설명이 있을 예정이었다. 당시 이 브리핑 룸에는 서울에서 온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각사 워싱턴 특파원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큰 소리로 "한겨레 기자는 나가라"며 소리를 지른 대상은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이던 나, 그리고 당시 청와대를 담당하던 윤국한 기자였다.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뒤 <한겨레> 창간으로 14년 만에 언론에 복귀하여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는 시점이었다.

"당신이 뭔데 기자를 보고 나가라 마라 하느냐."

내가 항의했다. 처음 나는 '그'가 청와대 공보실 직원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청와대 출입기자 '간사'를 맡고 있던 <연합통신>(<연합뉴스> 전신) 기자였다. 세상에나! 같은 기자가 다른 기자더러 브리핑 룸을 나가라니, 이런 일이 대명천지에, 그것도 '언론의 자유'(수정헌법 1조)가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미국에서, 한국 기자들에 의해 벌어지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15년 전 <동아일보>에서 해직되기 전 같은 출입처에 나가던 낯익은 기자들도 있었다. 그들도 동조하고 있었다.

15년의 세월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해직, 막막한 생계, 투옥, 수배, 미국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슬픔, 뒤늦은 유학, 한겨레 창간...
 

청와대는 한·소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엠바고를 걸어 각사 편집국장에게 브리핑했다. 정상회담 전날 보도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로이터>, <유피아이>(UPI) 등 외신이 정상회담 개최 닷새 전에 이 사실을 보도했고, 심지어 미국 국무부가 한·소 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래서 <한겨레>는 외신 보도들을 모아 5월 31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를 엠바고 위반이라며, 샌프란시스코에까지 와서 <한겨레> 기자는 브리핑 룸을 나가라며 소란을 피웠다. ⓒ 한겨레PDF(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엠바고 소동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런 소동이 벌어진 연유는 엠바고(보도유예) 때문이었다. 청와대는 한·소 정상회담을 며칠 앞두고 엠바고를 걸어 각사 편집국장에게 브리핑했다. 정상회담 전날 보도하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로이터>, <유피아이>(UPI) 등 외신이 정상회담 개최 닷새 전에 이 사실을 보도했고, 심지어 미국 국무부가 한·소 정상회담 개최를 환영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그러니까 청와대가 한국 언론에 요청한 엠바고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겨레>는 외신 보도들을 모아 5월 31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이를 엠바고 위반이라며, 샌프란시스코에까지 와서 <한겨레> 기자는 브리핑 룸을 나가라며 소란을 피웠다. 

샌프란시스코의 소동은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 원래 카르텔의 '담합'이라는 것은 어느 한쪽이라도 무시하고 깨버리면 무너지는 것이다. 브리핑 룸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우리를 물리력으로 끌어내지는 못했다.

창간 초기, <한겨레>는 '불편한 존재'

<한겨레> 창간 직후부터 기자단과 한겨레 기자들 사이에는 기자단 카르텔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었다. <한겨레> '20년의 역사'를 담은 책 <희망으로 가는 길>(2008)에는 창간 초기 <한겨레> 기자들이 출입처 독과점을 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웠는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겨레의 등장은 이들에게 큰 위협이었다. 중견 기자들과 고위 공무원들이 한겨레 기자의 기자실 출입을 막은 것은 '권언 유착의 호시절을 그대로 유지하고 싶으니 너희들은 이 카르텔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었다. 창간 때부터 윤리강령을 채택하여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않는다'고 선언한 한겨레 기자는 그들에게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한겨레는 초지일관했다. 공공기관의 기자실은 국민세금으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자의적으로 결성된 기자단이 개별기자의 출입여부를 결정할 아무런 권한이 없고,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취재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기자실을 사용하겠다는 게 모든 한겨레 기자의 원칙이었다."

- <희망으로 가는 길> 119쪽

창간되고 5개월 남짓 지난 시점인 1988년 10월 초. 2대 경찰팀장이던 김형배 기자(1980년 <조선일보> 해직 기자 출신으로 한겨레 창간에 참여)가 서울시경찰국(현 서울시 경찰청) 기자실로 들어서려 했으나, 경찰이 막았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도 동조했다. 경찰 간부 간담회 때도 <한겨레> 기자의 동석을 가로 막았다. 그 가운데는 <조선일보>에서 해직되기 전 출입처에서 알고 지내던 기자와 경찰 간부들도 있었다.
 
"...이날은 끝장을 보기로 결심했다... 기자실로 그대로 들어가 각 언론사 책상과 부스를 부쉈다. 놀란 기자들은 그저 멍하니 지켜봤다. 김형배는 뒤이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서울시경 공보과 사무실로 들어갔다. 사무실 집기를 주먹과 발로 부쉈다. 날벼락을 맞은 서울시경 간부와 출입기자들이 긴급회의를 열었다. 그들은 제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겨레> 기자의 출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서울시경 출입 제한 조치가 풀리자 일선 경찰서 장벽도 허물어졌다."

- <희망으로 가는 길>  118쪽

구악(舊惡)기자들 추악한 모습 폭로

기자단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 '보사부 촌지사건'(1991.11.1.) 보도는 <한겨레>가 창간 초기, 기자단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일반 기자들에게 얼마나 '불편한 존재'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기자단의 추악한 모습을 폭로한 <한겨레>의 '보사부 촌지사건'(1991.11.1.) 보도. ⓒ 한겨레PDF(네이버뉴스라이브러리)

 
당시 보건사회부 출입기자들이 해외 취재를 빙자하여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경비 명목으로 대우재단과 아산재단으로부터 거액의 후원금을, 그리고 제약·제과·화장품 회사 등에서 촌지를 거둬들였다(당시 보사부 기자단이 모은 돈은 자그마치 8850만 원. 이 돈을 19명의 기자들이 추석 떡값, 해외여행 경비, 제주도 여행 경비, 회식비 등으로 썼다. 각자 465만원씩 나눠 쓴 셈. 당시 <한겨레> 공채 1기 기자의 한 달 월급이 35만원이었으니, 보사부 출입기자들의 촌지가 얼마나 큰 액수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 돈을 기자들끼리 나눠 갖는 과정에 말썽이 생기게 되었다. 한 기자가 촌지 일부를 횡령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를 가리기 위해 기자단 회의가 열렸다. 해외여행에 끼지 못했던 보사부 담당 성한용 기자가 그 자리에 참석했다가 오간 이야기를 다 듣고, 이를 자세하게 취재노트에 담았다. 이 내용을 보고받은 여론매체부에서 이를 그대로 보도하여 보사부 기자실은 물론 전 언론사가 발칵 뒤집히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위의 책 130쪽)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권우성

 
이번에는 <오마이뉴스>가...

"<한겨레> 기자는 당장 나가라"는 샌프란시스코 소동을 겪은 지 30년의 세월이 지났다. 이번에는 <오마이뉴스>가 대상이 되어 엠바고 파기를 이유로 '법조 출입 금지 1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을 위기에 처했다. 현재 대법원 기자단에서 최종 논의중이라고 한다.

<오마이뉴스>가 법조 출입금지 조치를 당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2심 판결문 전문을 게재했다고 하여 1년 출입정지를 받은 바 있다. 이번에도 '출입 정지'라는 형벌을 가한 주체는 법원, 검찰 등 출입기관이 아닌 기자들 '임의 단체'인 법조 출입 기자단이다.

기자단이 다른 기자의 출입 여부를 결정하는 법조 기자단이 이번에는 엠바고 위반을 이유로 다른 기자에게 출입정지라는 형벌을 가했다. 그리고 그 형벌의 내용은  기자들이 늘 강조하는 국민의 알권리, 언론의 자유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기자라면 차마 같은 기자에게 저지를 수 없는 '기자 출입금지'라는 담합 행위를 기자단 이름으로 행한 것이다. 스스로 언론인이 아님을 드러내는 자기부정, 자기모순의 모습일 뿐이다.(관련기사 - 검찰 기자단, 참으로 기이한 집단http://omn.kr/1qny6)

바깥세상은 무섭게 달라지고 있다. 핸드폰 안에 세상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들어있고, 언제 어디서든 그 지식과 정보에 대한 접근이 가능한 이 디지털 시대 한복판에서 이런 원시적 행태를 여전히 보이는 기자단이라는 집단에 대한 조롱과 비판이 드세다.

'병폐의 고리, 검찰 기자단을 해체시켜 주십시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청원을 시작한 지 불과 열흘 만에 25만 명을 훌쩍 넘는 국민이 참여했고, 법조기자단 해체를 위해 <뉴스타파> <미디어오늘> 등 기자단 바깥 미디어들이 출입증 신청과, 거부 시 행정소송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게 자연의 이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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