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이정현(맨 왼쪽)의 충돌 장면.

이관희(오른쪽에서 두번째)와 이정현(맨 왼쪽)의 충돌 장면. ⓒ KBL

 
이정현(전주 KCC)와 이관희(서울 삼성)는 프로농구계에서 유명한 견원지간으로 꼽힌다. 두 선수는 2017년 챔피언결정전을 비롯하여 지난 몇 년간 숱하게 맞대결을 펼치며 경기내용만큼이나 격렬한 신경전으로 여러 번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같은 포지션에 비슷한 나이, 소속팀에서 주포 역할을 맡고있다는 공통점까지, 두 선수는 싫든좋든 팀이 만날 때마다 계속해서 엮일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농구팬들 사이에서도 이정현과 이관희의 소속팀이 맞붙을 때면 팀간 승부보다 두 선수간의 대결 여부가 더 화제가 될 정도다.

5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KCC와 삼성의 경기에서 두 선수는 또다시 충돌했다. 3쿼터 도중 매치업을 이룬 두 선수는 이정현이 라건아의 스크린을 타고 돌아나오려던 상황에서 수비하던 이관희와 팔이 엉켰다. 이정현은 감정이 격해진 듯 팔을 푸는 과정에서 거칠게 이관희를 뿌리쳤다. 두 선수는 서로 노려보며 언성을 높였고 주변의 동료들과 심판이 중간에서 두 선수를 제지하며 다행히 더 이상의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심판은 이관희의 개인파울에 이어 이정현에게는 테크니컬 파울을 선언했다.

이날 삼성은 KCC와의 홈경기에서 83-79로 역전승을 거뒀다. 3쿼터까지 60-66으로 끌려가던 삼성은 4쿼터에만 23-13으로 KCC를 압도하며 전세를 뒤집었다. 이정현과 이관희는 나란히 23점씩을 거뒀지만, 승부처인 4쿼터에 이관희가 중요한 3점슛 2개를 터뜨리는 등 맹활약을 펼치며 경기 막판 부진과 아쉬운 실책을 범한 이정현에게 판정승을 거뒀다.

두 선수는 연세대 1년 선·후배이자 상무에서도 군복무를 하며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왔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불편한 관계로 알려졌다. 좁은 농구판에서 인맥과 학연으로 촘촘히 엮어있는 한국 스포츠계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장면이다. 이정현은 이관희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하고 있으며, 이관희는 공식석상에서 이정현의 이름을 호명하지 않고 '그 선수'라고 지칭할 정도다. 두 선수의 관계를 잘 알고 있을만한 주변 농구인들도 자세한 사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물론 선후배 관계가 끈끈하고 엄격한 한국에서도 선수들간 신경전은 수시로 발생하며, 이정현-이관희 만큼 알려지지 않았을 뿐 실제로도 그에 못지않게 사이가 좋지 않은 선수들은 여럿 존재할지도 모른다. 다만 두 선수의 관계는 이미 젊은 시절부터 농구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지 오래됐고, 두 선수의 포지션이 비슷하고 기량도 성장하면서 나란히 '라이벌 구도'를 만들기에 좋은 그림이 됐다. 대중의 시선을 끌만한 화제성이 부족한 프로농구계나 언론에서도 두 선수의 관계를 '이슈메이킹' 차원에서 적극 부각시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선을 그어야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스포츠계에서 한때 사이가 안좋거나 심하면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진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최소한 개인적인 악감정을 몇 년씩이나 끌고가지는 않았다.

이정현-이관희의 갈등... 적어도 코트 위에선 자중해야

허재는 실업 기아자동차 시절 자신에게 주먹까지 날린 현대전자 임달식-김성욱을 용서했고 김광을 자신의 코치로 기용하기도 했다. 서장훈도 연세대 시절 폭력성 파울로 농구인생을 끝장낼 뻔했던 삼성전자 박상관-이창수 등에게 앙금이 없다고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NBA에서도 샤킬 오닐-고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한때 대표적인 견원지간으로 꼽혔던 선수들도 시간이 흘러서는 코트 밖에서 화해하고 우정을 회복한 경우도 있다.

이정현-이관희 간에 어떤 개인사가 있는지는 굳이 팬들이 알아야 할 이유도, 본인들이 밝혀야 할 의무도 없다. 각자의 입장이 있는 만큼 타인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문제이고, 30대가 넘은 성인 선수들을 이제와서 억지로 화해시킨다고 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코트 위에서는 페어플레이를 지키고 상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 두 선수간의 갈등은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따지는 게 이미 무의할 정도로 역사가 깊어졌다. 만날 때마다 볼썽사나운 신경전을 펼치고 상대를 과도하게 자극하거나 도발하는 모습은 모두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농구 실력을 떠나서 팬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다.

2012년 원주 동부(현 DB)와 안양 KGC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양팀의 주력 선수인 양희종과 윤호영의 신경전이 크게 이슈가 된 바 있다. 처음으로 가벼운 재미로 시작된 도발과 설전은, 갈수록 두 선수는 물론 양팀의 감정싸움으로까지 확대됐고 결국 양측 구단이 나서서 자제를 요청한 다음에야 중단됐지만, 관련된 선수들은 이미 큰 상처를 받고 마음이 상한 뒤였다. 선수들간의 사적인 문제라고 해서 안이하게 방관하다보면 일이 커질수도 있다.

KBL과 소속팀인 KCC-삼성 양측 구단에서도 이제는 어느 정도 두 선수의 대립에 대하여 경고 메세지를 줄 필요가 있어보인다. 농구는 격렬한 스포츠이고 아무 감정이 없던 선수들끼리도 코트위에서 몸을 부딪히다보면 한순간에 감정이 격해지기 쉽다. 하물며 이미 감정의 골이 깊은 선수들이 비슷한 포지션에서 앞으로도 계속 마주쳐야하는 상황이라면 언제 터질지모를 시한폭탄과도 같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가벼운 신경전 정도로 끝났지만 두 선수간 감정싸움이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되다보면 나중에 어떤 큰 사고가 벌어질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개인감정은 두 사람이 사적으로 해결할 일이고, 앞으로 코트에서는 페어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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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이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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