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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북한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군인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박상은. 20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출소한 박씨는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출소한 지 30년이 지난 2019년, 그는 시민단체 '지금여기에'와 원곡법률사무소의 도움으로 재심을 신청했으나 1심 법원은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증인의 증언으로 2019년 5월 26일 2심 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졌고 2020년 1월 10일 대법원으로부터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한다는 결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50여 년 만에 재심이 시작되었습니다.[편집자말]
   
 '재심을 신청합니다' 박상은
  "재심을 신청합니다" 박상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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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심 신청합니다 - 박상은 스토리]

"난 북으로 탈출하려 하지 않았다"(http://omn.kr/1grbi)
"암스트롱이 달 착륙할 때 난 고문 받고 있었다"(http://omn.kr/1gz5u)
어느 날 걸려온 전화 "간첩 딱지 좀 떼주세요"(http://omn.kr/1gz5v)
집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 그 남자다!(http://omn.kr/1gzko)
아슬아슬한 재판... 50년 만에 증인이 입을 열다(http://omn.kr/1jrfj)
⑥ 범죄자 만들 땐 온 세상이 떠들썩하더니...(http://omn.kr/1l3c9)
검찰이 불복한 재심, 50년 만에 드디어 열린다(http://omn.kr/1ma6p)
검찰, 보안대 수사관부터 찾아라(http://omn.kr/1nnbg)

"혹시 지금 어디세요?"
"아, 지금 법원 가는 중입니다. 늦지 않게 가겠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제가 너무 늦게 전화를 드렸네요. 오늘 법원에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예? 왜요? 무슨 일 있나요?"
"그게... 담당 재판부 판사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법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오늘 있을 재판은 취소되고 다시 재판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합니다."


지난 11월 11일 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리기로 했던 재판 당일 아침 변호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몇 년간 힘들게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를 다퉈왔고, 그 과정에서 무죄를 입증해 줄 증인을 찾아 헤매거나, 증거들을 찾아다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왜 내 재판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어요. 다른 사람들도 재판이 이렇게 힘든 건지. 아니면 내가 운이 없어서 이렇게 어려운 재판을 이어가는지 모르겠네."

그간 박상은씨는 판사가 변경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다. 재판부 변경으로 재판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언제 재심 재판이 끝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심히 걱정되었다.

결국 우려한 대로 담당 판사의 갑작스러운 사망(전날 회식 중 쓰러져 사망했다고 한다)으로 재판부가 변경됐다. 박상은씨가 더욱 허탈해했던 이유는 애초 11월 11일 재판을 종결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어렵게 재판의 끝이 보이는 듯했으나 다시 그 끝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빠른 시간에 새로운 판사가 정해졌고, 재판 일정도 12월 4일로 비교적 빠르게 지정되었다. 11시 30분 시작된 이날의 재판에서 재판부가 변경된 이유로 공판 절차 갱신 과정을 거쳤다. 검찰의 공소 요지와 변호인의 변론  요지를 각각 듣고 이전까지의 증거에 대한 동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검사의 구형에 놀란 신청인
 
박상은 씨의 재판 안내문
 박상은 씨의 재판 안내문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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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재심 재판에서의 쟁점 중 하나는 검찰의 공소 변경 허가 여부였다. 검찰은 '적진 도주'라는 공소 내용에 대해 '탈영'이라는 공소 내용으로 변경해 줄 것을 재판부에 요청했었다.

검찰의 공소 변경 요청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우선'을 들어 검찰의 변경 요청 사항은 사건 실체와 직접적 관계가 없다고 판단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공판의 모든 절차를 마친다며 검찰과 변호인 측에 마지막으로 할 말 있으면 하라고 했다.

먼저 검찰은 재심 과정에서의 기록이나 진술에 비추어 자살하려고 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보안대에서 가혹 행위를 당했다는 박상은씨의 주장에 대해 보안대 내에는 수감 시설이 없는 점, 취침 시간 외에는 수갑을 차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주장하였다. 아울러 사회 주요 인사나 저명인사가 아닌 일반인 박상은씨에게 가혹 행위 등을 통해 범죄 사실을 조작하는 것이 수사 기관이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이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검사의 의견을 듣고 있던 박상은씨는 20년 형을 구형하는 검사(박씨가 이미 20여 년을 감옥에 있다 나온 만큼 검사의 20년 구형은 과거 판결에 문제가 없다는 뜻에서 내린 것으로 보인다)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숙였다. 재판장은 박상은씨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고, 고개 숙이고 있던 박상은씨는 잠시 머뭇거리다 안주머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그리고 그 종이의 내용을 읽어 나갔다.

"내 과거가 아이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박상은씨가 작성한 최후 진술의 일부
 박상은씨가 작성한 최후 진술의 일부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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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단 한 번도 북한에 가보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며, 보안대 수사 당시 당했던 고문으로 여전히 고통을 겪고 있으며, 심지어 아직도 밤마다 꿈에서 고문이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사건이 발생한 지 50년이 지나 재심을 시작한 이유도 말했다.

'20대에 감옥에 갔던 청년이 20년이라는 시간을 감옥에서 보낸 뒤 50대가 가까워서야 출소해 어렵게 가정을 꾸렸다.'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내 아이들에게 내 과거가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지는 않을까, 빨갱이 자식이라는 이유로 아이들의 꿈이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과 미안함에 재심을 신청했다.'

여기까지 말한 박씨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한참을 눈물을 흘리다 다시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간 박씨는 이제라도 무죄를 선고 받아 자식들에게 떳떳한 아버지로 살고 싶다는 생각뿐이라며 재판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는 말로 자신의 말을 끝맺었다.

최후 진술을 마친 뒤에도 박상은씨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았으며 재판 종결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박상은 씨가 작성한 최후진술서
 박상은 씨가 작성한 최후진술서
ⓒ 변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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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병의 구타에 의해 자살할 것을 결심하고 부대를 나왔고, 보안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서 가혹 행위를 당하며 조사를 받은 정황이 재심 과정에서 밝혀졌음에도, 검사가 20년 형을 구형했다는 사실에 박상은씨는 너무도 놀랐다고 말했다. 검사의 구형에 과거 불공정했던 수사와 재판의 기억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박상은씨의 선고는 이달 16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서부지원 303호에서 있을 예정이다.

태그:#수상한집, #원곡법률사무소, #평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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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억울한 이들을 돕기 위해 활동하는 'Fighting chance'라고 하는 공익법률지원센터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문두드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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