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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취를 하면서 혼자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을 정도로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주의자였다. 언젠가부터 공장식 축산에 문제의식을 느끼게 되었고 채식할 용기는 나지 않아 동물복지 상품을 구매하기로 했다. 채식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동물복지 상품을 구매해왔었다.

동물복지 축산물은 비싸다
 
 
동물복지인증 마크
▲ 동물복지인증 마크 동물복지인증 마크
ⓒ 농림축산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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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 축산물을 구매하는 행위는 여러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동물복지 상품 구매처가 흔치 않은 데다가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혼자 자취하던 시절에는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생협 마트에 가서 장을 봐야 했다. 시간과 돈이 더 들고 체력도 더 써야 한다. 가격이 가장 결정적인 문제다.

당시 동물복지 삼겹살 가격은 일반 삼겹살 가격에 비해 적게는 1.2배, 많게는 1.5배 정도 되었다.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일이 천 원 가격 차도 고민하는 시기인데 동물복지 삼겹살을 사는 행위는 여러모로 내게 의미가 있는 소비 행위였다.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했다. 가격도 비싸고 20분이나 걸어가서 장 봐야 하고 시간까지 들여야 한다. 이런 동물복지 삼겹살을 먹다 보니 당연히 고기 먹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동물복지와 윤리성
 

비효율적임에도 동물복지 축산물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 하나, 윤리성이었다. '동물복지'를 위해 동물복지 상품을 구매했지만 사실 되돌아보면 동물복지 인증 제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막연하게 '동물복지'니까 동물의 복지를 신경 쓴 상품이라고 생각하고 구매했다.

내가 아는 사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동물복지 돼지가 일반 공장식 축산 돼지에 비해 덜 잔인하게 사육되고 도축된다는 것이다. 과연 이 사실만으로 동물복지농장 소비는 윤리적인 소비가 될 수 있을까?
  
동물복지제도가 뭘까?
  
     
동물에게'도' 복지란 개념이 생겼다니 '동물복지'란 말이 참 반가웠다. 동물복지란 개념은 어떻게 생긴 걸까. 아동복지, 장애인복지, 노인복지. 확실하진 않지만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는 복지라는 단어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복지는 행복한 삶을 뜻한다. 그렇다면 동물복지는 동물의 행복한 삶을 위함인가?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는 농장동물 복지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쾌적한 사육환경을 제공하고 스트레스와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등 농장동물의 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면 동물이 건강해집니다. 건강한 동물로 생산되는 축산물은 안전합니다.

사육 단계에서 동물복지 축산농장 인증제를 실시하여 산란계(2012년), 양돈(2013년), 육계(2014), 젖소, 한육우, 염소(2015), 오리(2016)농장에 대해 인증을 하고 있다.

동물복지 축산농장에서 사육되고 동물복지 운송 · 도축을 거쳐 생산된 축산물에 '동물복지 축산물' 표시를 하는 등 사육 · 운송 · 도축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종합적인 농장동물 복지체계를 마련해 나가고 있습니다."


농림축산식품검역본부에서 밝혔듯, 동물복지는 동물의 '삶'에 해당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육·운송·도축'에 해당하는 개념이다.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게 사육하고 운송하고 도축한다. 동물의 입장에서 행복한 사육과 행복한 운송과 행복한 도축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일인가.

동물복지제도의 실효성
 

동물복지 인증 기준은 전축종 공통사항과 축종별 인증기준이 따로 마련되어있다. 그중 양돈농장(돼지)을 예로 들면, 인증 기준은 18쪽에 걸쳐 기술되었다. 얼핏 보면 세세하게 기준을 잘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준을 자세히 살펴보니 허술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눈 감고 아웅 하는 식이다.

1. '자유방목'이란 축사 외 실외에 방목장을 갖추고 방목장에서 동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방목이라 함은 온종일 방목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방목장과 축사를 오가는 생활을 뜻한다. 예를 들면, 교도소와 같은 수용시설과 비슷하다. 수감자들도 생활관에 있다가 운동 시간에는 운동장에 나온다. 그렇다고 '자유감옥'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자유를 제한하는 공간이 감옥이다. 방목장과 축사에 자유가 있을까?

2. 돼지의 단미는 금지한다. 다만 꼬리물기 피해로 인해 동물복지가 저해된다고 수의사가 처방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한다.
 
일단 공장식 축산에서는 새끼 돼지 때 꼬리를 자른다. 이유는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협소한 공간에서 동료 돼지들 꼬리를 물기 때문이다. 꼬리를 물면 상처가 나고 결국엔 감염이나 질병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꼬리를 자른다. 동물복지 돼지의 경우 원칙적으로 단미를 금지한다.

하지만 수의사가 처방하는 경우에는 자를 수 있다. 무단횡단은 금지다. 만약 급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경우 무단횡단은 가능하다는 예외사항을 둔다면, 하루에도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은 무더기로 나올 것이다. 공장식 축산에서 꼬리를 자르는 이유는 꼬리물기 피해 때문이다.

그런데 꼬리물기 피해로 인해 동물복지가 저해된다고 판단되면 꼬리를 잘라도 된다고? 꼬리물기 피해가 왜 생기겠는가? 방목해도 돼지가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까? 애초에 돼지를 사육하지 않는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이고 돼지를 사육하면 필히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실제로 인터넷에 동물복지 농장 돼지를 검색해보면 돼지 꼬리가 잘려 있는 사진들을 볼 수 있다.

3. 소음 기준 : 평가자가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소음이 지속적으로 나거나 소음을 내는 설비가 없는가?

평가자는 사람이다. 돼지가 어떻게 느낄지에 대해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닐까?

4. 공기 오염도는 기준에 적합한가?
*실측치 기록 기준 암모니아 농도: 25ppm 이하 (1ppm : 100만분의 1)


구글링을 조금만 해도 알 수 있다. 동물복지농장 암모니아 허용 농도 25ppm은 암모니아 가스의 TWA 허용농도 25ppm과 일치한다. TWA값이란 작업자가 일 8시간 동안 작업을 하여도 인체에 큰 영향이 없는 농도를 말한다. 동물복지농장 암모니아 허용 농도와 TWA값이 같은 건 우연일까. 돼지 복지를 위함일까, 동물복지농장 노동자를 위함일까.

돼지의 후각 능력은 인간은 물론이고 개의 후각 능력을 뛰어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암모니아 농도는 정말 돼지를 고려한 수치일까? 공기 중 암모니아 농도가 5ppm만 되어도 특유의 자극적인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 어떤 동물이 분뇨 위에서 자고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곳에서 먹고 자고 싸는 걸 동시에 하고 싶겠는가.     
5. 사육공간
 
    
동물복지 양돈농장 사육공간 인증기준
▲ 동물복지 양돈농장 사육공간 인증기준 동물복지 양돈농장 사육공간 인증기준
ⓒ 농림축산검역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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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농장 개방형 사육방식
▲ 동물복지농장 개방형 사육방식 동물복지농장 개방형 사육방식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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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스톨 안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들
 좁은 스톨 안에서 사육되고 있는 돼지들
ⓒ 동물자유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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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복지농장 돼지가 편안해 보이고 행복해 보이는가. 물론 스톨에 갇힌 돼지에 비하면 덜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누워있는 돼지를 인간동물로 대체하여 상상한다면 절대 '행복'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 없다.

6. 도태 관련 인증사항

도태는 '죽이는 것'이다.

1) 해결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돼지는 즉시 동물복지를 고려한 방법으로 도태시켜야 한다.
2) 돼지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도태는 수의사가 실시하여야 한다. 다만 동물복지 교육을 이수한 자 등 숙련된 자가 다음의 방법으로 실시하는 도태는 허용한다.
- 4주령 이하의 자돈의 경우 둔기를 이용한 두부 중앙부위 타격
- 가축총(captive bolt stunner), 전기충격기, 가스장치를 이용한 기절 후 즉시 방혈
3) 사체를 처리하기 전에 돼지가 죽었는지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해결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이 기준은 누구의 기준인가. 돼지의 고통을 인간이 판단한다. 새끼 돼지의 경우 둔기를 이용한 두부 중앙부위 타격이 가능하고 이 외 돼지는 가축총, 전기충격기, 가스장치를 이용이 가능하다. 이 정도면 어떤 방식으로 죽여도 된다고 대놓고 허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둔기를 이용한 타격으로 돼지를 죽이는 방법이 동물복지를 고려한 도태 방식일까? 엉터리투성이다. 사체를 처리하기 전에 돼지가 죽었는지 확인하는 지침도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다. 동물복지와 관련해 국가가 깊게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 같아 보였다.

위에 언급한 사항들은 아래 첨부한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접속하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다. 일반인인 내가 봐도 이렇게 허술한 제도인데 실제 농가 종사자와 관련 법안을 만든 전문가들에게는 얼마나 허술하고 우스운 인증기준일까. 동물복지제도는 번드레하게 꾸민 허례허식 인증제도다.

동물복지의 진실
 

동물복지란 말,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포장된 단어다. 나는 동물복지를 생각하면 초원 위를 누비는 동물을 상상했다. 피 흘리며 도살되는 운명은 상상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겐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한 단어다. '동물복지'라는 단어는 동물이 처한 현실, 즉 진실을 가린다.

만약 노예복지란 개념이 있다면 동물복지와 비슷하지 않을까? 노예는 자유와 권리가 없다. 노예에게 숙식을 제공한다고 해서 노예복지가 실현되는가. 오직 인간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 자기 삶을 희생해야 하는 동물에게 복지를 운운하는 것이, 심지어 인간의 기준으로 그 복지의 기준을 판단하는 것이 가당키나 한 걸까. 동물답게 살 권리를 유린당하는 모든 동물 앞에 복지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우리 사회에서 동물은 동물(動物) 취급되지 않는다. 동물은 얼마든지 번식시키고 사육하고 도살해도 되는 자원이자 도구다. 동물의 고통과 권리는 없다. 고기라는 사체만 존재한다. 복지? 먹히기 위해 사육되는 존재들에게 과연 복지가 존재할까. 이게 현실이고 진실이다.

제도에 대하여
 
  
인간은 욕망을 위해 동물을 도구화하고 자원화한다. 진정 '동물복지'를 위함이라면 먹기 위해, 입기 위해, 보기 위해 이용되는 모든 형태의 착취와 학대를 금지해야 한다.

지금의 동물복지제도는 필히 과정이어야만 한다. 이것이 최선의 결론인 양 홍보해서도 안 되고 신뢰해서도 안 된다. 궁극적으로 동물복지제도는 동물을 위한 복지가 아니라, 먹는 이의 죄책감을 덜어주는 인증제도일 뿐이다. 동물복지제도에는 복지도, 동물도 없다.

당장 육식을 멈춰야 하는 현실이지만, 안타깝게도 육식 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은 게 현실이고 육식을 당장 금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현재 시점의 '동물복지제도'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제도는 필요하다. 다만 진실을 가리는 용도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 명칭을 바꿔야 한다. 사체에 대한 복지를 논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동물복지 도살이 존재할 수 있는가. 복지 살해가 가당키나 한가. 먹히는 존재에게 복지는 없다.

※ 자료는 동물복지 관련 자료는 동물보호관리시스템 동물복지 인증 기준을 참고하였습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 계정 https://brunch.co.kr/@rulerstic에 동일한 글을 발행하였습니다.


태그:#동물복지, #동물학대, #동물복지인증, #공장식축산, #동물착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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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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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게 덜 폐 끼치는 동물이 되고자 합니다. 그 마음으로 세상을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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