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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자신의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인 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포고등학교에 마련된 수능 고사장에서 수험생들이 입실 전 자신의 시험실을 확인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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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알람과 동시에 오늘의 일정이 화면에 떴다. '수학능력시험(수능)을 보는 학생들과 학부모에게 따뜻한 격려 문자 보내기'라는 메모가 보였다. 어제는 수능 이브라고 수능 보는 자녀들에게 달콤한 합격 선물을 하나씩 보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해마다 수능생을 만나기도 하지만, 특별히 더 긴장 모드로 수능생 엄마가 된 지 3년 차다. 2년 전에는 아들이, 작년에는 딸이, 올해는 영어를 지도한 조카를 포함해 가까운 지인들의 자녀 무려 8명이 수능을 봤다. 선물을 보내면서도 혹시나 빠진 학생이 있지는 않나 걱정되었다.

피하고 싶은 게 시험이라지만 
 
시험이란 인생의 어느 단계에서나 빠지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때론 필연적으로, 때론 우연히 다가와서 삶의 궤도를 바꾸기도 하니 미우면서도 종종 고맙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도 학생 때를 제외한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시험이 있었고, 그것이 지금의 내 모습으로 이어졌다.

처음 선택한 학부에서 얻은 과학교사 자격증으로 학생들을 만났고, 대학원을 마치면서 대학강사로 몇 년을 보냈다. 영어를 재전공한 후 영어교사 자격증으로 초중고생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 후 영어교육 대학원을 선택해, 지역 대학에서 대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물받았다.
 
각종 자격시험 도전은 내 삶의 길을 단단하게 굳혀주는 버팀목의 역할을 했다. 올해만 해도 코로나가 준 시간적 여유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사회복지사에 이어 요양보호사자격을 얻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에 도전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묻는다. "도대체 선생님의 시간은 다른가요? 24시간이 아닌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 중 최고의 선물은 바로 시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의 길이를 재어보면 어떤 이에게는 길고, 어떤 이에게는 짧게 보인다. 물론 길다고 좋은 것도 아니요, 짧다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소화시키고 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나를 돌이켜보니, 부모의 위대한 재산인 건강을 받은 것만큼이나, 시간을 맛있게 소화시키는 능력 또한 타고난 재능이라고 자화자찬한다.
 
2년 전 아들이 재수를 결정할 때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아들은 수능의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고등학교 내내 '엄마 사전에 자식 재수는 없다'라는 못을 박은 터라, 아들은 시험의 결과를 두고 어떤 결정을 내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실, 지방에서 자식을 재수시키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정말 말도 못 하게 많다는 걸 실제 경험을 통해 알게 됐다. 오죽하면 아들 재수기간 동안 지방 학생들의 소원 1위인 '인서울'이란 말을 거두었겠는가. 1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아들은 대학에 갔고, 바로 이어 딸은 학교 성적에 맞추어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갔다. 올해는 정시와 수시를 모두 경험한 엄마로서 지인들의 자녀들에게 코치를 해줬다.

조금 특별한 올해의 수능 
 
올해의 수능은 학생에게나 부모에게나, 또 교육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결코 잊지 못할 일로 기억될 것이다. 코로나의 위기가 천재지변을 능가할 정도였다. 결국 수능일을 변경하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수능 보는 오늘까지 수십 번에 걸쳐 수능을 연기해야 되느냐 마느냐를 고민해야만 했다.

최근 코로나 3차 대유행이란 말이 현실화되면서, 국민 모두가 긴장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전염이 국지적으로 일어나던 1차 2차 때와 달리, 전국적으로 확산세가 번졌다. 매일 들려오는 코로나 뉴스는 날카로운 송곳같이 아팠다. 정말 이렇게 되면 수능을 볼 수 있을까 매일 걱정했다. 
 
새벽 뉴스로 '사상 초유의 코로나 수능'이라는 헤드라인이 올라오는 걸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능을 볼 수 있기를 기도한 사람 중 하나였기에 감사 기도를 했다. 아침 7시경, 수험생 엄마인 지인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해 동안 자녀분 뒷바라지 하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삶의 과정을 알고 받아들이는 거죠. 분명히 좋은 결과 있을 거예요."
 
대부분 지인 자녀들은 시험 장소에 1시간여 일찍 도착했다고 했다.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방역 절차도 거쳐야 하고 교실 분위기도 살펴야 하니 시간이 걸리겠다 싶었다. 자식을 시험 보는 학교의 정문으로 들여보내는 부모의 심정이 떠올랐다. 수험생보다 더 긴장됐다. 내 아이들 때의 경험이 되돌아왔다. 
 
오늘 아침도 시 한 편을 필사하면서 마음을 달래고 있는데, 한 수험생 엄마가 나태주 시인의 <응원>이란 시를 보내왔다.
 
"오늘부터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할 거야. 네가 바라고 꿈꾸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그날이 올 때까지 기도하는 사람이 될거야 함께 가자 지치지 말자 먼 길을 가깝게 가자 끝까지 가보자. (생략)"

이 시를 읽는 순간 '함께 수험생들을 위해 응원해주자'라고 다른 지인들에게 전했다. 받은 시를 읽어보고, 릴레이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보자고 말했다.

시험이 끝난 후에 
 
우리 어린 자식들이 그 힘든 코로나를 뚫고 일 년의 결실을 담고자 애쓰는 시간이다. 열매를 거두는 농부의 눈에는 가장 잘 익은 과실이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시험을 보는 우리 학생들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 알고 있는 것마저 놓칠까 봐 마음이 안절부절 못할 것이다.

농부가 보지 못하는 과일을 볼 수 있도록 누군가가 도와준다면 더 많은 수확을 할 수 있듯이, 오늘 하루 수험생과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의 진심이 모인다면 그 수험생 역시 자신에게 밀려오는 따뜻한 온기를 느낄 것이다.
 
시험이 끝난 후에 우리 어른들이 할 일은 무엇인가. 농부가 떠난 뒤, 남아 있는 열매를 보아야 한다. 겨우내 다른 누군가의 양식이 될 그 과일의 존재를. 한 번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될 수 없음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 엄마 아빠도 이렇게 먼 길을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알려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최고의 선물로 '너희를 만난 것'이란 말을 꼭 해주어야 한다.
 
조금 더 살아본 나는 수험생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내가 살아보니 인생의 삶은 직선보다는 곡선이 훨씬 더 많고 아름답다고. 너희들이 청춘의 날개는 수십 번의 날갯짓이 있어야 더 튼튼해진다고.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넘어질 준비도 더 뛰어갈 준비도 이제부터 시작이야.

태그:#2021수능, #코로나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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