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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일지 결정하기 위해 피선거권자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은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현실적' 이유로, 그 정보가 누군가에게는 전부 제공되고 누군가에게는 요약되거나 선별적인 방식으로 제공된다면 어떨까요? 더군다나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 하는 이유가 장애를 가졌기 때문이라면 어떨까요? 장애인에 대한 심각한 차별에 '현실적' 이유로 합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해 김재왕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기자말]
천자문(千字文) 뜻풀이를 1천 자 이내로 해야 한다면 그 뜻을 다 쓸 수 있을까. 이는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만 보아도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1천 자 이내로 글자 수를 제한한다면 결국 글자 수에 맞춰서 내용을 적게 되고, 아마 전체 내용의 1/4 정도만 적을 수 있을 것이다. 비슷한 일이 시각장애인에게 제공되는 점자형 선거공보(아래 점자공보)에서 일어나고 있다.

점자는 약 1.5㎜의 양각 점 여섯 개로 구성되어 손으로 읽는 문자이다. 묵자(일반적으로 쓰이는 문자)는 글자 크기를 조절할 수 있지만, 점자는 세로 6㎜ 가로4㎜ 정도로 그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 묵자는 초성, 중성, 종성을 묶어서 한 영역에 나타낼 수 있지만, 점자는 한 영역에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만을 나타낼 수 있다. 또한 점자책이 종이의 양면을 사용하려면 줄과 줄 사이를 8㎜ 정도로 하여 반대면의 점자와 겹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점자책은 묵자책의 3배 정도 분량이 된다.

공직선거법 제65조 제2항은 공정성을 위해서 책자형 선거공보(보통 선거공보)의 면수를 제한하고 있고, 같은 조 제4항은 점자공보를 책자형 선거공보의 면수 이내에서 작성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후보자나 정당들은 제한된 면수에 맞게 책자형 선거공보의 내용에서 핵심어나 구호만 빼서 적거나, 복지 정책 위주로 점자공보를 작성하고 있다. 그에 따라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공보가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셈이다.

이 정도면 되었다는 차별적인 시각
 
 점자는 약 1.5㎜의 양각 점 여섯 개로 구성되어 손으로 읽는 문자이다. 점자는 세로 6㎜ 가로4㎜ 정도로 그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
 점자는 약 1.5㎜의 양각 점 여섯 개로 구성되어 손으로 읽는 문자이다. 점자는 세로 6㎜ 가로4㎜ 정도로 그 크기가 고정되어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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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제한을 두었을까? 현실적 어려움과 비용 때문이란다. 점자공보의 면수를 제한하지 않으면 그 내용이 늘어나 작성하는데, 지금 점자출판시설과 점역·교정사 등으로는 부족하고, 점자공보가 두껍고 무거워져서 발송할 때에도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점자공보 작성 및 발송 비용을 부담하는데, 그 비용이 과다하다는 점도 고려하였다고 한다. 현실적 어려움과 비용 때문에 시각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선거 정보량을 줄인 셈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기술이 발전하면서 시각장애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얻고 있다. 점자를 읽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은 점자 해독 능력과 상관없이 시각장애인에게 일률적으로 점자공보를 발송하는데, 시각장애인에게 점자공보 우편 발송, 선거공보 전자파일 다운로드 등 다양한 선거공보의 수령 방법을 제공하고, 시각장애인이 그중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하도록 하면, 지금보다 점자공보를 수령할 시각장애인 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면 점자공보를 작성하고 발송할 때 생기는 어려움과 비용도 줄어들게 되어 점자공보를 원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면수 제한 없이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점자공보 면수제한 규정을 합헌이라고 보았다. 점자공보는 선거권 행사를 용이하게 하는 수단인데, 입법자인 국회가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사회적·경제적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작성 방식 등을 정할 자유가 있고, 지금 방식도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 판단은 점자공보를 국가가 제공해야 할 것이 아니라 제공하면 좋은 것으로 본 데에서 기인한다. 좀 부족하더라도 이 만큼 하였으니 되었다는 것이다. 철저히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의 시각이다.

헌법에는 비용과 기술 대신 선거권과 평등권이 적혀있다
  
 점자형 투표용지
 점자형 투표용지
ⓒ 김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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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의 국민주권의 원리는 국민의 합의로 국가권력을 조직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기회가 되도록 폭넓게 보장될 것이 요구된다. 오늘날의 민주정치 아래에서 선거는 주권자인 국민이 그 주권을 행사하는 통로이다. 이러한 국민주권의 원리와 선거를 통한 국민의 참여를 위하여 헌법 제24조는 선거권을, 헌법 제11조는 평등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선거권의 내용과 절차를 법률로 규정하는 경우에는 국민주권을 선언하고 있는 헌법 제1조, 평등권에 관한 헌법 제11조 등의 취지에 부합하도록 하여야 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주권과 대의제 민주주의의 실현수단으로서 선거권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입법자는 선거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선거권을 제한하는 입법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 따라 필요하고 불가피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그 제한이 정당화될 수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다른 대안을 살피지 않고, 단지 현실적 어려움과 비용을 이유로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조항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잘못이 있다.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지내왔음은 부정할 수 없고 불평등과 차별은 그들이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됨으로써 더욱 공고해져 왔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소외는 교육, 직업, 교통 등 다양한 생활영역에서 차별을 시정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하였으며, 그러한 차별은 다시 그들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정치적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막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가 알아서 점자공보 면수제한을 시정할 리 없다. 사법부는 다수결에서 소외되기 쉬운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여야 하는데, 이번 결정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슬로우뉴스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에 중복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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