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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사람들의 김장 스케일은 상상을 넘어선다. 100포기는 그냥 기본이고, 요즘엔 많이 줄어서 평균 200포기 정도는 한다. 웬만한 시골 농가에는 저온창고가 있기 때문에 1년 내내 먹을 김치를 저장할 수 있다. 대가족이 살았던 시대의 습관이 남아 있기도 하고 도시에 나가 있는 자식들과 형제들까지 챙기다 보니 김장을 할 때면 마을 단위로 하게 된다.

"이제는 힘이 들어서 못혀. 내년에는 나도 우리 식구들 먹을 꺼만 한다니께." 이렇게 말하면서도 매년 배추 심을 때가 되면 몇 백 포기를 심고 그 배추로 김장을 다 하면서도 못하겠다고 엄살을 부리는 게 시골 사람들이다.

얼치기 시골 사람인 나는 그런 엄살쟁이 시골 아줌마들이 한 통씩 퍼주는 김장 김치를 먹고 살았다. 엄살쟁이들을 능가하는 얌체 아줌마다. 나름, 내 몸통보다 큰 고무통에 절여 놓은 배추를 씻어주고 거들어준 대가로 정당하게 받은 김치다. 
 
여기까지는 사진을 찍는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다.
▲ 다듬어 놓은 배추 여기까지는 사진을 찍는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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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은 배추를 절이고 씻는 일이 가장 힘들다. 노하우가 집약된 노동이다. 평생 몸으로 하는 농사일로 뼈마디와 근육이 상한 시골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일이 '힘을 쓰는 일'이다. 김장을 하는 집에서 나는 주로 그런 '힘을 쓰는 일'에 앞장선다.

일을 요령이 없이 힘으로만 한다고 핀잔을 들어도 무거운 것을 겁 없이 들어주는 나를 동네 지인들은 꼭 부른다. 그렇게 남의 초빙 반, 나의 사심 반으로 지인의 집에서 하는 김장을 얻어먹기만 해도 충분했다.

그러니 김장에 관한 한 귀동냥으로 듣고 본 것만 많은 어설픈 이론가인 셈이다. 실제로는 10포기 이상은 혼자 해본 적이 없으면서도 김장에 관한 한 한소리를 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올해는 시골 인심도 판도가 달라졌다. 이게 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올해는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았다 

방송에서 김장 발 코로나 확진자가 연일 발표되자 우리 동네 사람들이 이웃집도 부르지 않고 식구들끼리 김장을 했다.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소문도 없이 김장을 후딱 해치워버렸다는 집들이 속출했다. 시골 동네의 여자 돌쇠같이 김장의 허드렛일 담당이었던 나를 부르는 집들이 한 집도 없었다. 아니 부르지 못했다고 했다.

배추 한 포기 사다놓지 않고 올해도 얌체 김장을 얻어먹을 생각이었던 나는 올해 겉절이 한 접시 못 얻어먹을 위기에 처했다. 대신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배추가 쌓였다. 이웃들이 나를 배려해 김장을 하고 남은 배추를 가져다준 것이다. 

어디에서 듣고 본 것만 많은 나는 과감하게 혼자 하는 김장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올해는 김장을 하는 과정조차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것은 작년에 지인의 집에서 배추 씻기의 과정에 참여해 내가 씻어놓은 배추. 다행히 휴대폰에 남아 있는 사진이 있었다.
▲ 절여서 씻어놓은 배추 올해는 김장을 하는 과정조차 사진을 찍지 못했다. 이것은 작년에 지인의 집에서 배추 씻기의 과정에 참여해 내가 씻어놓은 배추. 다행히 휴대폰에 남아 있는 사진이 있었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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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밑동에만 칼집을 넣고 양손으로 쫙 찢듯이 배추를 쪼개야, 절인 배추를 씻을 때 배춧잎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어디에서 들은 소리대로 배추를 다듬고 쪼개기 시작했다. 배추는 대략 70포기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배추를 쪼개 놓았을 때까지는 나는 홀로 하는 첫 김장 도전에 으쓱하는 마음이 들었다. 남들처럼 맛있게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순서는 소금물에 적셔 놓은 배추를 큰 통에 가지런히 놓으면서 소금을 켜켜이 뿌려가며 배추를 절이는 일이었다. 여기부터가 어디서 본 것만 있는 과정이라 소금의 염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난제에 부딪혔다.

"그냥 짭짜름하게 하믄 되는 겨. 우덜도 그냥 그렇게 가늠으로 하지 별 비법이 있간디..."

전화로 물어본 대답이 이랬다. 대략 난감이었다. 동네 돌쇠로 배추를 절일 때 간을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건 내 평생 김장을 직접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코로나가 나를 배추를 절이게 할 줄은 몰랐다. 어쨌든 배추는 절였다. 내 입맛으로 짭짜름하게...

배추가 절여지는 대략 12시간은 쪽파와 갓, 무채 등의 부재료를 다듬고 준비하는 시간이다. 고춧가루와 젓갈류, 다진 마늘 등의 양념류는 미리 며칠 전에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이론은 이렇지만 코로나 때문에 졸속으로 김장을 하는 나는, 전날 후딱 장을 봐서 재료를 준비했다. 재료 준비는 거의 끝냈지만 문제는 배추의 양에 알맞은 양념의 양을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배추 삼백 포기를 절이면 이 다라이로 양념을 이만큼만 하면 되는디... 다른 집들은 어떻게 허는지 모르니께."

모르겠다, 모르겠다, 도통 모르겠다  

동네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그들만의 수치화된 방식으로 말해줄 뿐 표준화된 레시피를 기대할 수가 없었다. 내 식대로, 주먹구구로 내가 좋아하는 양념은 많이 넣고 싫어하는 재료는 적게 넣는 식으로 양념을 만들기로 했다. 절여지고 있는 배추와 양념의 양을 눈대중으로 가늠하고 머릿속으로는 배추 한 쪽당 들어가는 양념의 양을 계산을 했다.

"김장은 오래 두고 먹어야 하니께 무조건 짭짜름허고 묽으름허게 간을 해야 한당게. 지금 간이 딱 맞으면 봄이 되면 맛이 없어서 못 먹는겨. 배추에 양념이 잘 묻게 하려면 묽으름해야 허고."

작년 어느 집 김장을 할 때 이런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났다. 하지만 그 '짭짜름한 간'의 기준을 알 수가 없었다. 남의 집에서 얻어먹었던 김장은 다 맛이 있었는데 막상 나의 김장에서는 네 맛도 내 맛도 나지 않는 것 같아서 불안했다. 이 시국에 누군가를 불러서 간을 봐달라고 부르는 것은 민폐인지라 혼자 속만 태웠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정신노동의 단계라 앞으로 다가올 무지막지한 육체노동의 시간이 기다리고 있는지 계산하지 못했다. 혼자 하는 첫 김장에 내심 뿌듯하고 도시에 사는 지인들에게 인심을 쓸 요량까지 하며 즐거운 마음뿐이었다.

배추가 절여진 건지, 내가 절여진 건지 
 
배추를 잘 씻기 위해서는 수압이 센 물과 3단계로 씻는 과정이 필요하다
▲ 절인 배추 씻기 배추를 잘 씻기 위해서는 수압이 센 물과 3단계로 씻는 과정이 필요하다
ⓒ 오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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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새벽잠을 설쳐가며 일어나 전날 절여놓은 배추를 씻는 데 돌입했다. 여자 돌쇠 체력을 자부했던 내 체력은 70포기의 배추를 씻는 동안 바닥을 보였다. 3명이 씻던 배추를 혼자서 씻자니 3배의 체력이 필요한 것을 계산하지 못한 것이었다.

겨우 배추를 씻고 나자 허리가 끊어질 듯한 극심한 통증이 밀려왔다. 따뜻한 아랫목에 허리를 지지며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첫 김장의 마지막 고지이며 하이라이트인 양념 넣기의 과정이 남아 있었다.

주방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배추에 양념 속을 넣기 시작했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은 절인 배추는 양념을 넣어도 넣어도 줄지 않는 것 같았다. 양쪽 어깨에 쌓이는 극심한 통증에 짜증도 두 배였다.

배추가 70 포기이면 네 쪽이나 두 쪽으로 잘라내면 평균으로 따져도 200여 번 이상의 손길이 가야 김장이 끝난다. 아침에 시작한 김장은 점심도 먹지 못하고 저녁 무렵에서야 끝이 났다. 김장의 전 과정을 혼자서 한 것은 처음이었다.

어디서 본 건 있는 실력으로 호기롭게 대든 나의 첫 김장은 극심한 허리와 어깨 통증의 기억으로만 남았다. 나의 첫 김장의 맛은 나도 모른다. 혼자서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맛에 대한 변별력을 잃었다. 김장을 한 지 3일이 지났지만 나의 첫 김장 맛은 '모르겠다'이다.

태그:#김장, #김장 발 코로나, #배추 절이기, #절임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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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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