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 07:40최종 업데이트 20.12.03 07:40
  • 본문듣기
아베 신조 전 총리가 궁지에 몰렸다.

그것도 한때 최고의 우군이었던 <요미우리신문>이 쏘아올린 특종 "벚꽃을 보는 모임의 전야제, 부족한 행사비 아베사무소가 지원했다"는 기사에 의해서다. 11월 24일 <요미우리> 조간 1면을 장식한 이 기사엔 아베 측이 지난 5년간 800만 엔 넘게 행사비를 지원했고, 그 차액 행사비에 관한 호텔 측의 영수증을 도쿄지검 특수부가 이미 확보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요미우리신문>이 쏘아올린 특종 "벚꽃을 보는 모임의 전야제, 부족한 행사비 아베사무소가 지원했다"는 기사. 11월 24일 <요미우리> 조간 1면을 장식한 이 기사엔 아베 측이 지난 5년간 800만 엔 넘게 행사비를 지원했고, 그 차액 행사비에 관한 호텔 측의 영수증을 도쿄지검 특수부가 이미 확보했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 요미우리신문

 
우파매체의 특종

이 기사가 힘을 발휘한 것은, 기사제목 앞에 붙는 '독자(独自)'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심심하면 '단독' 타이틀을 붙이지만, 일본 전통미디어가 '독자'(단독)를 붙이는 경우는 한 달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드물다. 그야말로 특종이라고 스스로 판단할 경우에만 붙이며, 실제로 그런 기사들은 십중팔구 다른 매체에서도 인용한다. 즉, 명실상부한 특종이 되는 것이다. <요미우리>의 벚꽃스캔들 기사는 라이벌 <아사히신문>은 물론 아사히 계열사 <아에라>에도 인용될 정도로 파급력이 엄청났다. <요미우리> 최초 보도를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아베 신조 수상 측이 주최한 '벚꽃 모임'의 전야제에 관해, 파티회장이었던 호텔 측에 지불한 총액이 작년까지 약 5년간 약 2300만 엔이었으나, 참가자들이 낸 회비총액은 1400만 엔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차액 800만 엔을 아베 측이 대신 냈을 가능성이 크다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호텔 측은 아베 쪽으로부터 차액을 수령했다는 증거로 영수증을 작성해 아베 측에 냈다고 한다. 특수부도 영수증의 존재를 이미 파악했다. (특수부는) 호텔 측은 물론 아베의 공인 제1비서 및 사설비서 외 아베신조후원회 인사 등 이미 20명 이상으로부터 임의취조를 끝냈음이 확인됐다."


"아베는 지금까지 '사무소 차원의 경비지출은 일절 없고, 사무소가 보전한 사실도 전혀 없다'고 설명해 왔다. 한편 아베의 사무소는 23일 '고발 당한 후부터 설명을 요구받았기에 수사에 협력하고 있으며 진지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 11월 24일 요미우리신문

등 돌린 우파

<요미우리>가 이런 기사를 내놓자마자 아베 전 총리 측에 섰던 사람들의 태도변화가 인상적이다. 아베와 비슷한 역사수정주의 우파 계열의 하시모토 도오루 전 오사카 시장은 29일 후지TV의 <일요보도 더 프라임>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아베 정권의 외교안보 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금융완화도 경제적 관점에서 100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 오사카 대개혁도 아베 총리의 협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하지만 거짓말은 안 된다. 이번에 나온 요미우리의 기사 등을 보면 호텔 측이 차액에 관한 영수증을 줬다고 하고 증거도 있고 확보도 이미 했는데, 지금까지 아베는 그런 거 없다고 끝까지 말한 거 아닌가. 자기가 직접 확인했다는 발언까지 국회에서 몇 번이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다 거짓말이라면… 이건 솔직히 중의원 자리도 사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시모토가 말하는 '거짓말'은 벚꽃스캔들에 관한 총리의 국회 답변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를 통해 몇 번 거론했지만, 벚꽃스캔들은 아베의 결정적인 스캔들 중 하나이다. 2017년 <아사히신문>의 특종을 통해 밝혀진 모리토모 학원과 가케 학원 스캔들이 '최초'의 스캔들이라면 2019년 하반기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 벚꽃스캔들은 아베의 사임은 물론 사법처벌까지 받게 할 수 있는 '결정적'인 스캔들이라 할 수 있다.
 

24일 오후(현지시간) 일본 국회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베 전 총리 측이 지지자 등을 초청한 호텔 만찬 비용 일부를 대납했다는 의혹에 관해 본격적으로 수사 중이다. ⓒ 연합뉴스


들통 난 아베의 거짓말

2019년 5월 공산당의 미야모토 도오루 의원과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가 내놓은 기사 및 국회 질의 등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취임하고서부터 정부의 연례행사였던 '벚꽃을 보는 모임' 규모가 나날이 커져간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보통 참석인원이 7천에서 1만 명 정도였던 것이 아베 정권 시절 1만 2천, 1만 4천 등으로 늘어나다가 문제가 터진 2019년에는 무려 1만 8200명이 참가했다.

정부 행사이므로 당연히 국가예산으로 진행하지만, 이 벚꽃 모임의 참가 대상자에게 총리대신이 직접 초청장을 보낸다. 즉 총리 개인 및 자신의 지지세를 과시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 그렇기에 초청장을 보내더라도 누가 봐도 사회적 공적이 뚜렷한 사람이나 유명인, 운동인, 문화인 등을 부른다. 그런데 이런 불문율이 아베 정권 들어서 이상해지기 시작해 야쿠자 등 조직폭력배 간부, 다단계 업체 대표 등이 이 행사에 참여해버린 것이다. 그들은 총리와 나란히 찍은 사진 혹은 아베 총리의 초청장을 자신들의 행사 및 홍보, 영업에 공공연히 이용해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아베는 또한 자신의 선거구인 야마구치현 지지자들을 초대해 수십 대의 단체버스에 태워 도쿄까지 오게 했는데 이 비용도 전부 예산에서 지불되었다. <아카하타>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무려 850명이 50대의 차량에 나눠 타고 도쿄에 왔다. 이들 교통비도 물론 국가예산으로 지불됐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은 물의는 빚더라도 아베 특유의 화법으로 잘 넘길 수 있었다. 사무적 착오라고 말하면 되니까. 하지만 예산에 규정된 것 이외의 행동, 이를테면 <요미우리신문>이 언급한 전야제의 비용을 사무소가 댔다고 한다면 전혀 다른 문제가 생긴다. 바로 일본 공직선거법의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지금까지 아베는 "전야제는 참가자들의 회비로 진행됐으며 매년 조금씩 달랐지만 5천 엔에서 1만 엔 정도 회비를 받고 그것으로 충당되지 않을 경우 호텔 측이 선의로 해결하거나 그런 걸로 알고 있다"라며 "사무소가 부족한 돈을 대신 내주거나 하는 정치자금법 상의 문제는 전혀 없다"고 강조해 왔다. 전야제 스캔들이 본격적으로 터진 작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아베는 자신은 잘못이 없으며, 호텔 측이 선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영수증이 없다고 공언했다. 또한 참가자 명부는 개인정보에 관련된 것이라 이미 폐기처분했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이 <요미우리>의 특종 한방으로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특수부가 이미 그 차액을 아베 사무소가 보전한 증거인 영수증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뇌물 및 뇌물공여죄에 해당한다. 공직선거법 상 뇌물에 관련된 것은 연좌제이므로 장부 기재 책임자의 구속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베가 이거 전부 비서가 해서 나는 모른다라고 발뺌을 해도 공동 사법 책임을 지게 된다.

실제로 아베의 측근 중 한 명인 가와이 안리 의원은 지난 6월 지역구 시의원들에게 뇌물을 뿌렸다는 죄목으로 구속돼 재판 중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보좌관의 유죄가 확정돼 그 역시 사법처벌을 받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 상황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벚꽃을 보는 모임' 관련 의혹을 보도하는 NHK 뉴스 갈무리. ⓒ NHK

 
"아베를 버렸다"... "스가 배려한 특종"

이렇게 되자 <요미우리>가 아베를 버렸다는 말도 나온다. 정치평론가 아리마 하루미는 "다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가 다시 나올 가능성이 있었는데 이것으로 총재는커녕 정계 은퇴를 고려해야 하게 됐다"며 "아마 요미우리가 모종의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스가 총리를 배려한 특종이라는 의견도 있다. 전 <주간현대> 편집장을 지낸 모토키 마사히코는 기자와 한 전화통화에서 "벚꽃스캔들은 스가 총리가 유일하게 관여하지 않은 스캔들인 데다가 스가 총리가 관방장관 시절 매스컴에 슬쩍 흘린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것"이라며 "가만 생각해보면 (벚꽃 이벤트는) 전부 이마이 비서관이 기획했었는데 지금 관저에 아베나 이마이 쪽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뭐, 결국 권력싸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되었건 이번 스캔들은 사법적 영역으로 넘어갔다. 사면초가에 몰린 아베는 이 난국을 과연 어떻게 헤쳐 나갈까. 만약 아베 전 총리가 아무런 사법적 책임을 지지 않고 또다시 정치적 판단과 결탁으로 사건 자체가 유야무야된다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봐야 한다.

매번 '한국의 대통령은 퇴임 후 모두 불행했다'고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한국 정치가 후졌다고 비아냥거리던 일본 매스컴과 식자층이 명백한 법률 위반을 행한 아베 신조 전 총리대신을 어떻게 논평할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