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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찾아 읽으며 위로를 받거나, 삶의 이유와 방향으로 삼는 시들이 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도 그런 시다.

2013년, 안도현 시인이 절필을 선언했다. 박근혜 정권에선 결코 시를 쓰지 않겠다는 것. 뉴스를 통해 관련 소식들을 접하며 오죽하면 그럴까? 이해되는 한편 안타깝고 아쉬웠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책표지.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책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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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상황에 시인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제가 20~30대를 보낸 1980년대 그 무렵에는 표현의 자유가 없는 나라, 정치 권력이 사람을 억압하는 시대였다. 당연히 그에 대해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80년대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사회적인 큰일에 대해 발언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작은 것들에 대해 쓰는 것도,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시라는 것이 시인의 마음속에 있는 정서나 분노 그런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전, 시는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을 대신 써주는 것, 시인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시집에서도 제가 하고 싶은 말보다 바깥의 이야기를 주로 썼다. 시인은 시를 쓰는 사람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시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늘 생각하고 고민한다. "-안도현, 방송 인터뷰 일부 정리
 
두 달 전인 9월 24일 아침, 매일 습관처럼 듣는 방송에서 조만간 시인의 새 시집이(<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창비 펴냄))이 나올 것이란 소식을 들었다.

'너에게 묻는다' 외에도 '간격', '스며드는 것', '모퉁이' 등, 힘들거나 허전할 때면 찾아 읽곤 하는 안도현 시인의 시들이 좀 있다. 가족들도 헤아려주지 못하는 삶의 고단함이나 관계의 어려움을 위로받곤 하며 고마움으로 읽던 시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반가운 소식이었다.
 
6월에 제주 여행 가서
멀구슬나무 꽃 핀 것 보지 못했다면
김포공항으로 돌아오지 말 일이다

-'식물도감'에서
 
시집 제목이 길다. 이제까지 낸 시집 중 가장 길다고 한다. 시집 제목은 76편으로 된 연작시인 '식물도감' 중 한 편이다. 응원의 마음으로 산 시집이기도 하지만, 이 시와 함께 방송으로 소개된 연작시 '식물도감'에 대한 궁금 때문에 산 시집이다.

 
 2014년 6월 중순, 강진에서 만난 멀구슬나무 꽃이다.
 2014년 6월 중순, 강진에서 만난 멀구슬나무 꽃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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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구슬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혹은 남부지방 곳곳, 사람 사는 곳 가까이 자라는 나무다.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는 6월에 연분홍과 연보라색이 조금 스민 듯한 꽃잎을 펼친다.

고창 군청 앞에 200년 된 멀구슬나무(천연기념물 503호)가 있다. 강진과 보성에서도 봤던 멀구슬나무다. 제주도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자라는 그런 나무인 것이다. 그럼에도 시인이 구태여 멀구슬나무 꽃을 제주도와 연결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지 제주에 이게 특히 많기 때문일까?

지금이야 많은 사람이 여행지 제주도를 선망하지만, 옛날엔 유배의 지역이었다. 지금처럼 피임이 쉽지 않았던 시절, 제주도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때 멀구슬나무 줄기를 달여 먹어 임신을 중단했단다. 제주를 먹여 살린 여성들에게 원치 않는 임신은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을 것이다. 멀구슬나무는 제주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을 간직한 그런 나무인 것이다.

오동나무는 딸이 태어나면 심어 키워 그 딸이 시집갈 때 장을 짜주던 나무로 많이 알려졌다. 제주도에서는 멀구슬나무가 오동나무 같은 쓰임새를 대신했다고 한다. 살충제나 구충제로, 피부염을 다스리는 약으로도 유용하게 쓰였다는 멀구슬나무다. 물자도 귀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집 가까이 심었을 것이고, 그래서 더욱 제주도에 흔한 나무가 되었을 것이다.

'쉼'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지역을 알고자 여행하기도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여행지는 맛집이나 멋진 풍경, 명소 등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런데 그런 것들만으로 한 지역을 얼마나 알 수 있을까? 멀구슬나무에 얽힌 제주도 사람들의 사연처럼, 그 지역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땅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식물도감'이다.
 
두 눈이 있느냐
개불알풀꽃 들여다보아라

-'식물도감'에서
 
코로나로 모두 힘들다. 지난날 오랫동안 자영업자로 살아봤기 때문일까. 코로나 관련 뉴스를 볼 때면 오래전 자영업자로 힘들게 버텨내야만 했던 시절이 겹쳐 떠오르며 '지금 오죽들 힘들까?' 생각하게 되고, 그런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맺히곤 한다.

그만큼 힘들었다. 얼마 전의 힘들다는 하소연은 차라리 엄살에 불과했다는 자책까지 들 정도로 악재가 되풀이됐다. 설상가상, 운영 중인 가게마저 적자였다. 그럼에도 경제가 풀리면 좀 나아질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접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던 2006년 1월, 간월도와 태안반도를 여행하다 어느 길가에 올망졸망 피어난 개불알풀꽃 무리를 만났다. 개불알풀꽃은 대표적인 봄 풀꽃이다. 그런데 한겨울에도 남도처럼 따뜻한 지역 양지바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기도 하다.

오죽 절실하면 짧은 겨울 햇볕을 바라기로 해 꽃을 피웠을까? 겨울에 피어난 개불알풀꽃이 실낱같은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우리 처지와 겹쳐지며 위로가 되었다. 겨울 혹독한 바람 속에 저렇게 작은 풀도 꽃을 피우는데 우리가 주저앉으면 안 되지, 용기를 얻었다.
 
 2014년 2월 말, 아홉산숲(기장) 인근 마을에서 만난 개불알풀꽃이다. 대표적인 봄 풀꽃이지만 한겨울, 따뜻한 지역 양지바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다.
 2014년 2월 말, 아홉산숲(기장) 인근 마을에서 만난 개불알풀꽃이다. 대표적인 봄 풀꽃이지만 한겨울, 따뜻한 지역 양지바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꽃이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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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불알풀꽃은 특히 작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것들을 헤아리는 눈이 없으면 쉽게 찾을 수 없는 꽃이다. 저마다의 존재 이유에 공감하지 못하는 마음으로는 예쁘거나 귀하게 볼 수 없는 그런 풀꽃이다. 오랜만에 힘들던 시절 나를 위로해준 개불알풀꽃을 떠올리며 힘을 얻었다.

식물도감은 이처럼 꽃의 생김새나 특징, 자라는 곳, 사람들과의 사연 등을 한 줄 혹은 두세 줄, 많아봤자 다섯 줄로 표현해 엮은 연작시다. 외에도 벚꽃, 제비꽃, 찔레꽃, 강아지풀, 모과꽃 등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꽃과 나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또 다른 시 '그릇'도 가끔 찾아 읽으며 위로를 받게 될 것 같다. 삶의 이유와 방향으로 삼는 시가 될 듯하다. 글이 길어졌지만, 꼭 들려주고 싶다.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그릇' 일부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지은이), 창비(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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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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