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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둘이 담근 김장
▲ 배추 소 넣기 남편과 둘이 담근 김장
ⓒ 정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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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편하다."
"애들이 같이 해도 당신이 하는 일이 많으니깐 몸은 여전히 힘들지."
"맞는 말이네. 애들이 와도 내가 해야 할 일은 내가 해야지. 애들한테 모두 맡기지는 못하지. 작년에도 봐. 배추 절이는 것을 당신(남편)이 소금을 더 넣으라고 해서 애들이 절인 것은 몇 시간 되지 않아 푹 절여져서 새벽 1시에 나와서 씻었고 김치가 물러서 먹기도 나빠 찌개나 해 먹어야 했잖아. 그 김치 아직 남아 있고..."
"작년 김장김치가 아직 남아있어?" 


작년까지는 딸,사위 아들 며느리 모두 모여 김장을 했다. 난 뒤 베란다에서 애들은 앞 베란다에서 배추를 절였다. 남편은 애들보고 소금을 더 많이 넣어야 잘 절여진다는 소리에 배추 100포기도 더 절일 수 있는 소금을 썼다. 올해는 내가 혼자 느긋하게 절이니 소금이 작년보다 1/4 정도만 썼다. 물론 작년보다 배추가 차이는 있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이다.

한해가 다르게 변하는 김장 문화 

김장 문화도 한해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올해는 여름 장마가 길어 채소, 양념 등 모두 비싸 김장을 포기한다는 '김포족'이 늘어나고 있다고 메스컴에서 전하기도 한다. 함께 운동하는 언니들에게도 물어보니 "김치를 먹으면 얼마나 먹어. 힘들게 안 하고 맛있는 김치가 널려있는데 나도 이젠 편하게 사 먹기로 했어" 한다.

젊은 친구들은 아예 김장에 '김'자도 꺼내지 않는다.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 딸과 며느리 생각이 났다. 딸과 며느리는 김장을 한다고 하면 안 올 수도 없고 오자니 또 그렇고. 그래서 올 김장은 소문내지 않고 남편과 둘이 하기로 했다.

정말 힘들고 하기 싫으면 사 먹을 수도 있지만 당분간 사 먹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남편이 주말농장을 그만두지 않으면 불가능하고 아직은 김장을 담가 먹자는 편이기도 한 것이다. 긴긴 여름장마가 끝나자마자 남편은 김장배추 심을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 배추는 몇 포기 심을까?" 
"조금만 심어. 딸아이도 엄마 힘들다고 사 먹거나 조금만 하라고 하잖아."
"알았어. 조금만 심든지 모두 팔아버리든지 할게."


남편이 삐친 듯이 말하곤 했다. 해마다 70~80포기 정도 하다가 올해는 20포기만 하려고 했는데 남편은 35포기를 가지고 왔다. 배추를 뽑는데 본 사람들이 팔라고 해서 그나마 팔고 남은 것이라 했다.

난 둘이서 할 건데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니 남편이 도와준다고 한다. 사실 우리 두 부부 10포기만 해도 내년 햇김치 해먹을 때까지도 실컷 먹을 수 있다. 남편은 약속대로 무 씻고 채 썰고 갓, 파 등 양념거리도 모두 씻어 주고 난 배추 절이고 씻고 배추 소를 넣었다.

힘은 들었지만 그런대로 잘 끝났다. 점심으로는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올해 먹어보고 많으면 내년에는 조금 줄여서 합시다"했더니 남편도 그러자고 한다. 남편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김장을 담근 것이 처음이니 느끼는 점이 있는 듯했다.

내년에도 사 먹지 않으면 남편과 둘이서

점심을 먹고 나니 딸아이가 잠시 들렸다면서 우리 집에 오더니 깜짝 놀란다.

"엄마 김장했어요?"
"아빠하고 둘이 했어."
"엄마는 김장한다는 말도 없이 웬일이야. 허리도 아픈데."
"너한테 말하면 당연히 오겠지. 이젠 너나 며느리한테도 알리지 않고 하련다. 김장한다고 하면 넌 무슨 막중한 책임감이라도 있듯이 달려오잖아. 이젠 그러지 않아도 돼. 이왕 왔으니 겉절이 맛 좀 봐."
"음 엄마 맛있다. 우협이가 잘 먹겠네. 내년에는 조금 해도 불러. 막걸리라도 먹어야지."


딸아이가 못내 서운해하는 기색이었다. 여태 김장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온 딸아이도 이젠 자유롭게 해주고 싶다. 부모 마음은 김장이란 핑계로 애들도 한 번 더 보고 새로 담근 김치와 밥도 함께 먹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것은 어쩌면 일방적인 내 마음이란 생각도 들었다.

요즘은 김치를 예전처럼 많이 먹지도 않거니와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으로 골라 사 먹을 수 있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 김장하기 전 딸아이가 산 김치맛을 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그러니 김장한다고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내년에도 내가 사 먹지 않고 김치를 담가 먹을 생각이라면 올해처럼 소문내지 않고 남편과 둘이서 조용한 김장을 할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


태그:#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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