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이전기사 '누가 봐도 비범한 스님을 누가, 왜 죽였을까'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지난 번에 우리는 이동인 스님이 동경주재 영국 외교관에 대한 정보를 부산에서 어떻게 획득했는지, 그 수수께끼를 풀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그 시기 즉 1880년 전후의 상황은 조선이 자주근대국가로 발돔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일본은 아직 조선을 삼킬 힘이 없었고 청나라의 내정 간섭은 심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어떤 외국 군대도 조선에 주둔하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고종이 개화진보 쪽으로 기울었으며, 민씨 세력의 총아이자 민비의 조카로서 실세 중의 실세였던 민영익이 개화파(1884년 수구파로 전환함)에 속해 있었습니다. 또한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훈도된 개혁세력이 뭉치고 있었구요. 하지만 아무도 일본을 넘어 서양국가에 직접 도전할 생각이나 용기를 갖지는 못했습니다. 오직 이동인 스님 외에는.
 
 이동인은 영국 제국주의의 마성을 궤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이동인은 영국 제국주의의 마성을 궤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이동인이 일본에 밀항한 것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관찰하고 배우려는 것이었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입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일본이 아니라 영국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무엇때문에 부산에서 사토우에 대한 정보를 탐문했겠으며, 왜 동경의 사토우 집을 애써 찾아갔겠으며, 또 무엇때문에 그토록 긴밀히 사토우를 접촉했겠어요?

이러한 새로운 사실을 우리는 사토우 문서를 통해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그간 일부 논자들을 이동인을 친일파의 원조라고 규정하는데, 앞으로 보겠지만 사토우 문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당시 영국은 대포와 함정을 비롯한 해군력에 있어서나 산업 및 과학 기술에 있어서명실 공히 세계 최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동인 스님은 표적을 제대로 설정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우리 미국은 '대영제국'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했습니다. 일례로서 일본 공략을 앞두고 있던 페리 제독은 1853년 초 정부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의 막강한 해상 라이벌인 영국(our great maritime rival, England)의 동방점령을 바라볼 때, 그리고 그들이 지속적이고 신속하게 요새화된 항구를 늘려가고 있음을 볼 때, 우리는 즉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지도를 놓고 보면, 대영제국이 이미 동인도와 중국해의 요충지를 거의 다 점유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행히 일본과 태평양의 많은 섬들에는 아직 영국의 손이 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곳들은 우리 미국에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상업 루트 상에 놓여 있으므로 이 호기를 놓쳐서는 아니되며" 따라서 자신에게 속히 함정을 증파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처럼 우리 미국과 라이벌 영국은 동아시아를 상대로 레이스를 벌이고 있는 형국이었지요. 이동인이 영국을 부국강병의 표본으로 삼았다고 해서 영국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는커녕 영국 제국주의의 마성을 궤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1880년 5월 일본 흥아회 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영국인의 아편장사는 막대한 이익을 쓸어가기 위해 아시아인들에게 독을 쓴 것으로서, 만일 청나라가 아편에 불을 지르지 않았다면 다른 나라에까지 아편 판매가 확대되었을 것이 틀림없다(英人始造鴉片 將以網我洲之利 毒我洲之人民淸人焚之實出於不得已之政若淸人不焚則必載而之他邦)"고 지적합니다.

이동인은 더 나아가 "저들이 부강함을 믿고 거만하게 구는 것은 대개 상공업의 이익과 함포의 정밀함 때문이다. 우리가 몇 해 후 그 기술을 모두 습득한다면 저들이 무엇을 믿고 우리를 모멸할 수 있으랴(然彼所恃以富强自傲者盖工商之利艦砲之精已而數歲之後我民皆得其術彼將恃何以侮我耶)"라고 토로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왜 이동인이 영국을 목표로 삼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서둘러 그들의 장기를 배워야 한다고 절감한 것이지요. 이동인은 말이나 생각에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영국을 시찰하려 했습니다.

그가 사토우를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런 뜻을 밝혔음을 사토우가 일기에 적고 있습니다. 이동인이 영국 제국주의의 마성을 꿰뚫고 있으면서도 영국에 도전한 것은 오랑캐의 장기를 배워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사상이고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을 들어가려는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본인들이 이미 영국 유학을 했음을 이동인이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5명의 일본인들이 벌써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5년 전인 1863년에 영국유학을 감행하였습니다. 정부의 허락을 받고 간 게 아니라 목숨 건 밀항이었습니다. 그 5명은 훗날 메이지 유신에 큰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토우 히로부미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처럼 일본인들이 영국 밀항을 감행한 지 17년이 지난 1880년 조선에서는 이동인 스님이 그 길을 가려 했던 일을 우리는 지금 보고 있습니다. 이루어질 수도 있는 꿈이었습니다. 아마 이동인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는 사토우의 주선으로 영국행을 했을 겁니다.

이동인은 1880년 8월 조선에서 온 사절단의 수장 김홍집을 동경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것이 이동인의 삶에 극적인 전환을 가져다 줍니다. 이동인에 매료된 김홍집이 귀국할 때 그를 은밀히 데리고 갑니다.

귀국 후 이동인은 민영익의 사랑방에서 기거하면서 고종임금을 자주 알현하기에 이릅니다. 국법을 어긴 중의 처지를 완전히 벗어나 등천하게 된 것이죠. 이동인은 임금을 설득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하여 이동인의 주청으로 1881년 봄 일본에 신사유람단이 파견됩니다. 그 정황을 훗날 윤치호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군요.
 
"서력 1881년, 청년 재상 민영익씨 집 사랑에 이동인이라는 중이 있었지요. 이 사람은 일본 사정을 잘 알고 일본의 개화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하였으므로 민영익씨의 총애는 물론, 상감께서도 여러 번 불러 보실 새, 그의 발의로 일본 신문명을 시찰하고자 양반 12인을 선정하여 일본으로 보내었소. ....우리 일행은 육로로 부산에 이르러, 통역으로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 몇을 데리고 안녕환이라는 조그마한 기선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기선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작은 배였지만, 그 때는 화륜선이라고는 처음 보는 배라, 이런 배도 세상에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지요."
 

이렇게 이동인의 발의로 신사유람단의 방일이 이루어졌음에도 정작 그 자신은 신사유람단이 출발하기 직전에 증발해 버렸습니다. 당시 고종은 이동인에게 별도의 기밀 미션을 주었습니다.

은밀히 일본에 건너가 무기와 함선을 구입하는 문제를 탐색해 보라는 거였습니다. 이동인은 신사유람단에 앞서 출발하려던 참이었는데 어느날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3월 하순 어느날. 도대체 누구가, 어떤 세력이 모살했는지 어떤 실마리도 나온 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동인이 일본으로 잠입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 이런 의문이 제기된 바는 없습니다. 헌데 1881년 8월 23일자 동료 아스턴Aston(당시 나가사키 주재 영국 영사)에게 보낸 사토우의 편지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옵니다.
 
"이동인이 나가사키에 도착했다는 정보가 사실이기만을 바랍니다. 그는 정말로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니까요. 만일 목이 붙어있기만 한다면, 그는 틀림없이 자기 나라 역사에 족적을 남길 겁니다. I hope the information that Tong-in has arrived at Nagasaki may prove to be correct, for he is really a very interesting man and if he can keep his head on his shoulders, pretty sure to make his mark in the history of his country."
 
 
여기에서 우리가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이동인이 증발한 지 근 5개월이 지난 시점까지 그 행방에 대해 아스턴과 사토우가 정보를 교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동인이 나가사키에 왔다는 풍문 혹은 막연한 가능성을 아스턴으로부터 전해듣고 사토우가 위와 같이 회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이동인의 생존에 대해 두 영국인이 그 때까지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울러 사토우가 이동인을 매우 비범한 인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토우 문서를 좀 더 살펴 보도록 합시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