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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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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어머님 생신날, 저는 큰아들로서 큰맘먹고 그동안 모아놓은 용돈으로 어머님께 조금 값이 나가는 고급진 음식을 사드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환영받지 못한 삶. 먼저 태어나고 곧 세상과 이별했다는 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살아온터라 울엄니는 나이도 생일도 이름도 없이 살아오셨습니다.

모질은 가난 속에 입하나 덜자고 부모는 스무살도 되기전에 10살이나 더 나이든 사람에게 시집 보내버렸습니다. 서울에서 가기 싫다는 엄니를 이끌다시피 해 강원도 횡성 산골로 무서운 발걸음을 옮겼다고 합니다.

가고보니 화전민. 지아비 얼굴 한 번 못 본 채 반강제로 혼인시키고 친척은 가버렸다고 합니다.

몇날 며칠 걸어서 들어간 산골이라 어디가 어딘지 몰라 도망도 못가고 살수밖에 없었다는 엄니 이야기에 마음이 시렵습니다.

큰아들로서 누구보다 엄니의 고생한 삶을 잘 알기에 늘 잘해드리고 싶지만 세 자녀 사는 것도 힘든 상태라 지난해엔 생일날 찾아뵙지 못했었습니다. 자식 하나 찾아오지 않아 서운하고 슬퍼서 우셨다고 합니다. 팔순에 가까워지고 가까운 피붙이 자식뿐인지라 그런 날이면 더욱 그리울지도 모르지요.

며칠전 생일날엔 작은 케이크도 하나 사 영덕에 사는 여동생네도 불렀습니다. 작은 아들은 버스운전으로 오지 못했고요. 생일 축하 노래도 불러드리고 가족 모두 처음 접하는 요리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촛불을 끄며 웃음가득한 엄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음날 다시 안부전화 드리며 어제 어땠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간단하게 답했습니다.

"행복했다. 고맙다. 우리 큰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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