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르모 파레데스 FIVB 경기규칙·심판 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과 아리 그라사 FIVB 회장(앞줄 중앙)

기예르모 파레데스 FIVB 경기규칙·심판 위원회 위원장(앞줄 왼쪽에서 3번째)과 아리 그라사 FIVB 회장(앞줄 중앙) ⓒ FIVB 홈페이지

 
국제배구연맹(FIVB) 경기 규칙과 심판 문제를 총괄하는 수장인 FIVB 경기규칙·심판 위원회 위원장이 김연경의 네트 행위와 강주희 주심의 판정에 대한 답변을 국내 언론에게 보내오면서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기예르모 파레데스 FIVB 경기규칙·심판 위원회 위원장은 25일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그는 "이런 접근법(FIVB 규칙 사례집 6.5에서 설명한 처리 방법)에 기초하면, 그 주심(강주희 주심)은 FIVB 공식 문서들에 규정된 지시를 정확하게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한편으로는 주심이 종합적인 상황(정황, 동기, 격렬함 강도, 위법행위의 심각성 등)을 평가하는 판단 기준에 의존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불가능한 몇 가지 상황이 있다"며 "이런 경우에는 주심의 판정이 항상 승리해야 한다(주심의 판정을 항상 존중해야 한다는 뜻)"고 강조했다.

그는 또 "사실의 관점에서 강주희 주심은 이번 사안에서 FIVB 규칙 사례집과 완전히 일치하는 '올바른 결정'을 내렸다"고 결론을 내렸다.

답변이 공개된 이후 배구계 일각에선 최신 FIVB 규칙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일부 한국배구연맹(KOVO) 인사들이 자신들만의 자의적인 기준으로 김연경 행위를 재단하고, 강주희 주심을 징계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FIVB 심판위원장 "규정과 완전히 일치한 올바른 판정"

강주희 주심 징계를 주도한 KOVO 내 특정 인사들은 그동안 일관되게 "김연경 행위는 FIVB 규칙 위반이고, 강주희 주심은 FIVB 규칙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에 징계했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징계 회의에 참석했던 조영호 KOVO 총재 특보, 류근강 KOVO 심판실장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똑같은 주장을 했다. 

조 특보는 지난 19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김연경의 행동은 FIVB 규칙상 '무례한 행위'이다. 만약 제가 그 당시 주심을 봤다면, 세트 퇴장을 줬을 것"이라고 밝혔다. 류 실장도 "FIVB 규정을 적용했으면 차라리 세트 퇴장이라도 시켰어야 한다. 규정 적용을 못 했기에 강주희 주심은 징계감"이라고 답변했다. 

KOVO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12일 언론 보도자료를 통해 "김연경 선수의 행위에 대해 주심인 강주희 심판이 선수를 제재하지 않고 경기를 진행한 점에 대해 잘못된 규칙 적용이라 판단하고, 해당 심판에게 제재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징계 사유가 '잘못된 규칙 적용'이었다는 점을 명확하게 공표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규칙'은 국제배구연맹(FIVB) 규칙을 말한다. KOVO는 김연경이 행한 네트 잡기에 대한 로컬룰을 따로 정해놓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V리그 대회 요강 제21조에도 "경기 규칙은 '현행 국제배구연맹(FIVB) 경기 규칙'과 KOVO가 제정한 별도의 규칙(로컬룰 포함)을 함께 적용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징계 주도 인사들 주장, '자의적 규정 해석' 불과

김연경 행위에 대해 레드 카드나 세트 퇴장을 줬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강주희 주심이 이미 2세트에 김연경 선수에게 구두 경고를 줬고, 4세트에 흥국생명 박미희 감독에게 옐로카드 경고를 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경고 카드는 줄 수 없고, 5세트 김연경 행위에 대해서는 더 높은 단계인 레드 카드나 세트 퇴장의 제재를 주는 게 FIVB 규칙 단계상 맞다"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FIVB 규칙을 도식적으로 파악한 것에 불과하다. FIVB 규칙에는 배구 경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각 사례별로 일일이 규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연경 행위에 대해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무례한 행위'로 볼 것인가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현역 심판, 현역 프로 감독들조차 서로 의견이 판이하게 다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FIVB는 올해 공지한 '2020년판 규칙 사례집'을 통해 김연경 행위와 유사한 사례를 설명하면서 판정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김연경의 행위 정도로는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다(강주희 주심에게 소명 기회 안 줘... KOVO '부당 징계' 논란).

더군다나 김연경의 행위는 규칙 사례집에서 예시로 든 행위들보다 더 가벼웠다. 랠리가 이미 종료된 상태에서 자신의 공격 실패에 대해 실망스럽고 분에 못 이겨서 하는 행위였고, 상대팀에게 자극 또는 플레이에 혼동을 주거나, 상대팀 선수와 언쟁을 벌인 것도 아니었다. 또한 심판에게 항의한 것도 아니었다. 

"경기 동안 주심의 결정은 최종적" 명시
 
 흥국생명 선수들 경기 모습... 2020-2021시즌 V리그

흥국생명 선수들 경기 모습... 2020-2021시즌 V리그 ⓒ 한국배구연맹

 
설사 징계를 주도한 KOVO 인사들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해도 '강주희 주심 징계는 부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연경 행위가 제재 대상인가에 대해 관점과 의견이 분분할 경우,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를 현행 'FIVB 배구 경기 규칙서'가 이미 명확하게 정답을 제시해놨기 때문이다. 바로 '주심의 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규칙서는 "주심은 심판진 및 팀 멤버 모두 통제할 권한이 있다. 경기 동안 주심의 결정은 최종적이다"고 명시했다. 또한 "주심은 규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포함하여, 경기에 관계된 어떤 문제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못 박았다. 규칙서는 또 "주심의 판단 및 위반의 심각성 정도에 따라 제재의 범위가 적용된다"고 규정했다.

사태 키운 핵심 KOVO... '후속 대응' 주목

KOVO 일부 인사들의 징계 주장도 어떤 면에서는 FIVB 규정을 자신들의 관점과 기준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번 사안이 논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실 KOVO는 지난 12일 강주희 주심 징계를 발표할 때부터 논란을 키웠다. 언론매체와 누리꾼 사이에서 '주심만 징계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 '선수를 징계 안 하기로 결정했으면 주심도 안 했어야 한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설상가상으로 강주희 주심 징계가 'FIVB 제 규정과 어긋난 부당 징계'라는 증거들이 속속 나오면서 KOVO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KOVO가 FIVB 경기규칙·심판 위원장의 답변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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