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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은 1988년부터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기념해온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한국에서는 2006년부터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과거 질병관리본부는 이날을 감염인을 배제한 채 '에이즈 예방의 날'로 임의 해석하고 의례적인 행사를 진행했다. 이에 운동진영은 감염인의 인권을 증진하는 것이 곧 예방의 지름길이라는 주장을 내걸고 2006년부터 HIV 인권단체, 감염인단체를 포함하여 인권단체, 성소수자단체, 보건의료단체들이 함께 12월 1일을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로 선포해 인권주간을 준비해 왔다.

HIV 감염인, 코로나 상황 속 감염병에 대한 스트레스 심화

그리고 올해 HIV/AIDS 감염인 인권의 날 15년째를 맞이하며 HIV 감염인들은 또 다른 현실과 마주했다. 국가가 코로나19를 대응하는 방식, 우리 사회가 감염병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것을 보며, HIV 감염인이 감염 초기 경험했던 정신적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겪었다. HIV 감염인이 감염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의 경험과 코로나19 상황에서 겪은 스트레스가 비슷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HIV 감염인에게 감염 초기는 질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가장 높은 시기로 이때 적절한 상담과 지원, 친구와 가족 등 친밀한 관계 안에서의 도움이 절실하다. 감염된 사실조차 본인 스스로도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주위에 알려서 도움을 청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HIV 감염인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된 확진자에 대한 비난과 조롱을 보며 자신들의 감염 초기의 순간이 떠오른 것이다. 물론 제한된 감염 경로 속에서 감염되는 HIV 바이러스와 지금의 코로나 팬데믹 현상은 여러 가지로 조건이 다르다. 그렇지만 감염병에 걸린 감염인(확진자)에 대한 비난과 조롱, 낙인의 현실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5월 이태원 코로나 집단감염 사태 속에서 게이 커뮤니티에 대한 사회적 비난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 번 욕먹어 본 사람들이 그 마음을 알았을까? 1980년대 에이즈 위기 이후로 지속적으로 에이즈에 대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온갖 비난과 욕을 먹어본 경험이 있는 게이 인권단체 등 성소수자 인권단체들과 HIV 운동단체들이 즉각적으로 모여  코로나19 성소수자 대책본부를 꾸려 대응했다. 그런데 이 대응 과정에서도 우리는 지독한 낙인과 마주했다. 선별검사 사전 질문 중에서 오히려 검진에 장벽이 될 수 있는 HIV의 감염 여부를 묻거나, 코로나 확진자 중 HIV 감염 사실이 아우팅이 되는 것,  그리고 코로나19 대응 상황에서 HIV 감염인의 치료는 뒷전으로 밀리기도 했다. 

국가와 사회의 감염병에 대한 차별적 인식 드러나 
 
6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강서구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사흘 동안 관내 에어로빅학원과 관련해 모두 52명이 확진됐다.
 6일 오전 서울 강서구보건소 선별진료소를 찾은 시민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강서구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사흘 동안 관내 에어로빅학원과 관련해 모두 52명이 확진됐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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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욱 문제였던 것은 국가와 사회가 감염병에 대응하는 접근방식이다. 당시 방역당국 및 지자체는 핸드폰의 GPS 데이터, 카드 결제 기록, CCTV 기록, 대중교통 이용 기록 등을 총동원하여 이태원 소재 클럽을 방문한 5517명, 당시 그 일대를 방문한 5만여 명의 사람들의 개인 정보를 추적했다. 그리고 언론이나 SNS, 메신저 단체 톡방, 일상의 대화에서는 게이들이 하룻밤 사이 클럽 다섯 군데를 방문한다는 것, 수도권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게이들이 이태원 클럽을 방문한다는 것, 게이 커뮤니티의 휴게텔 문화 등이 소재거리로 다뤄지며 가십화하고 조롱당했다.

국가가 방역의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추적하고 특정 집단을 지속적으로 혐오와 편견의 잣대로 가십화하여 낙인 찍는 것이 AIDS를 비롯한 감염병에 대한 국가의 일관된 접근방식이자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모든 해결책을 이 글에 담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 우리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혐오와 차별적 제도, '차별금지법 제정' 통해 개선해야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와 에이즈에 대한 온갖 혐오와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혐오 단체, 일부 보수 개신교 단체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선정적 문구를 써가며 낙인을 공고히 하는 호들갑스러운 언론 보도 역시 문제다. 또한 후천성면역결핍증예방법 중 제19조 전파매개행위 금지 조항은 감염인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며 다른 감염 질병과 달리 HIV 감염인만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심각한 차별 조항이다.

국가가 아무리 에이즈 예방을 위해 지속적인 예방 정책을 펼치고 과학적 정보를 홍보하고, 감염인 치료를 위한 지원 정책을 펼친다고 하더라도, AIDS와 감염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양산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가 에이즈 정책의 효과는 절대 기대할 수 없다. 

다행히도 지난 6월 말 21대 국회에서 7년 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발의됐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감염병 퇴치 지침으로 일관되게 '차별금지'를 말하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치료제가 나온 지 오래됐고, 침이나 일반적인 접촉으로 감염되지 않는 다는 것도 지극히 상식이지만, 에이즈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심각한 사회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검사 받고 치료 용기를 내는 것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질병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으로 인해 오히려 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것이 질병에 대한 공포를 더욱 키우고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이를 우리는 이태원 집단감염 상황 속에서 마주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사유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차별과 배제 당하지 않도록 존중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는 법이다. 이러한 불가침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현실 속에서 차별금지법은 질병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와 사회적 낙인을 바로잡을 수 있다. 그리고 차별적 법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근거로 작동하게 된다. 

감염병은 질병이지만 인간으로서 우리가 직접 마주하는 것은 그 바이러스를 지니고 치료약을 먹으며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바로 사람이다. 내 주변에 감염인들이 보이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질병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우리는 감염병에 대해 무관심한 채 남의 일처럼 살아갈 수 없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동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고 존중하며 대해야 바로 보이는 것처럼 서로 힘을 내야 질병도 이겨낼 수 있다. 우리는 언제 어느 순간 도움이 필요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종걸님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이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입니다.


태그:#HIV/AIDS, #코로나19, #감염인인권,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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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차별의 예방과 시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 행동하는 연대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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