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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분노가 대한민국을 감쌌다. 이른바 N번방·박사방 등을 통칭하는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의 민낯이 드러난 직후의 일이다.

주범 조주빈을 비롯한 관련자들의 잔혹한 범행에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주목할 것은 당시 이들이 든 피켓의 문구였다. 'N번방은 판결을 먹고 자란다', '사법부도 공범이다'라는 내용이 적혔다. 시민들의 분노는 가해자 개개인을 넘어 사법부 또한 정조준했다. 성범죄 재판에서 숱한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온 재판부를 향한 불신이자, 미비한 법제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다음은 없다

"재판부가 미뤄왔던 다음의 순간이 바로 지금이다. 이젠 재판부가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 결단을 내릴 때다. 더 이상의 다음은 없다."
 
 조은호 변호사
 조은호 변호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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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호 변호사(N번방 피해자 공동대리인,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는 사법부가 되풀이해온 관행을 깰 순간이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26일에 있을 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주범 조주빈씨와 공범 5인의 선고에서조차 재판부가 엄벌을 내리지 않는다면, 디지털 성범죄 처벌의 변화 또한 더딜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조 변호사는 "피해자들은 조씨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된 뒤로도 그가 구치소에서 추가 범행을 벌이지 않을까 불안해하고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일부 피해자들은 조씨 선고를 앞두고 해당 재판부(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0부, 재판장 이현우)에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조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조씨와 공범들이 재판부에 제출한 반성문을 비판한 내용이 탄원서에 담겼다고 밝혔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사과 하나 없이 재판부에만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는 위선일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확인 결과, 조주빈씨는 5월부터 10월 26일까지 총 112편의 반성문을 작성했다. 10월 13일부터 11월 20일까지는 17편의 호소문을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공범 5인 또한 선고를 앞두고 반성문과 호소문을 번갈아가며 제출했다. 이를 두고 조 변호사는 "이들이 작성한 내용을 읽어봤지만 반성문이라고 느낄 수 없는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재판부에 직접 호소한 내용은 무엇일까. 반대로 가해자들이 앞다퉈 재판부에게 제출한 호소문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조씨의 선고를 이틀 앞둔 지난 24일 조 변호사를 만나 관련 내용을 물었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무기징역도 과하지 않다"
 
조주빈 검찰 송치, 강력한 처벌 촉구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호송차에 태워져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조주빈 검찰 송치, 강력한 처벌 촉구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호송차에 태워져 검찰로 송치되는 가운데, 시민들이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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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26일 조주빈과 공범 5인의 선고가 진행된다. 결과는 어떻게 예측하나.
"실제 피고인들이 했던 행동과 피해자들이 현재까지 받아온 두려움과 2차 피해 등을 생각하면 무기징역이 과한 선고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재판부 입장에서 이게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도 안다. 그만큼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해줄 수 있다면 무기징역을 선고해줬으면 한다. 그게 아니라면, 못해도 20년 이상의 선고가 내려지길 바란다. 그 기간 동안이라도 피해자가 안심을 하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길 바란다."

- 검찰은 지난 10월 22일 조씨를 비롯한 공범들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피해자 중에는 '피고인들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되더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힌 경우도 있었다. 무기징역이 선고되더라도 가석방으로 풀려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조주빈은 비접촉 방식의 범행을 많이 기획했던 가해자다. 상당수 피해자들은 조주빈과 공범들이 사회에서 격리된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또 다른 범행을 기획하지는 않을까, 또 다른 범행을 지시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 일부 N번방 공범자들 가운데 구속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고 했다.
"그렇다. '당나귀'라는 닉네임을 쓰는 박사방 공범은 아직까지도 검거되지 않았다. 공범들의 수사와 검거가 지금도 진행 중인 만큼, 피해자 입장에서는 미처 검거되지 못한 공범들이 또 다른 가해를 하지는 않을지 걱정할 수밖에 없다. 피해자들이 사건 당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거의 동시에 피해를 겪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걱정과 두려움은 현실적인 문제다."

- 피해자들은 현재 어떤 상태인가.
"공대위가 대리하는 피해자들은 현재 20여 명이다. 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계속되는 2차 가해로 고생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 피고인들이 주장하는 피해 회복 노력은 피해자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들이 조씨의 엄벌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했다. 대체로 어떤 내용이 담겼나?
"피고인들에게서 어떠한 사과도 받지 못했고, 이들을 엄벌해주길 바란다는 요구였다.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들이 작성한 반성문도 언급됐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하고 있는데, 정작 피해자들에 대한 직접적 사과 없이 이뤄진 가해자의 위선이라는 입장이었다. 피고인들이 반성하겠다고 해놓고 재판부에게 선처를 구하는 모습도 납득되지 않는다고 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생각해도 반성하겠다면서 어떻게 본인 범행에 대한 선처해달라는 말이 곧장 같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이 부분에 답답함을 느낀 것 같다."

"조주빈 반성문 내용, 도저히 반성이라고 볼 수 없었다"  
 
 조은호 변호사
 조은호 변호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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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씨는 재판부에 수차례 반성문을 제출했다. 해당 반성문을 직접 읽어봤나.
"지난 결심 직전까지 제출된 것들을 봤다. 솔직히 저는 조씨가 작성한 게 반성문이라고 생각 안 한다. 반성문의 전제는 본인이 무얼 잘못했는지 인정하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데, 조씨의 반성문은 자신의 범행과 책임을 부인하고 있었다."

- 조씨는 어떻게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던가.
"자신이 저지른 범행을 사회구조 탓, 인터넷 문화 탓, 피해자 탓, 언론 탓으로 돌렸다. 사건의 본질이 성착취라는 점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피해자를 탓하면 반성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표현을 고르려 노력한 듯 보였지만, 대체로 자신의 범행을 사소한 것으로 축소하며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는 모습을 보였다."

- 이밖에 조씨의 반성문에서 추가로 기억나는 내용들이 있다면?
"반성문에서 언론 탓도 많이 언급됐다. 언론이 이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기 위해 본인을 피고인 문형욱(닉네임 갓갓)에 버금가는 인물로 만들었다는 식이다. 언론이 내가 실제로 한 행동에 비해 너무 많은 사회적 의미를 부여했고, 내가 한 행동 이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맥락을 읽을 수 있었다."

비공개로 진행돼 온 N번방 재판, 하지만...

- N번방 재판은 2차 피해 우려로 대부분 비공개 재판으로 전환돼왔다. 그간 재판은 어떻게 진행돼왔다고 보나.
"긍정과 부정이 공존하는 재판이었다. 먼저 긍정적이었던 건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려는 재판부의 의지가 느껴졌다는 점이다. 일부 재판을 비공개로 전환할 것, 피해자들이 나오는 증거 영상을 법정 대형스크린으로 재생하는 것을 지양할 것 등의 요청이 대체로 받아들여졌다. 또 몇몇 재판부는 비공개 재판으로 전환된 이후에도 피해자의 실명이나 가명도 거론하지 않으려 했다."

-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무엇인가.
"저희는 재판부에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재량을 발휘 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조주빈 재판에서는 이 부분이 받아들여지는 데 어느정도 한계가 있었다. 이 사건 자체가 워낙 사람들의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피고인들의 이익(권리)도 분명하게 보장해줘야 향후 처벌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재판부가 생각한 것 같다. 그래서 증거 영상이 비공개로 전환된 후 법정에서 재생되기도 했다. 물론 재생 시간이 짧긴 했지만, 피해자 변호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 피해자 변호사가 법정에서 증거 영상 재생 등 조사방식에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었나.
"불가능했다. 이게 가장 아쉬웠다.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증거 영상이 재생되는 작은 화면은 판사석, 검사석, 피고인 변호인석 세 곳에만 설치돼있다. 그렇다보니 화면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어떤 증거가 재생되는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증거는 짧게 재생해달라, 이 증거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다른 조사방식으로 대체해달라 요청해야 하는데 피해자 변호사들은 증거 자체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떤 문제제기도 못했다. 그저 판사·검사·피고인 변호인의 반응만 지켜봐야 했다."

- 이 사건 외 다른 성범죄 재판에서는 피해자 보호 조치가 어떻게 이뤄지나.
"다른 디지털 성폭력 사건이 N번방 사건과 대등한 수준으로 피해자를 고려해주는지를 묻는다면 회의적이다. 이 사건은 분명 다른 재판들과 달랐다. 재판 전부터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던 만큼, 재판부 또한 과거와 달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배려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 게 느껴졌다. 이번 재판이 계기가 되어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준을 생각해보고 논의할 수 있길 바랄 따름이다."

"조주빈 선고, 법원이 의지를 보일 수 있는 마지막 기회"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검찰로 송치되는 "박사방" 조주빈 인터넷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미성년자 등 수십 명의 여성을 협박, 촬영을 강요해 만든 음란물을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씨가 3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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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씨의 선고가 갖는 의의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나?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타인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범죄는 지속적으로 발생돼왔고, 그간 법원은 과거 관행을 되풀이하며 양형을 결정해왔다. 소라넷, AV스눕, 웹하드 카르텔 등이 같은 맥락이다. 매 사건마다 법원이 '다음이 있더라도 지금은 아니야'라며 미뤄왔지만, 이제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라고 본다. 법원이 디지털 성폭력 범죄가 얼마나 심각한 범죄인지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디지털 성폭력 범죄 근절의 의지를 판결로 보여야 한다. 더 이상의 '다음'은 없다."

- 피해자 회복 문제는 여전한 과제로 남을 듯하다.
"그렇다. 한 피해자는 밖에서 사람을 만나는 게 너무 두렵다고 했다. 저 사람이 가해자가 아닐까, 저 사람이 나와 관련된 민감한 피해 자료들을 몰래 본 사람은 아닐까, 이런 생각에 일상 생활이 어렵다고 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경제 활동도 못하게 됐다고 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재판부가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던 게 무색해진다. 아무리 대처방안이 나온다 한들, 결국 이 사건은 끝날 수 없다는 생각이다."

- 26일 선고를 앞두고 재판부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 사건 피고인들은 모두 본인들의 범행을 축소하며 변명한다. 내가 제작까지 한 건 아니다, 난 돈만 냈다, 난 소지만 했다는 식이다. 황당할 따름이다. 제작이든 유포든, 피해자 입장에서는 모두 동일한 디지털 성범죄일 뿐이다. 더 이상 재판부가 이런 변명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번 재판부가 기존에 되풀이했던 양형에서 벗어나 이 사회가 이 사건을 두고 보인 태도들, 재판부에 요구하는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해주길 바란다."
 
전국서 진행되는 N번방 재판... 26일 조주빈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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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 대화방 성착취 사건 재판들은 현재 서울·수원·대구 등 각지 법원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조주빈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른바 박사방 관련 재판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진행 중이다. 조씨는 지난해(2019년)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성들을 협박해 성착취 영상물을 촬영한 뒤 판매·유포한 혐의를 받는다. 범죄단체를 조직해 대량의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가 추가돼, 5명의 공범과 함께 재판을 받고 있다. 이들의 선고는 오는 26일 오전 10시에 진행된다.

이밖에 조씨의 공범 강훈(닉네임 부따)씨, 한아무개씨의 재판도 서울중앙지법 심리로 진행되고 있다. 강씨의 재판은 현재 공판이 진행 중이고, 한씨는 지난 24일 결심 공판이 진행됐다. 검찰은 한씨에게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추후 강훈씨 재판을 종결한 뒤에 한씨와 같이 선고 기일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대구지방법원에서는 두 개의 N번방 재판이 진행 중이다. 먼저 N번방 운영자였던 문형욱(닉네임 갓갓)씨의 사건이다. 문씨 사건은 11월 19일 선고 예정이었으나 검찰의 공소장 변경 등으로 변론이 재개됐다. 선고 기일은 미정이다. 다음은 문씨의 공범인 안아무개씨 사건이다. 안씨 사건은 오는 12월 17일 선고가 진행된다.

N번방 성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전아무개(닉네임 와치맨)씨는 지난 11월 16일 수원지방법원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밖에 박사방 공범, 닉네임 '당나귀'를 쓰는 피의자는 현재까지도 검거가 안 된 상태다.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로만 기재돼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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