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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누리
 정누리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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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때부터 물욕이 별로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 쇼핑이었다. 옷 가게 전체를 둘러봐도 집고 싶은 옷 한 벌을 찾지 못했고, 뭔가를 결제하려는 순간 '내가 이걸 왜 사야하지?'라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에게 쇼핑이란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아닌 수련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아침부터 옷 고르는 게 싫어 제대로 된 생활한복 하나 맞춰서 계절 내내 입고 다닐까 생각했다. 자취방도 마찬가지였다. '방은 정육면체면 되고, 잠은 누울 바닥만 있으면 된다'는 신조 아래 간이침대 하나와 영상 작업용 데스크탑만 들고 입주했다. 식기도 하나, 수건도 두세 장. 캐리어 안에 웬만한 짐은 거의 다 들어갈 정도였다.

입주하고 몇 주간은 부모님과의 전쟁이었다. '넣어라'와 '넣지 마라'의 연속이었다. 나는 간이침대로 충분한데, 부모님은 침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도 냄비에 끓이면 된다니까 집에 남아도는 전기포트 하나 가져가라고 싸웠다.

짐 많아지는 것이 싫어 TV는 싫다니까 분명 심심할 거라며 방치되어 있던 TV를 결국엔 집어넣으셨다. 빈백, 카펫, 실내화, 시계… 처음에는 우리 집을 창고로 쓰려는 것인가 생각했다. 들어온 것을 다시 내다 버릴 수는 없으니 그냥 있는 채로 살았다.

쓸모 없는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빈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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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이었다. 지인들을 집에 초대했는데,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이다. 거기다 집들이 선물까지 손에 바리바리 들고 왔다.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한 식사를 훨씬 더 많이 늘려야 했다. 부모님이 갖다 놓은 식기를 모두 꺼냈다.

좌식 탁자라 차가운 방바닥에 앉게 할 수는 없어 구석에 박혀 있던 빈백 쿠션과 방석 더미도 모두 꺼냈다. 다들 빈백 쿠션에 앉아보고 싶다며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집들이는 무사히 끝났다. 하마터면 집에 손님들을 맨바닥에 앉히고 푸대접할 뻔했다.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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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발상황은 또 있었다. 나는 날이 따뜻할 때 입주를 해서, 겨울이 그렇게 혹독할 줄 몰랐다. 유난히도 강한 한파가 며칠 동안 이어지자, 방바닥은 얼음장같이 차가워졌다. 나는 빙하 위에 떠 있는 곰같이 침대에서 내려오질 못했다. 보일러를 빵빵 튼다면 좋겠지만, 자취생 지갑이 어디 그렇게 두둑한가. 그럴 때 실내화와 카펫은 바닥을 디딜 수 있게 해주는 징검다리였다.

'다 쓸 데가 있다'라는 부모님의 조언은 그야말로 생활의 지혜였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보단 그냥 '안 사는 사람'에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넉넉히 준비할 필요도 있다는 것. 선물을 들고 온 친구에게 무엇이라도 대접하기 위해, 당장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릇이 모두 싱크대에 있는 낭패를 피하기 위해, 샤워를 했는데 수건이 다 마르지 않은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그래서 어른들은 부족한 것보단 남는 게 낫다고 했나 보다. 나는 이제 조금씩 쇼핑을 즐기기로 했다.

야수도 외로운 1인 가구였다 
  
 자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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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다가오니 자취를 하는 친구들은 벌써부터 '크리스마스에 집을 꾸밀 것인가'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예전의 나 같으면 짐 늘리는 일 안 한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조그마한 소품 몇 개를 사봤다. 줄타는 산타, 무지개 마크라메, 분홍빛 무드등. 본가에서는 사기 망설였던 것들이, 혼자만의 공간 속에서 오롯이 빛나고 있다. 삭막했던 집이 이제야 조금 따뜻해 보이는 것 같다.

사람들이 왜 집을 꾸미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어릴 적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야수는 대저택에 혼자 살면서 촛대, 커피잔, 괘종시계 등 잡동사니를 왜 저리 많이 가지고 있나 생각했다. 하지만 야수도 외로운 1인 가구였다. 그 작은 소품들이 야수의 허전함을 달래 준 것은 아닐까. 자취를 하니 희한한 것들이 보인다. 텅 비어 있는 내 마음과 같던 방을, 이제는 조금씩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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