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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소화권번 창립 5주년 기념 단체사진(1939)
 군산소화권번 창립 5주년 기념 단체사진(1939)
ⓒ 김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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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전국 주요 도시에는 기생의 스케줄(요정 놀음, 극장공연, 놀음차 계산 등)을 관리해주는 권번(券番: 기생조합)이 있었다. 권번은 요즘의 연예기획사 역할을 하였으며 1920년대 이후 대부분 주식회사 체제로 운영됐다. 특히 건물 내에 기생양성소를 차려놓고 동기(童妓)들에게 예의범절과 전통 가·무·악을 가르쳤다.

중요한 대목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 정책으로 우리의 전통 가무가 사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 명맥을 유지 보존하는 데 기생들이 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양한 공연을 비롯해 경성방송국과 지역 방송국에 출연하였다. 당시 방송국 프로그램 예보와 주요 도시에서 해마다 개최된 팔도명창대회(전조선명창대회·조선팔도명창대회)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일제의 압박과 회유에도 권번은 주식회사의 효시가 되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이 기획되었다. 선생은 물론 기생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인간문화재급 명창·명무도 다수 배출됐다. 권번에 입적한 동기들은 선생에게 수업료를 내고 다양한 춤(승무, 검무, 사고무, 화관무, 부채춤, 포구락 등)을 익혔는데, 이를 '권번춤'이라 한다.

전북 군산과 남원 권번에서 학습한 예인들
 
 장금도, 김애정, 조갑녀 예인의 생전 모습(왼쪽부터)
 장금도, 김애정, 조갑녀 예인의 생전 모습(왼쪽부터)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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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녀(1923~2015), 김애정(1924~1993), 장금도(1928~2019), 세 명인의 공통점은 전북지역 권번에서 전통 가무를 배운 예인이라는 것. 이들은 긴 세월을 숨어 지내다가, 1983년 국립극장 '명무전'에 나란히 무대에 오른 인연도 있다. 오랜 세월 춤과 거리를 두고 지냈음에도 이들의 명성이 역사에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의 끈질긴 설득과 노력에 의해서였다.

조갑녀(趙甲女) 명무는 국악의 성지로 알려지는 전북 남원 출신이다. 집안 어른의 영향으로 7세 때 남원권번에서 학습을 시작하였다. 제1회 춘향제(1931) 때 춤을 췄으며, 1971년 춘향제에서 승무와 살풀이춤을 풀어낸 역사적인 인물이다. 2007년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어머니의 춤' 출연 이후 '조갑려류 살풀이춤'이란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김애정(金愛貞) 명창은 경남 마산 출신이다. 13세 때 마산 남선권번에 입적, 3년 만에 큰 뜻을 품고 군산 소화권번으로 옮겨 수학하였다. 마산의 장행진, 군산의 도금선, 서울의 박동실(납북 명창) 등에게 가무를 익혔다. 광복 후 예총 산하 경남국악지부를 설립하였고, '오동권번'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그는 영남에서 드문 명창으로 고향을 빛냈으며, '마산 나고 김애정 났다'는 칭송을 들을 정도로 지역에서 명성을 떨쳤다.

장금도(張錦桃) 명인은 전북 군산 출신이다. 12세 때 소화권번에 입적, 최창윤에게 승무, 김백룡에게 부채춤 사사받고, 도금선에게 민살풀이 전수받는다. 소리와 춤 모두 수석으로 졸업하고 군산과 서울에서 명성을 떨치다가 29세 때 춤과 인연을 끊는다.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자신을 울타리 안에 꼭꼭 숨기고 지내던 그는 1983년 국립극장 '명무전' 출연 후 2013년까지 다양한 중앙무대와 해외 공연에 초대됐다.
 
 관객과 대담하는 신명숙 교수, 정명희 회장, 장순향 본부장(왼쪽부터)
 관객과 대담하는 신명숙 교수, 정명희 회장, 장순향 본부장(왼쪽부터)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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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녀전통춤보존회' 정명희 회장은 "남원 춘향제는 1회~3회까지 권번에서 주최했고, 4회부터 남원군 행사로 열리게 됐다. 이때부터 어머니(조갑녀)가 승무로 막을 열었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결혼해서 활동을 중단했지만, '춘향제'만큼은 빠지지 않고 참석해서 춤을 춰왔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장금도 명인과의 인연과 일화도 소개했다.

"장금도 선생님은 어머니(조갑녀)가 익히 아셨기 때문에 서울에서 공연 있으면 저와 제 남편이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왔어요. 며칠 계시면서 회포 좀 푸시게 해드리려고... 어머니는 장금도 선생님과 옛날에 활동했던 국악인들 안부를 여쭤보고 하셨죠. 대화하다 기분 나면 두 분이 활개를 활짝 벌이고 춤추시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집으로 잘 모셨구나' 생각하고 그랬죠."

보기 힘든 권번춤 대(代) 잇는 춤판 

세 명인(조갑녀, 김애정, 장금도)은 진즉 고인이 됐지만 그들의 춤을 한결같이 계승하는 고집스러운 춤꾼들이 있다. 정명희 회장(조갑녀 딸), 장순향 진해문화센터 본부장(김애정 제자), 신명숙 대진대학교 교수(장금도 제자)가 그 주인공이다. '권번삼전(券番三傳)'을 결의한 세 춤꾼이 군산에서 최초로 전통춤의 무본(舞本)을 보여주는 춤판을 벌인 것.
 
 공연 펼치는 신명숙, 장순향, 정명희(왼쪽부터)
 공연 펼치는 신명숙, 장순향, 정명희(왼쪽부터)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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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소화권번·남원권번 대(代)를 잇는 '춤 이야기(제목: <춤 대를 잇다>)'가 지난 15일 군산시 개복동 군산시민예술촌에서 '안전거리 유지 공연'으로 열렸다. 진중한 분위기 속에 펼쳐진 이날 춤판에서 장순향 춤꾼은 승무와 수건살풀이(장구 김만연), 정명희 춤꾼은 승무와 민살풀이, 신명숙 춤꾼은 권번부채춤과 민살풀이를 각각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객석에는 서울을 비롯해 경남 마산, 대전, 전주, 익산 등 외지에서 온 관객도 많았다. 가족 단위 관람객도 여러 팀 보였다.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몰입하며 자리를 지킨 관객은 60여 명. 이들은 공연을 마친 출연자들과 30분 남짓 대담 시간을 가졌다. 아래는 관객들의 다양한 소감을 정리하였다.
 
 공연 지켜보는 관객들(안전거리 유지 위해 130석의 절반만 입장하였음)
 공연 지켜보는 관객들(안전거리 유지 위해 130석의 절반만 입장하였음)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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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번춤 관람은 두 번째인데, 몸짓이 다채롭고 아름다웠다. 특히 민살풀이는 춤사위가 애절한데다 배경 음악이 너무 슬퍼 눈물이 나왔다."

"기생들이 췄던 춤은 수준 낮은 싸구려 춤으로, 전통춤보다 격이 낮은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공연과 대담을 통해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권번춤, 오늘 처음 봤다. 춤꾼의 운신의 폭이 좁아 처음엔 답답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눈과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력을 느꼈고, 흥이 나면서 발장단을 맞추면서 감상했다."

"정명희 선생 춤사위는 흰 빛깔의 백련, 장순향 선생은 위엄과 품위를 갖춘 한 송이의 모란을 떠오르게 했으며, 신명숙 교수는 나비가 춤추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미숙 차림문화원 원장은 전화 인터뷰에서 "세 춤꾼은 천·지·인을 몸짓에 담아 손짓은 하늘과 어울렁, 발짓은 땅과 더울렁, 눈짓은 사람과 댓거리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며 "물을 밀 듯 무겁게, 날개를 흔들 듯 가볍게, 허공에 그림 그리듯 하는 자태에 두 눈이 호사를 누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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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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