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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받아보는 분은 국민이고,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지 않습니까? 나라의 주인한테 판결문을 보내는 데 존댓말을 쓰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4월 23일, 70년의 전통을 깨고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한 대전고등법원 이인석 판사가 한 말이다. 많은 시민이 존댓말 판결문에 환영했지만, 실제 법조계에서는 '법원의 권위가 떨어진다', '판결의 객관성에 문제가 생긴다'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단7538 자동차소유권이정등록절차이행 판결문 중 일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단7538 자동차소유권이정등록절차이행 판결문 중 일부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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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존댓말 판결문'이 또 한 번 세상에 나왔다. 

지난 2016년, 청각장애인 A씨는 자신의 명의로 된 차량을 피고인 B에게 넘겼지만, 피고가 명의 이전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에게 부과된 과태료(범칙금)를 B에게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안산지원 민사 4단독 박경열 판사가 그 청구를 인용하며 판결 이유를 존댓말로 작성한 것이다.

두 번째로 세상에 알려진 존댓말 판결문을 직접 받은 소송대리인인 유승희 안산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를 17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존댓말 판결문, 국민에 대한 존경의 시선 담았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단7538 자동차소유권이전등록절차이행 판결문 중 일부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2020가단7538 자동차소유권이전등록절차이행 판결문 중 일부
ⓒ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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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댓말 판결문을 받았는데, 어떠셨나요?

"변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 가는데, 존댓말로 된 판결문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 매우 생경하였습니다. 처음에 '이게 뭐지' 하고 다시 읽어보았고, 존댓말 판결문에 대한 기사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처음 존댓말 판결문에 관한 기사를 읽었을 때 판사 한 분의 의사였다고 생각했으나, 제가 맡은 사건에서 존댓말 판결문을 송달받자 '존댓말 판결문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반가움이 뒤따랐습니다. 사법부가 권위를 앞세워 국민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존경의 시선을 판결문에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당사자에게 '존댓말 판결문'을 전달하셨나요?

"판결문을 전달했습니다. 다만 당사자는 청각장애인입니다. 수어는 공경하는 표현은 있으나, 존대를 나타내는 표현은 없기에 존댓말 판결문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 존댓말 판결문이 반가웠던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제가 예전에 재판정 방청 중 목격했던 장면이 하나 떠오릅니다. 소액사건이었는데 원고와 피고, 각 당사자가 출석했고, 재판정에서 서로를 향해 소리치며 비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알 수 없으나 재판정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았을 때 법적인 문제를 떠나 서로에게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당사자들을 진정시키고, 서로에 부족한 부분을 지시하며 재판을 끝내자 당사자들은 자리에서 돌아 나왔습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재판정에서 물러나는 원고와 피고가 서로 '방금 판사님이 무슨 얘기를 했냐?', '너는 뭐라고 들었냐?'며 진지하게 의논을 하기 시작한 것이죠. 재판장에게 '무슨 말씀이신지 다시 한번 말해주기 바란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면, 재판장이 간략하게 내용을 알려줬을 텐데, 재판장에게 묻는 것이 어려워 결국 원수나 다름없는 상대방과 재판 내용을 의논하는 것이었습니다.

법원은 국민을 상대로 다양한 사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과거에 비해 법률서비스의 문턱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국민에게 재판부는 원수보다 먼 사이인 것입니다. 재판부가 친근할 필요는 없으나, 최소한 당사자들이 법률서비스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 정도의 사이는 되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법원의 권위는 공정하고 법리에 맞는 판결에서 나와"

- 법조계에서는 존댓말 판결문이 '법원의 권위를 떨어뜨릴 수 있다', '판결의 객관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현재 모든 재판부에서 존댓말로 재판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로 인해 법원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또한 존댓말로 재판을 진행한다고 해서 판결의 객관성이 줄어든다고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법원의 권위와 판결의 객관성은 공정하고 법리에 맞는 판결에서 나오는 것이지, 나라의 주인인 국민에 대한 반말에서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세상에 알려진 존댓말 판결문에 대해 '법원의 권위와 판결의 객관성을 떨어뜨리는 것일까?', '시민들을 존중하는 법원의 새로운 시도일까?' 등 여러 의견이 있다.

"주제넘은 짓을 한다."

2017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열린 재판에서 판사가 방청객에게 한 발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해당 언행이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여 해당 판사에게 주의 조치를 줄 것을 권고했지만, 법원 측은 "법관의 법정 언행은 재판 범주에 포함된다"며 인권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시민들이 왜 존댓말 판결문에 환영하는지를 진지하게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원곡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태그:#존댓말 판결문, #유승희 변호사, #이인석 판사, #최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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