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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 마스크가 분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까만 분진을 뒤집어썼다.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의 모습. 마스크가 분진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까만 분진을 뒤집어썼다.
ⓒ 현대차 전주비정규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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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사진 속에는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굴에 분진이 잔뜩 쌓인 모습을 한 채로 서 있었다. 

이 노동자는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내 소재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다. 소재 공장은 조립 중심의 다른 작업라인과 달리, 소재를 가공하고 주물 작업도 이루어지는 곳이라 분진이 많이 발생하고, 중금속에도 노출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소재 공장에서 발생한 분진이 모이는 집진기를 정비·보수하는 일을 하는데, 높은 농도의 분진이나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런데도 마스크 수급이 쉽지 않아졌다면서 제일 먼저 마스크가 바뀌었다. 새로운 마스크의 품질이 좋지 않아 분진이 호흡기로 들어온다고 항의해도 바뀌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SNS에 올린 사진은 뒤이어 '대기업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는 불량마스크를 쓴다'라는 보도로 이어졌다. 전태일 사망 50주기 즈음 여러 언론사가 앞다투어 '전태일이 고발한 50년 전 피복 노동자들과 다를 게 뭐냐'라면서 이를 보도했다. 그 뒤 현장은 달라졌을까?

마스크는 바뀌었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신승훈 현대차전주공장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16일 통화에서 "마스크는 바뀌었다. 수급이 어려워서 다른 마스크 준다더니, 바로 바꿔줄 수 있었다는 점도 기가 막힌다"라고 말했다. 언론 보도가 나간 뒤, 회사에서는 다시 3M 마스크를 지급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문제는 이들이 사진을 올리면서 '제대로 된 마스크를 지급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좋은 마스크를 준다고 해결되나? 분진이 너무 심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일한다는 사실은 바뀌는 게 없다. 작업환경 측정 등 환경 점검, 그 결과에 따른 시설 개선이나 필요한 보호구 지급은 모두 원청 책임이다.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원청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승훈 지회장은 노동부에서도 근로감독관이 나와서 한차례 현장 조사를 했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고 말했다. 

"신입사원 건강진단 미실시와 안전교육 미이수에 대해서만 일단 과태료가 부과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감독 과정에 회사 안전관리실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간부가 함께 참여하긴 했다. 그런데, 실제 안전보건 문제가 심각한 현장 상황에 대해 문제를 지적할 줄 알았는데 주변 문제만 지적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아직 근로감독관과 소통하는 중이라서, 앞으로 결론이 어떻게 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비정규직 지회 조합원들은 현대차 소재 공장에서 일한 수년간 작업환경 측정하는 걸 본 적도 없고, 결과에 대해 제대로 설명을 들은 적도 없다. 폐기능 검사가 포함된 특수건강진단도 해보지 못한 조합원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분진도, 실제 공기 중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3M 마스크를 쓰면 이런 현장에서 일해도 되는지 궁금하지만, 근로감독관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마스크 너머, 위험의 외주화

자동차 공장, 그중에서도 열악한 소재 공장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맡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문제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와, '외주화의 위험'을 모두 보여준다. 국내 다른 자동차 생산 업체의 경우 소재 공장 자체를 외주화한 경우도 많다. 노동환경이 열악하고 산재 위험도 높은 업무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 운영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화된 후 외주화한 사례도 있다. 외주화를 할 수 없는 경우, 원청인 대기업은 자동화나 설비 개선을 통해 문제를 줄여나간다. 3M 마스크로 바꾸는 정도보다 훨씬 근본적이고 나은 해결책이지만, 동시에 돈이 훨씬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다. 외주화해버리면 이런 부담이 줄어든다. 

대신, 자동차 생산 업체보다 훨씬 작은 업체에서 설비를 맡게 된다. 이런 곳은 자동화나 설비 개선에 투자할 자본 여력도 없다. 대부분 노동조합도 없고, 환경 개선에 대해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이 때문에,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기업 노동자보다 많이 다치고, 먼저 병들고, 일찍 일터를 떠나게 된다. 이렇게 대기업이 작은 기업으로 떠넘긴 부담은 사회로 돌아온다. 

소재 공장의 설비를 정비, 점검하는 일은 자동차 생산에 분명히 필요한 일이고, 그렇다면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에서 노동자가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책임은 자동차 생산에서 가장 큰 이윤을 가져가는 원청인 자동차 생산 업체에 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전주공장 비정규직뿐 아니라, 이미 외주화되어 있는 다른 자동차 생산 업체 소재 공장들의 노동환경도 점검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서 어떤 고용 형태로 그 일을 하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원청과 협상할 수 있는 사회적 힘과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마스크 너머, 위험의 외주화, 외주화의 위험을 보고 답하라.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민 시민기자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이자 직업환경의학전문의입니다.


태그:#위험의외주화, #분진, #비정규직, #현대차전주, #산업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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