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 '흥벤져스'의 초반 기세가 무섭다. '국가대표 3인방' 김연경과 이재영, 이다영이 뭉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파죽의 7연승을 내달리며 시즌 초반부터 독주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흥국생명의 7연승은 V리그 여자부 역대 개막 최다 연승 신기록이다. 2라운드 들어 외국인 선수 루시아 프레스코가 어깨부상으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흥국생명의 연승행진은 더욱 놀랍다.

흥국생명이 독주하면서 나머지 팀들은 더욱 물고 물리며 초반부터 치열한 순위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여자부 6개 구단 중 4개 구단은 팀마다 6~7경기를 치른 시점까지 승률 5할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 1위팀 현대건설 힐스테이트가 개막 2연승 후 최근 4연패의 수렁에 빠지며 5위로 밀려났고 두 차례나 흥국생명을 괴롭혔던 GS칼텍스 KIXX도 아직 5할 승률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 27경기에서 8승 19패에 머물렀던 IBK기업은행 알토스는 시즌 개막 후 6경기에서 4승을 따내며 흥국생명을 제외한 팀 중에서는 유일하게 5할 승률을 넘기고 있다. 이번 시즌 기업은행의 선전에는 득점 2위(189점)에 올라 있는 안나 라자레바의 활약이 결정적이지만 지난 시즌까지 흥국생명 유니폼을 입었던 두 이적생의 활약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기업은행으로 이적한 조송화 세터와 신연경 리베로가 그 주인공이다.

[조송화] 서브-수비에서도 존재감 돋보이는 세터
 
 조송화에겐 다소 갑작스러웠던 기업은행 이적이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조송화에겐 다소 갑작스러웠던 기업은행 이적이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박미희 감독이 흥국생명에 부임했던 지난 2014년. 2013-2014 시즌 최하위팀이었던 흥국생명은 김사니 세터(기업은행 코치)가 팀을 떠나고 주전 경험이 없는 신예 우주리 세터와 조송화 세터가 힘들게 팀을 지탱하고 있었다. 이에 박미희 감독은 2011년 신인 드래프트 전체 4순위 출신의 조송화 세터를 차세대 주전세터로 낙점하고 집중조련에 들어갔다.

박미희 감독 부임 전까지 주전세터로 활약한 경험이 없는 조송화는 주전을 맡은 후 이재영, 김수지(기업은행) 등 주력 선수들과의 호흡이 맞지 않아 고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송화 세터는 박미희 감독의 믿음 속에 꾸준히 흥국생명의 주전세터로 활약하며 성장했고 2016-2017 시즌 정규리그 우승과 함께 세터부문 BEST7에 선정됐다. 그리고 2018-2019 시즌에는 흥국생명의 통합우승을 이끌며 선수생활에 정점을 찍었다. 

조송화는 2019-2020 시즌이 끝난 후 생애 두 번째 FA자격을 얻었고 높아진 팀 내 비중을 생각하면 더 좋은 조건에 재계약이 유력해 보였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4억 원을 투자해 국가대표 주전세터 이다영을 영입했고 자리를 잃은 조송화는 곧바로 기업은행과 총액 2억 7000만 원에 계약하며 프로 입단 9년 만에 팀을 옮겼다. 어차피 흥국생명에 잔류하면 이다영에게 밀릴 확률이 높기 때문에 조송화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다.

기업은행에서 김수지와 3년 만에 재회한 조송화는 라자레바라는 좋은 공격수를 만나 한층 편안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물론 세트 부문에서는 세트당 10.84개 성공으로 6개 구단의 주전세터 중 4위로 아주 만족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세트당 0.40개의 서브득점으로 김연경에 이어 서브 2위에 올라 있고 세트당 3.80개(10위)에 달하는 디그도 GS칼텍스의 주전 리베로 한다혜(세트당 3.52개)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조송화와 재회한 베테랑 센터 김수지는 이동공격 2위(57.14%), 속공5위(44.44%)로 시즌 초반 좋은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반면에 매 시즌 기업은행 국내 선수 중에서 가장 많은 득점을 올렸던 '토종에이스' 김희진은 이번 시즌 6경기에서 36득점에 그치고 있다. 만약 김희진, 그리고 윙스파이커들과의 호흡만 더욱 완벽해 진다면 조송화는 배구팬들로부터 기업은행의 새로운 주전 세터로 확실히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신연경] 디그-수비 3위 질주, '초보 리베로' 맞아?
 
 만약 신연경 리베로를 데려오지 못했다면 기업은행은 시즌 초반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신연경 리베로를 데려오지 못했다면 기업은행은 시즌 초반 지금처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 한국배구연맹

 
2012년 전체 3순위로 기업은행에 입단해 루키 시즌에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던 신연경은 2014년 FA세터 김사니에 대한 보상선수로 흥국생명으로 이적했다. 하지만 이적 후 첫 대회였던 컵대회에서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하며 그대로 시즌아웃됐다. 코트에 복귀한 2015-2016 시즌에는 수비가 불안한 이한비, 공윤희, 정시영(현대건설) 대신 간간이 코트에 들어와 좋은 활약을 펼쳤다.

박미희 감독은 2016-2017 시즌 수비가 좋은 신연경을 풀타임 주전으로 낙점했고 신연경은 안정된 수비로 흥국생명의 정규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신연경은 고질적인 무릎부상으로 2017-2018 시즌 18경기 만에 다시 시즌을 접었고 복귀 후에도 공격에서는 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급기야 2019-2020 시즌에는 흥국생명이 치른 27경기에 모두 출전하고도 단 1득점도 올리지 못하며 공격수로서 사실상 가치를 잃었다.

흥국생명은 지난 시즌을 끝으로 주전 리베로 김해란이 현역생활을 마감했고 박미희 감독은 신연경에게 리베로 변신을 권유했다. 그렇게 윙스파이커에서 리베로로 변신해 새 출발을 준비하던 신연경은 이다영의 보상선수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게 됐다. 그리고 조송화를 영입하면서 박상미 리베로를 보상선수로 내준 기업은행은 잉여전력이 된 이나연 세터를 매물로 현대건설로부터 신연경 리베로를 영입했다.

신연경은 지난 9월 컵대회에서 기업은행의 주전 리베로로 출전하며 가능성을 시험 받았지만 3경기에서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리시브 효율로 다소 불안한 수비를 선보였다. 하지만 신연경은 시즌이 개막하자 디그 3위(세트당 6.20개)와 리시브 효율 7위(39.18%), 수비(세트당 디그+리시브) 3위(세트당 7.72개)를 기록하며 '초보 리베로'라고는 믿기 힘든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다.

기업은행은 여자부 6개 구단에서 리시브 효율(29.26%)이 유일하게 30%에 미치지 못하는 팀이다. 만약 리시브가 불안한 기업은행에서 신연경마저 없었다면 시즌 개막 후 6경기를 치른 현재 4승 2패라는 좋은 성적은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신연경이 지난 세 시즌 동안 V리그 역대 최고의 리베로 김해란과 함께 생활하며 어깨 너머로 배운 수비 노하우들이 이번 시즌 기업은행에서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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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도드람 2020-2021 V리그 IBK기업은행 알토스 조송화 신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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