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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7일(현지시각)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미국 델라웨어 월밍턴의 체이스 센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대국민 연설을 하기 전 무대에 오르고 있다.
 11월 7일(현지시각) 카말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당선인이 미국 델라웨어 월밍턴의 체이스 센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대국민 연설을 하기 전 무대에 오르고 있다.
ⓒ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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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재선에 실패한 트럼프만큼이나 화제가 되는 인물이 카말라 해리스다. 미 최초 여성, 흑인 부통령인 카말라 해리스에 대한 기사가 나오기 전까지 부통령 위치에 여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남자들만 득실득실한 선거사진에 아무런 문제를 못 느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 대법관에게 과거 한 기자가 "9명 대법관 중 여성 대법관은 몇 명 필요한지" 질문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머릿속에서 계산했다. '9명이면 5명 내지 4명? 여성 대법관이니까 여성에게 유리하게 5명이라고 답할까봐 질문하는 건가? 반으로 나눌 수 없는 숫자인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공정하게 나누려고 노력했지만 나뉘지 않는 수 때문에 힘들었는데, 긴즈버그 대법관의 답은 간명했다. 그는 "9명 전원 여성으로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대법관이 모두 남자였을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전원 여성이면 왜 안 되는 거죠?"

대법관이 모두 남성일 때 우리는 성별에 따른 공정함을 묻지 않았다. 이전까지 남성에게만 기회를 준 불공평한 처우에 이의제기하지 않았는데 여성이 등장하자 성별에 따른 공정한 게임을 요구하는 사회. 이러한 사회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감추고 가리는 데서 시작된다.

한 여성의 놀라운 발견 

영국 라임레지스 마을에 사는 메리는 관광객에게 팔 조개껍데기 따위를 주워 담기 위해 해변을 돌아다니다 뱀 돌맹이(암모나이트), 악마의 발톱(벨렘나이트), 천사의 날개(페트리콜라 폴다포르미스)라고 부르는 근사한 화석들을 발견했다. 화석들 속에 숨어 있는 오래된 이야기에 매료된 메리는 책을 읽고 과학 연구 보고서를 베끼면서 자기가 찾아낸 것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설명을 적었다.

치마를 입은 채 절벽을 오르고 파헤치기를 계속하던 메리는 드디어 공룡의 뼈를 발견했다. 아직 공룡이라는 말이 생기기도 전인 당시에는 이 뼈를 '물고기 도마뱀'이라고 이름 붙였다.

마땅한 채굴 도구도 없이 망치와 정을 가지고 메리가 발굴해낸 이 공룡뼈는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이 뼈가 발견된 후 과학자들은 지구가 생겨난 지 6000년밖에 되지 않았단 믿음은 잘못됐으며, 수백 만년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들은 종이 생기기도 하고 멸종하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됐고, 계속 토론했다. 메리도 탐험을 이어갔다. 24살이 되던 해, 메리는 익룡을 발견했다. 이 놀라운 발견으로 전 세계 과학자들이 떠들썩했지만 어느 곳에도 메리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메리는 뼈 하나만 가지고도 동물의 생김새를 그려내고 어떤 종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런던지질학회 회원이 될 수는 없었다. 대학에서 가르칠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었다. 여자이기 때문에 메리는 지질학자와 과학자들의 물음에 답했지만 과학 역사에 기록되지 못했다. 하지만, 메리의 용감한 발견 덕분에 고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됐다.
 
책 '이 뼈를 모두 누가 찾았게?'
 책 "이 뼈를 모두 누가 찾았게?"
ⓒ 씨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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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뼈를 모두 누가 찾았게?> 그림책은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에 대한 이야기다. 공룡과 동물 변, 나뭇잎 같은 화석을 연구해 지구의 비밀을 밝혀내는 고생물학에서 중요한 인물인 메리 애닝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자연사 박물관이나 과학관에 있는 거대한 공룡 모형,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의 시작이 메리 애닝부터라는 걸 우리는 알지 못한다. 역사에 여성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한 명의 '특별함'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인류 역사에 위대한 발견, 발명을 한 여성들이 얼마나 있을까?
 
나사 아폴로 우주선 소프트웨어 개발자 - 마가렛 해밀턴
자동차 와이퍼 - 메리 앤더슨
티푸스 치료법 - 아스마 이스마일
종이봉투 제작기계 - 마거릿 나이트
폐쇄회로 카메라(cctv) - 마리반 브리튼 브라운
비상계단 - 안나 코넬리
자동차 히터 - 마거릿 윌콕스
아이스크림 제조기 - 낸시 존슨
태양열 난방 주택 - 마리아 텔크스
(책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 70~71쪽 참고)
 
전화기, 비행기, 증기기관차를 발명한 그레이엄 벨, 라이트형제, 제임스 왓슨은 쉽게 떠오르지만 위에 열거된 여성들의 이름은 낯설다. 제일 유명한 여성 과학자인 마리 퀴리도 퀴리 부인으로 불리다 최근에야 이름을 찾았다. 이처럼 우리는 여성이 이루어낸 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여성은 세상에 존재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기록되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여성의 이야기는 가려지고 왜곡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갖게 된다. 여성들의 서사가 없어도 이상한 걸 못 느끼게 된다. 대법관 9명 모두 남성이어도 아무도 문제 제기를 안 하는 것처럼 말이다.

남성에게만 기울어진 서사권력으로 인한 젠더 고정관념은 강력하다. 여성 교장 선생님 사진을 보여줘도 급식담당자나 행정직원으로 기억하는 오류를 범하고, 난로 옆 남성 요리사는 난로를 고치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오류가 이에 해당한다.

여성 과학자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 보세요. 이 사람들은 해냈어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도 고정관념을 깨는 데 효과가 없다. 우리 뇌는 선입견에 맞지 않는 정보를 걸러낼 뿐이다. 여성 과학자를 보여줘도 과학은 남성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이기는 것이다. (책 <핑크와 블루를 넘어서> 59쪽 참고)

카말라 해리스가 부통령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미국 부통령에 여성이 한 명도 없었단 사실을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몰랐을 뿐 아니라 문제 제기 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유리 천장을 깬 여성이라는 신화를 씌우고 있다. 하지만 여성 부통령 한 명이 나왔을 뿐이다. "자, 보세요. 카말라도 해냈어요.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도 유리 천장은 깨지지 않는다. 단 한 명의 특별함에 그쳐선 안 된다. 여성 부통령으로 나와도 주목받지 않는 세상이어야 한다.

메리 애닝처럼 우리가 몰랐던 그녀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차고 넘칠 때, 여성이라는 점이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특정 집단에 남성만 있는 게 오히려 느껴지는 때, 그때가 진정으로 유리천장이 깨지는 때다.

이 뼈를 모두 누가 찾았게? - 최초의 고생물학자 메리 애닝

린다 스키어스 (지은이), 마르타 미겐스 (그림), 길상효 (옮긴이), 씨드북(주)(2020)


태그:#메리 애닝, #카말라 해리스, #유리천장, #여성과학자, #고정관ㄴ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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