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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캐나다 온타리오 주 시골마을에서 패러메딕(응급구조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911 현장에서 만나고 겪는 이 곳의 삶,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기자말]
원래는 잘 안 그러는데 마침 시간이 남아서 디즈니 영화 <인크레더블 2>를 보며 근무복을 깔끔하게 다렸다. 예전 군복 다릴 때처럼 바지에도, 반팔 소매에도 줄을 잡았다.

슈퍼히어로들과 악당들이 벌이는 치열한 한 판 대결을 보면서 '아이고... 저 동네 패러메딕(Paramedic: 응급구조사)들은 바빠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영화일 뿐, 오늘 밤 나의 근무는 평온 그 자체이리라 기도하며 깔끔하게 다려진 근무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이날은 집에서 제일 가까운 안프라이어(Arnprior)에서 하는 토요일 밤 근무. 토요일 밤 안프라이어는 대부분 조용하다. 이제껏 경험상 그랬다. 아마 바짓줄이 흐트러지지 않고 그 다음날까지 유지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근무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산산히 깨졌다.

바짓줄이 흐트러지지 않길 기대했건만
 
 환자가 정말 위급한 신고 전화는 보호자 혹은 관계자가 길까지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정말 위급한 신고 전화는 보호자 혹은 관계자가 길까지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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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정말 위급한 신고 전화는 보호자 혹은 관계자가 길까지 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혹시나 앰뷸런스가 그냥 지나칠까봐 손짓을 하거나 불을 환하게 켜 놓기도 한다. 이번 신고도 그랬다. 환자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물 범벅이 된 채로 집 밖에 나와서 "얼굴이 퍼렇게 됐어요, 숨을 쉬지 않아요, 도와주세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환자는 대변을 보다 앞으로 쓰러져서 머리를 욕조에 찧었고, 그리고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려 있었다. 화장실 바닥에는 엉덩이에서 쏟아져 나온 누런 대변과 입에서 쏟아져 나온 갈색 토사물, 머리에서 쏟아진 붉은 피가 마치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배웠던 데칼코마니처럼 어우러져있다. 무엇보다 환자 얼굴이 이미 자주색이다.

맥이 잡히지 않아서 바로 심폐소생술(CPR: Cardio Pulmonary Resuscitation)을 시작했고, 가슴뼈가 우두둑 소리와 함께 내려앉았다. 심장충격패드(Defibrillation pad)를 바로 붙였고, 석션(Suction)을 해서 토사물을 빨아내고, 기도에 아이젤(I-Gel: 일종의 기도삽관 파이프)을 집어넣었다. 현장에서 심장전기충격(Shock)을 두 번 했지만 맥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환자가 마지막으로 멀쩡했을 때가 언제입니까??"
"환자 이 상태로 얼마나 있었어요?"
"환자 쓰러지는 모습 목격한 분 계세요?"

그러나 환자의 가족들은 평소 사이가 안 좋았는지 서로를 탓하며 싸우느라 나와 파트너 A가 묻는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현장에서 총 4번의 어낼러시스(Analysis: 심장활동분석)를 했고, 그 중 2번이 전기충격을 가했을 경우 정상 박동으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있는 심장 움직임(Shockable rhythm)이었기 때문에 의료지침(Protocol)에 따라서 현장에서 소생중단(TOR: Termination Of Resuscitation)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병원으로 어서 옮겨야 하는데... 안 그래도 육중한 환자가 온 몸에 각종 분비물을 묻힌 채 축 처져 있다. 환자를 들 때는 내 몸에 바싹 안고 들어야 덜 무겁고 내가 덜 다치기 때문에 수건으로 대충 훑어내고 꽉 껴안아 들어서 겨우 들것(Stretcher)에 옮겼다.

병원까지는 5분 남짓의 가까운 거리. 환자의 얼굴은 여전히 회색이 섞인 자주색을 띠고 있다. 시골 마을의 좁은 밤길을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앰뷸런스의 뒷편은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지만 나를 지탱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의 한 손은 여전히 환자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앰부백(BVM: Bag Valve Mask)을 짜고 있었다. 20분 가까이 CPR을 한 나의 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 안경으로 땀이 흘러내려서 앞이 뿌옇다.

병원에 도착하여 의사와 간호사들이 CPR을 하고 심장전기충격을 했지만 환자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초음파 상에서도 아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전혀 움직이지 않네. 사망선고(Pronounce) 할게요. 동의하십니까?"

응급실 당직 의사가 물었다. 다들 고개를 끄떡끄떡. 21시 07분, 환자는 사망했다.

나는, 처음보다 환자의 죽음에 많이 무뎌져 있었다. 처음 사망한 환자를 봤을 때는... 뭐랄까? 마음 속 유리창 하나가 얼어붙어 금이 쩍 가는 듯한 충격이었다면, 지금은 누군가 유리창에 살짝 노크한 정도랄까?

퍼스트 리스폰더(First responders:  경찰, 소방관, 패러메딕) 중에 패러메딕의 자살률이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가 가장 높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죽음에 자주 노출됨으로써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데 있었다.

파트너 A는 PTSD로 인한 후유증으로 2년 가까이 휴직을 한 적이 있다. 다시 현업에 복귀한 그는 전보다 괴팍해졌고 화를 쉽게 낸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나에게 먼저 괜찮은지 물어봐주었다. 사실은 나도 A가 더 걱정이 되었는데... 괜히 물어보기 민망해서 입 닫고 있었던 터라 먼저 물어봐준 A가 의외였고, 또 고마웠다.

영화 속 메딕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현재 출동불가능 상태임을 나타내는 코드 9을 걸어놓고 베이스로 돌아와서 근무복부터 갈아입었다. 방금 사망한 사람이 남긴 체액을 옷에 묻히고 다니는 일은 아무리 무뎌졌다고 해도 유쾌한 일은 못되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여벌 근무복을 갖고 다니는데 근무 중에 옷을 갈아입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 샤워까지 할 수 있는 시간 여유는 없어서 큰 수건에 물을 적셔서 땀 닦아내는 정도로 마무리했지만 그 전보다 훨씬 개운하고 상쾌하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낮에 <인크레더블 2>을 봐서는 안 되었다. 등장하지도 않는 영화 속 메딕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던 것이다. 악당들이 안프라이어에 나타났는지 그 이후 주민들은 밤새 911을 찾아댔다. 맨 마지막 신고전화는 차로 25분 거리인 렌프루(Renfrew)까지 출동해야 했고, 그날 나의 밤 근무는 아침 7시를 훌쩍 넘긴 8시 반이 되어서야 끝났다.

나는 아무래도 블랙 클라우드(Black cloud: 힘든 상황을 자주 맡는 crew(팀원)를 일컫는 은어)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앞으로 당분간 근무복 다림질은 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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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한국인 Paramedic, 75년생 남자, 두 아이의 아빠, 내반쪽의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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