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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간이 좀 흐른 일이지만, 몇 년 전에 우리 가족이 길바닥에 나앉을 뻔한 일이 있었다. 조짐은 있었지만 설마하고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어느 날 남편은 우리 집에 닥친 '위기'를 선언했다.
 
길바닥에 나앉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집을 이루고 있었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중에는 '책'도 있었다. 사람 몸뚱이나 겨우 들어갈 새 집에 안모은다 모은다 하면서도 책꽂이 몇 개를 채운 책들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그 많은 책들을 차분하게 처리할 상황도 아니었다. 결국 아이들이 자라듯 함께 늘어난 책들은 단돈 3만 원이라는 '근수'로 팔려나갔다. 황망한 금액이지만, 그 3만 원이라는 돈보다는 나의 삶이 더 허망했던 시절이다.
 
그런 와중에도 버리지 못하고 꾸역꾸역 들고 그 비좁은 집에 함께 들어간 책들이 몇 권 있다. 그중에 유일한 그림책, 보자마자 어머 저건 사야 해, 하고서는 정작 아이들한테는 별로 호응을 받지 못했던 책, 그런데도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이라고 서슴없이 꼽을 수 있었던 책, 바로 데이비드 스몰 그림에 사라 스튜어트가 글을 쓴 <도서관>이다.

도저히 팔 수 없었던 그림책
 
 도서관
 도서관
ⓒ 시공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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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머리에 '메리 엘리자베스 브라운 전기'라고 밝힌 이 그림책은 '마르고 눈 나쁘고 수줍음 많은' 아이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책과 함께 살아간 인생을 그린다. 

어릴 적부터 놀이에 관심이 없던 아이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학교에 가서도 공부에 관심이 없었고, 자라서 또래 아가씨들처럼 데이트를 할 줄도 몰랐다. 대신 아주 어려서부터 배운 책 읽기와 늘 함께 했다. 

그림책은 주야장천 책만 읽어대는 엘리자베스 브라운을 그려낸다. 드디어 현관 기둥을 따라 높이 쌓이다가 커다란 현관문까지 막아버려 더는 단 한 권도 책을 사들일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다. 휘파람을 불며 마을로 간 엘리자베스 브라운은 자신의 전 재산을 '헌납'하여 엘리자베스 브라운 도서관을 만든다. 그리고 친구 집으로 거처를 옮겨 또 책을 읽으며 살아간다.
 
처음에도, 지금도 <도서관>을 읽으면 마음이 뭉클하면서도 편안해진다. 처음 읽었을 때는 그냥 엘리자베스 브라운 만큼만 살면 좋겠다 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만큼만이 무엇이었을까? 그 답을 오랜 시간이 흘러 찾았다. 

예전에는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자신의 직업으로 삼아 평생을 하고 살았던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부러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면도 있다. 좋아하는 걸 평생 하며 사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다시 보니 거기에는 '책'이 있었다. 

정서적 재충전, 꼭 사람일 필요는 없으니까

<도서관>이 소중한 책이었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기까지에는 새삼 올해 나에게 온 마음의 병이 있다. 가진 것들을 다 털어버리고 딸랑 가족들 몸만 담을 공간으로 옮기던 그 시절도 다 넘겼다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올해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 앞에 장애물이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러냐는데, 나는 내 마음을 넘지 못한 채 널브러져 버렸다. 환갑을 앞둔 시절에도 케케묵은 관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솟아올랐고, 자존감은 깊은 수렁 어느 곳에 있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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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헤매던 시간 늦은 밤 찾은 카페에서 한동일 신부의 <라틴어 수업> 속 글귀가 위로가 되었다. 들뛰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그렇게 책 속 한 줄 글귀에 위로받는 나 자신을 보며 비로소 나의 안전기지가 '책'이었음을 깨달았다. 왜 가장 좋은 그림책이 <도서관>이었는지,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그렇게 부러웠는지 알게 된 것이다.
 
안전 기지 secure base, 아이가 외부 세계로 나아가는데 있어 발판이 됨과 동시에 탐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신체적, 정서적 재충전을 제공해 준다.

존 볼비의 애착 이론 중 주요 개념이다. 여기서 주로 안전 기지가 되는 건 어린 아이의 주양육자, 그 중에서도 '엄마'인 경우가 많다. 아기들은 성장 과정에서 엄마와의 애착 형성 여부에 따라 성인이 된 이후에도 '관계'에 대한 자신의 정체성에 영향을 받는다. 

나의 경우에도 그랬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는 부모들의 이합집산으로 나는 오래도록 구멍이 숭숭 뚫린 자존감으로 시달렸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는 내 마음이 흔들리면 언제나 다시 수면 위로 올라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그런데 어디 나뿐일까. 세상 사람들 열이면 열 막고 물어보면 과연 '안정적'인 애착 형성, 든든했던 안전기지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보다는 저마다 어린 시절의 상흔으로 여전히 마음의 그림자를 가진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다 발판도 없이 재충전도 못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사람으로 인해 혼란을 겪던 시절마다, 의지가지없다고 홀로 목놓아 울던 그 시절, 힘들고 외롭다 생각했을 때마다 나는 책을 펼쳐 들었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나는 현실을 버텨낼 힘과 '외로워도 슬퍼도' 홀로 걸어나갈 든든한 지원을 얻어왔다. 안전기지가 꼭 나를 키워준 엄마, 사람이란 법이 어디 있나?
 
뒤적여보는 지난 시절의 글에서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가 잡히지 않은 그 무엇임에도 열심히 도서관을 들락거렸다는 글귀를 보고, 그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간 것들 때문에 그 시절을 버텼구나란 생각에 미쳤다.

내가 만든 나의 안전기지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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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그랬다. 도서관마저 닫는 상황에서도 나는 본능적으로 책을 들었다. 코로나의 답답함을 <모스크바의 신사> 속 모스크바 한 호텔에 갇힌 신사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견뎠다. 

마음에 차오르는 답답함을 내려놓으라는, 그리고 나의 저 밑바닥 솔직한 감정을 바라보라는 심리서의 글귀들로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쌓인 몇 권의 책들은 주저앉지 않으려고 붙잡은 지푸라기들이었다. 그리고 그 지푸라기들은 언제나처럼 내 손을 잡아주었다.
 
<행복한 청소부>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그림책은 많다. 그런데 그 많은 이야기 중 <도서관>이 오래도록 나의 '베스트' 그림책이었던 이유는, 바로 그 '엘리자베스 브라운'이 읽어도 읽어도 또 읽고 싶었던 그 '책' 때문이었다. 나 역시도 살면서 '책'을 늘 내 마음의 보루로 삼아 지내왔던 거 같다. 그러니까 내가 만든 나의 안전기지는 '책'이었다.

엘리자베스 브라운이라고 달랐을까. <도서관>에서야 계속 책 속에 얼굴을 파묻은 엘리자베스 브라운만 그렸지만, 때론 파묻은 책 속에서 얼굴을 들어 막막한 세상과 마주했을 때, 그 막막함을 견디기 위해 다시 찾은 책 역시 엘리자베스 브라운의 '안전기지'가 되어주지 않았을까. 

물론, 꼭 책일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일 수도 있고, 그 반대로 열광의 '파이어'를 외치는 아이돌 그룹의 음악일 수도 있다. 책이든 음악이든, 뜨개질이든, 혹은 자연과 벗삼은 산책이든, 그게 아니라면 찾아가 내 맘을 터놓을 수 있는 벗이라도, 내가 세상을 살아가며 상처받고 그래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 돌아가 위로받을 수 있는 나의 '안전기지'를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다시 그 '안전기지'에서 내 마음을 회복하고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cucumberjh에도 실립니다.


도서관

사라 스튜어트 지음, 데이비드 스몰 그림, 지혜연 옮김, 시공주니어(1998)


태그:#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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