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TV에 출연하는 가수와 라디오와 공연 위주로 활동하는 가수는 비교적 명확히 구분돼 있었지만 20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 이런 구분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너의 결혼식>, <오래 전 그날> 같은 노래로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윤종신이 예능인으로 유명해진 건 옛날 이야기고 서울대 출신의 천재 음악가 유희열과 이적은 <놀면 뭐하니?>에 나와 유재석의 부캐 유고스타의 드럼연주 영상을 보며 농담을 주고 받는다.

최근 가장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는 뮤지션은 바로 베이시스 활동 시절 '극우울'의 극단을 오가던 정재형이다. 평생 우울한 단조의 감성적인 음악만 만들고 부르며 이별과 그리움 속에서 살아갈 거 같았던 정재형은 최근 <놀면 뭐하니?-환불원정대> 편에서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아닌 매니저로 출연하고 있다(심지어 본인도 '진지한 뮤지션' 정재형과는 상반된 정봉원이라는 부캐의 삶을 꽤나 즐기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미 '감성변태'라는 캐릭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희열이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걸그룹 멤버들에게 농담을 던지는 시대에도 언제나 작업실에서 음악에 매진하는 뮤지션이 있다. 단 한 번의 방송활동 없이도 모든 공연을 매진시킬 수 있는 매력적인 목소리를 소유한 보컬리스트이자 절친한 뮤지션들조차 그 속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감성 싱어송라이터' 김동률이 그 주인공이다.
 
 전람회 1집은 <발해를 꿈꾸며>가 들어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을 능가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전람회 1집은 <발해를 꿈꾸며>가 들어 있던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을 능가하는 판매고를 올리며 일약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오감엔터테인먼트

 
고교 동창 서동욱과 출전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 수상

요즘 세상에는 가수를 지망하는 사람들은 <슈퍼스타K>나 <K팝스타> 같은 방송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신청을 하거나 각종 연예 기획사에서 수시로 진행하는 오디션을 준비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입시학원이 아닌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한 보컬 학원, 댄스 학원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7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가수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가수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바로 MBC의 강변가요제와 대학가요제였다. 

특히 대학가요제는 그 시절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봤을 정도로 가수 지망생들에는 꿈의 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대학가요제는 1호 대상 수상자 센드페플스를 시작으로 배철수, 노사연, 김학래, 심수봉, 조하문, 이정석, 유열, 이규석, 고 신해철, 주병선, 전유나, 김경호, 배기성 등 일일이 손에 꼽기 힘들 만큼 많은 가수들을 배출했다. 대학가요제 입상은 곧 스타로 가는 등용문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을 정도.

전람회는 대학가요제 황금기의 끝세대라 할 수 있는 1993년 대회 대상 출신이다. 휘문고 동창생인 김동률과 서동욱은 학창 시절 서로 과도 다르고 성격도 달라 늘 붙어 다니는 단짝 친구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동률은 서동욱이 자신과 '코드'가 맞는 친구라고 생각했고 어느 날 자신이 쓴 노래 한 곡을 서동욱에게 들려 줬다. 그리고 노래를 들은 서동욱은 김동률이 쓴 노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김동률에게 편지로 적어 줬다고 한다.

그 때 서동욱이 보여준 감상문(?) 내용이 김동률이 곡을 쓸 때 느낀 감정과 정확하게 일치해 그 때부터 둘은 절친이 되었다는 것이' 전람회 비긴즈'의 정설로 전해지고 있다(그 때 김동률이 서동욱에게 들려 준 곡이 바로 전람회 3집 수록곡 <첫사랑>이었다). 사실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이 마음 맞는 친구를 만나게 되면 탈선의 길로 빠지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모범생이었던 김동률과 서동욱은 1993년 나란히 신촌에 위치한 명문대에 입학했다. 

그리고 김동률과 전람회는 대학 입학 후 곧바로 '전람회'라는 팀을 결성해 그 해 겨울 대학가요제에서 <꿈 속에서>라는 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당시 전람회는 생방송 전 리허설을 통해 무대에서 <꿈 속에서>를 처음 공개했는데 그 때 현장에 있던 다른 참가자들은 "올해는 대상 타기 글렀네"라고 체념했다고 한다. 그만큼 전람회의 <꿈속에서>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대학교 1학년생이 만들었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사실 대학가요제 상위 입상자들은 공식 데뷔 전 수상곡으로 방송 활동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전람회는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후 일체의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곧바로 데뷔 앨범을 준비했다(사실 <꿈 속에서>가 <담다디>나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방송에 나와 부르기 어울리는 곡은 아니다). 그리고 신해철이라는 젊은 프로듀서를 만난 전람회는 1994년 5월 드디어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며 가요계에 정식으로 데뷔했다.

만20세 짜리 풋내기들이 만든 전람회의 첫 번째 앨범

신해철은 당시 하드록 밴드 넥스트의 리더이기도 했지만 작곡가로도 적지 않은 명성을 날리고 있었다. 신해철은 2장의 솔로 앨범과 넥스트 1집 앨범의 곡 대부분과 당대 최고의 뮤지션이 총출동한 1992년 내일은 늦으리 앨범의 <더 늦기 전에>를 비롯해 엄정화의 데뷔곡 <눈동자> 등을 직접 만들었다. 여기에 신인 테크노 밴드 E.O.S의 데뷔 앨범에서는 <꿈,환상, 그리고 착각>과 <각자의 길>의 가사를 썼던 젊은 뮤지션의 기수였다.

하지만 전람회는 검증된 프로듀서 신해철의 도움을 일체 거부(?)하고 앨범 수록곡 전곡을 스스로 만들었다. 전람회 1집 타이틀곡 <기억의 습작>은 2012년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좋아하는 노래로 나오면서 젊은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기억의 습작>은 고급스런 멜로디와 간주에 나오는 웅장한 트럼펫 솔로, 그리고 1절과 2절의 감정선이 미묘하게 다른 김동률의 명품 보컬이 조화를 이루는 발라드 명곡이다. 

신해철의 개구진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행>은 전반부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수다와 의견충돌(?) 덕분에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대거 알 수 있다. '<꿈속에서> 대신 대학가요제 출전곡이 될 뻔 했다', '돈 걱정은 전람회 멤버들이 하는 것이 아니다', '신해철은 녹음실에서 언제나 잔다',김동률의 웃음소리는 생각보다 훨씬 친근하다' 같은 전람회의 팬이라면 궁금해하는, 요즘 말로 하면 각종 소소한 TMI들을 대거 들을 수 있다.

타이틀곡으로도 손색이 없는 묵직한 발라드 <하늘 높이>가 지나가면 정년퇴직하고 귀농을 꿈꾸는 5,60대 아저씨가 가사를 쓴 거 같은 <향수>가 나온다(이 곡의 가사를 쓴 서동욱은 당시 만20세였다). 노래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꽤 긴 분량의 진지한 대화체 내레이션과 꾸미지 않은 담백한 보컬까지 베이시스트 서동욱이 전람회 1집에서 가장 많이 참여한 곡이기도 하다.

신해철과의 듀엣곡 <세상의 문 앞에서>와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대가 너무 많은…>은 젊은이의 설렘과 두려움, 그리고 다짐을 담은 곡이다. 훗날 발표되는 카니발의 <거위의 꿈>, 김동률 솔로 1집 <시작>의 출발점에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느껴진다면 5번트랙 <너에 관한 나의 생각>을 추천한다. 이상순, 이적, 서동욱 등 절친들이 대거 결혼을 한 와중에 왜 김동률만 아직 싱글인지 알 수 있는 슬픈(?) 노래다.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뮤지션, 김동률

전람회는 1996년 군 전역 후 2집 <이방인>(대다수의 사람들이 이 앨범의 타이틀곡이 <취중진담>인줄 알고 있지만 엄연히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이방인>이었다), 3집 <졸업> 발표한 후 1997년 마지막 콘서트를 개최하고 미련 없이 해체됐다. 팬들은 갑작스런 해체에 많이 놀랐지만 사실 김동률과 서동욱은 친분과 별개로 서로 나가고 싶은 방향이 달랐기 때문에 2집 발표 당시에 이미 해체 시기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후 김동률은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과 베란다 프로젝트, 그리고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 가수로 자리를 굳혔다. 김동률은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주옥 같은 명곡들 외에도 이소라의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이승환의 <천일동안>, <다만>, 김원준의 <Show>, 장혜진의 <1994년 어느 늦은 밤>, 박효신의 <동경>, 보아의 <옆사람> 등을 만들며 작곡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하기도 했다.

반면에 김동률과 달리 음악에 큰 미련이 없던 서동욱은 신촌의 명문대 사회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MBA를 수료하고 현재는 대기업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하지만 카니발의 <그녀를 잡아요>, 김동률 1집의 <내 오랜 친구들> 등에 참여하고 김동률과 카니발 콘서트에도 깜짝 출연하는 등 김동률과의 우정을 이어가며 이따금씩 팬들에게 안부를 알렸다.

김동률의 팬들은 방송출연을 극도로 자제하는 김동률을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유혹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고집하는 뮤지션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김동률은 지난 9월 작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연 콘서트의 라이브 앨범을 발매했다. 김동률은 라이브 앨범 후반 작업에만 무려 8개월의 시간을 할애했다. 음악을 향한 김동률의 고집이야말로 대중들이 '불친절한 가수' 김동률에 대한 '덕질'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40대 후반의 김동률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어려 보이는 후천적(?) 동안이다.

40대 후반의 김동률은 나이를 먹어갈수록 점점 어려 보이는 후천적(?) 동안이다. ⓒ KBS 화면 캡처

 
김동률 전람회 응답하라 1990년대 기억의 습작 서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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