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의 불빛> 한 장면

<공장의 불빛> 한 장면 ⓒ 한국영상자료원

 
1986년 휴학을 끝내고 대학에 복학한 명필름 이은 대표는 노동현장에 있던 경험을 살려 18분 분량의 16mm 단편영화 <공장의 불빛>을 만든다. 나름 노동자들에게 잘해준다고 생각하는 사장과 잔업수당 등 기본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갈등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파업전야>를 연출했던 장동홍 감독이 그 이전인 1987년에 만든 단편영화 <노란 깃발>도 현실을 방관하던 노동자가 자각하는 과정을 그린 노동영화다.
 
<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 >는 1987년 7월, 8월, 9월 노동자 대투쟁을 시작으로 1989년까지 이어진 노동자들의 투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장산곶매에서 활동하던 이은과 이용배(계원예술대학교 교수)가 연출했다.
 
19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의 격렬한 투쟁을 담아냈기에, 공안당국의 탄압을 우려한 지역의 노동운동가들은 은밀하게 모여 관람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운동 상징적 작품
 
서울독립영화제가 4일 기자회견을 통해 올해 주요 상영작과 영화제 운영 방향에 대해 발표했다. 독립영화 최대 축제로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을 비롯해 빼어난 영화들이 많은 올해 영화제에서 주목되는 것은 영화운동의 역사를 담은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이다.
 
2018년부터 시작된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은 독립영화의 뿌리를 찾는다는 의미로 독립영화 복원의 중요성을 알리는 차원에서 한국영상자료원이 공동주최로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오! 꿈의 나라>와 <어머니, 당신의 아들> 1980년~1990년대 한국 영화운동을 대표하는 주옥같은 작품들이 상영됐는데, 올해는 전태일 50주기에 초점을 맞췄다.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의 분신은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전태일은 1980년 광주민중항쟁으로 형성된 한국영화운동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고, 의식 있던 청년 영화인들은 여러 형태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공장의 불빛>과 < 87에서 89로 전진하는 노동자 >, <노란 깃발> 등은 대표작들 중 하나로 한국 영화운동의 상징적인 작품들이다.
 
 민족영화연구소 활동 당시 작업하고 있는 이상인 감독(오른쪽)과 이수정 감독(가운데)

민족영화연구소 활동 당시 작업하고 있는 이상인 감독(오른쪽)과 이수정 감독(가운데) ⓒ 이수정 감독 제공

 
이들 작품 외에 이효인(경희대 교수), 이정하(전 영화평론가), 김혜준(영진위 공정환경센터장), 김준종(평창영화제 사무국장) 등이 중심이 됐던 민족영화연구소에서 만든 영화 두 편도 선보인다.
 
이수정 감독의 <하늘아래 방한칸>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전세값 폭등으로 20!명 가까이가 죽음으로 내몰렸던 사회적 현상을 배경으로 한다. 민족영화연구소가 영화제작을 위해 따로 운영했던 한겨레영화제작소서 만들었고 이수정 감독 연출 외에 조연출은 김준종 평창영화제 사무국장이었다.
 
<깡순이, 슈어 프로덕츠 노동자>도 1989년 한겨레영화제작소에서 만든 영화로 <어머니, 당신의 아들>(1991)을 연출한 이상인 감독(한양대 교수)이 초기 작품이다. 다국적 기업의 위장폐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상인과 이창원이 2개월간 합숙하며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전태일 50주기를 기념하는 독립영화인들의 마음가짐이 올해 독립영화 아카이브전에 담겨 있는 것이다.
 
배우와 저널리스트도 감독으로
 
한 해의 영화제를 총정리하는 성격답게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목받은 작품과 배우와 저널리스트에서 영화를 연출한 신인 감독들의 등장도 눈에 띈다.
 
장편 경쟁에 오른 이수정 감독의 <재춘언니>는 콜트콜텍 노동자 임재춘의 13년 투쟁을 끈기 있게 담아낸 다큐멘터리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이다. 이수정 감독은 첫 연출작인 <하늘아래 방한칸>과 제작을 도운 <깡순이, 슈어 프로덕츠 노동자>을 모두 3편이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며 저력을 나타냈다.
 
이동우 감독의 <셀프-포르레이트 2020>은 부산영화제 다큐멘터리상 특별언급 영화고, 이란기 감독의 <휴가>는 부산영화제 경쟁부문인 뉴커런츠에 초청됐던 작품이다. 김정인 감독의 <학교 가는 길>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작이었다. 이들 작품이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수상을 놓고 겨루게 된다.
 
새로운 선택 부문에서 상영하는 이우정 감독 <최선의 삶>은 올해 부산영화제 KTH상 수상작으로 촬영감독에게 주는 CGK&삼양XEEN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혜미 감독의 애니메이션 <클라이밍>은 22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특별상 수상작이다.
 
부산영화제 배우상 수상작인 이유빈 감독<기쁜 우리 여름날>과 아시아영화진흥기구상을 수상한 윤재호 감독의 <파이터>, 김조광수 감독의 신작 <메이드 인 루프탑>, 무주산골영화제가 제작한 김종관 장건재 감독의 <달이 지는 밤>은 페스티벌 초이스 쇼케이스를 통해 상영된다.
 
 조은성 감독 <1984, 최동원>

조은성 감독 <1984, 최동원>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김꽃비 감독 단편영화 <캠핑을 좋아하세요>

김꽃비 감독 단편영화 <캠핑을 좋아하세요> ⓒ 서울독립영화제 제공

 
조은성 감독의 < 1984, 최동원 >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기도 관심을 받는 작품이다. <시민 노무현>, <무현, 두 도시 이야기>, <그라운드의 이방인> 등의 프로듀서를 맡았고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출했던 다큐멘터리 제작과 연출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조은성 감독이 불멸의 야구스타였던 최동원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배우와 저널리스트도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감독으로 나선다. 배우 김꽃비는 16분 단편 <캠핑을 좋아하세요>를, 배우 안재홍은 30분 단편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안고>를 연출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김현민도 단편영화 <파란>으로 감독으로 데뷔한다.
 
코로나19가 변수이기는 하지만 영화관 좌석 거리두기가 완화되는 상황이 이어질 경우, 올해 서울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 관객들에게 최상의 선물이 될 전망이다.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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