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진실을 맨살로 보여주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

세상의 진실을 맨살로 보여주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 ⓒ 영화 홈페이지

 
봄에는 날리는 벚꽃 잎을 보며, 여름엔 푸른 바다에서 수영하는, 가을엔 붉은 단풍 아래서 웃으며, 겨울엔 쓸쓸해서 아름다운 설경을 보며. 본디 청춘은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런데… 다들 착각한다. 위에 언급된 묘사처럼 '청춘은 마냥 아름다운 것'이라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여기 '세상 가장 빛나는 시절'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되는 아이 둘이 있다. 갓 열아홉 살. 고등학교를 곧 졸업할 소년 하나가 그 어렵다는 취직을 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웃었다. 텔레마케터다.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이력서를 30번 쓰는, 올해 대학을 졸업한 소녀 하나도 있다. 대기업 입사의 꿈을 꾸는.

그런데, 둘이 처한 '실질적 상황'은 어떨까? 부모는 물론 세상도 알지 못했다. 걔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무슨 방식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는지. 그 '살아감'이 얼마나 비루한지. 해서 아프다.

한때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던 신수원 감독의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그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다.

대체, 도대체 2020년 이 땅에 젊은이들이 잠시잠깐 쉬어갈 양지라는 게 있는가,라는 질문을 아프게 던진다. 나도 궁금하다. 내 동생과 사촌동생 애들이 앞서 언급한 딱 그 또래 청년들.

'자본의 정글'이라 불러도 좋을 콜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의 고통이란 팀장과 팀원, 그 센터를 책임지는 우두머리와 말단 직원이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자기보다 더 '취약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매일같이 "빚을 갚아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매일 그 말을 해야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아팠을까?
 
 누가 아름답게 살라고 하여, 아름답게 되더냐... 라는 싯구를 떠오르게 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

누가 아름답게 살라고 하여, 아름답게 되더냐... 라는 싯구를 떠오르게 하는 영화 <젊은이의 양지>. ⓒ 영화 홈페이지

 
70년 세월, 그러나 왜 세상은 바뀌지 않는지...

고교 졸업 이전 '돈을 빌렸으면 갚아라'라고 말해야 하는 게 제 몫의 일인 소년. 그는 자신이 건 한 통의 전화가 다른 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줄 모른다. 당연하다. 누가 그걸 열아홉에 알 수 있겠나.

그 콜센터의 책임자로 일하는 여성 역시 모른다. 자신의 딸이 그 소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입장에 처해있음을. 아니, 조금 더 나가면 자신 역시 원하지 않던 술자리에서 더 큰 회사의 간부 사원에게 성희롱을 당할지…. 세상은 '가난한 사람이 구할 수 없는 정글'이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때때로 영화는 엄연한 현실을 난반사 하는 '아픈 거울'이다. 거기에 비친 인간과 세상이 참혹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문제는 결국 '제대로 된 세상을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니까.

21세기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1952년 20세기 미남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출연한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에게 묻는다. 두 영화는 같은 제목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지향은 아니었다. 그러나, 70년이 지났는데 한 인간의 삶도 바뀔 수가 없는 것인가?"

이 질문이 20세기와 21세기를 걸쳐 살아온 내겐 아프다. 전 세기를 살았던 우린 이번 세기를 사는 아들, 딸, 조카들에겐 '가난하니까 꿈을 포기하라'고 말하기 싫었는데…. 결국은 할 수밖에.

짧은 시간 환하게 웃는 영화에 물린, '삶은 아프니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관객들에게 권한다.
절음이의 양지 현실 몽고메리 클리스트 신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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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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