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보도되고 있는 개그우먼 박지선님 사망사건 보도에 신중을 기해 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현재 고인의 사건은 극단적 선택으로 확정된 사항이 아니기에, 사건조사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확인되지 않은 내용으로 유족 등이 상처받지 않도록 협조하여 주시기 바라며, '극단적 선택' 등 특정 사망원인을 암시하는 표현은 삼가 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2일 오후, 중앙자살예방센터(이하 센터)가 언론사에 보낸 <개그우먼 박지선님 사망사건 보도 자제요청>이란 협조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러면서 센터는 한국기자협회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의 5가지 원칙을 준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확인이 되더라도, 보도 시 자살방법 및 수단, 유서의 내용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고 박지선, 하늘에서도 코미디언으로 고 박지선 코미디언의 빈소가 2일 오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됐다.

▲ 고 박지선, 하늘에서도 코미디언으로 고 박지선 코미디언의 빈소가 2일 오후 서울 이대목동병원에 마련됐다. ⓒ 사진공동취재단

 
2일 오후 방송인 박지선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는 박지선의 사망 소식에 황망함과 함께 애도와 슬픔은 전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이 안타까운 소식을 전한 언론 보도는 어땠을까. 센터의 요청과 당부는 각 매체들에 제대로 전달됐을까.

이와 관련, 3일 서울 마포경찰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부검은 진행하지 않는다"며 "외부침입 흔적이 없고 유서성 메모가 발견된 점으로 보아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유족 역시 박씨의 모친이 쓴 것으로 전해진 노트 1장 분량의 메모 공개 및 부검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알렸다.

대다수 매체들은, 적어도 '유서 내용의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센터의 요청은 지킨 것으로 보인다. 유족 측의 요구대로, 박지선의 모친이 쓴 것으로 전해진 메모의 내용을 직간접적으로 인용한 매체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달랐다.

이익 위해 고인 내세워

<개그우먼 박지선, 모친과 숨진 채 발견…부친이 "연락 안 돼" 신고>

3일자 <조선일보>의 12면 기사 제목이다. 하지만 이날 새벽 온라인 판 기사 제목은 달랐다. <조선일보>는 무려 '단독'이란 이름 아래 '박지선 엄마 유서...'로 시작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제목만 달랐을 뿐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해당 기사 속 박지선의 모친이 남겼다는 메모 내용은 작은따옴표 형식으로 취지를 간접 인용했다. 굳이 이 메모의 취지를 간접 인용해야 했는지, 그 간접 인용을 바탕으로 기사 제목을 뽑아야 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기사였다.

더군다나, 유족이 원치 않는다고 밝힌 상황이었다. 이를 <조선일보>는 '단독'이라 강조하고, 온라인판에 이어 지면에까지 보도를 이어간 것이다. 제 이익을 위해 고인을 내세운 이들은 또 있었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세연)였다.

이들은 2일 오후 진행한 라이브 방송에서 박지선의 사진을 해당 영상의 '섬네일'(대표 사진)로, 영상 제목을 <화장 못하는 박지선(의료사고피해자)>이라고 내걸어 비난을 자처했다. 일부 시청자가 댓글로 이를 언급하자, 진행자인 전 MBC 기자 김세의씨는 "당신네들은 박지선씨를 위해서 뭘 했느냐?"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라이브 방송에서 박지선의 사진을 해당 영상의 '섬네일'(대표 사진)로 사용했다.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가 라이브 방송에서 박지선의 사진을 해당 영상의 '섬네일'(대표 사진)로 사용했다. ⓒ 유튜브

 
아울러 이들은 지속적으로 '얼굴', '여인', '화장' 등을 강조하며 고인의 외모에 대한 언급을 이어나갔다. 평소 일부 연예인의 '찌라시'성 풍문을 폭로하는 것으로 유명한 <가세연>에 고인을 언급하는 것을 넘어 사망 직후 고인의 얼굴을 내건 것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일말의 윤리는 어디갔나
 
유서와 관련된 사항을 보도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합니다. 고인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고 자살의 미화를 방지하려면 유서와 관련된 사항은 되도록 보도하지 않습니다.

중앙자살방지센터가 강조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해당 '단독' 기사는 이러한 권고를 명백히 무시했다. 유족이 공개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말이다.

또 해당 권고엔 "유가족의 심리 상태를 고려하여 세심하게 배려해야 합니다", "고인의 인격과 비밀은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호해야 합니다"란 내용도 함께 명시돼 있다. 

<가세연>의 경우, '의료사고' 운운하며 사망 직후 고인의 얼굴을 내걸고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는데 이는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또한, 이 방송을 접한 유가족이 받을 상처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는 듯 하다.  

<가세연>의 진행자 중 두 사람은 무려 '전직 기자'다. 이들이 살아생전 고인을 별달리 언급한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려 62만 명에 달하는 <가세연>의 구독자들 외에 '뻔한' 장삿속을 불쾌할 이들이 더 많아 보인다.
 
박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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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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