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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아래로 관리하는 등의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키로 한 가운데, 긴축정책으로 경제가 침체되면 나라빚이 더 늘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3일 국회에서 열린 '재정준칙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정세은 충남대 교수(참여연대 조세재정개혁센터 실행위원)는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기도 전에 유럽연합(EU) 핵심국들이 재정준칙을 다시 밀어붙이면서 유럽 경제는 다시 추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재정 허리띠를 졸라매도 경제가 추락하니 GDP 대비 국가채무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미국 하버드대 로렌스 서머스 등이 2018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국채비율을 낮추려는 긴축정책이 장기적으로 경제에 악영향을 미쳐 국채비율을 오히려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빚 줄이려고 허리띠 졸라 맸더니 오히려 더 늘어"

독일 등 유럽 핵심국가들이 재정준칙 아래 성공적으로 채무비율을 줄일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유럽 내 국가들에 대한 수출로 경기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재정준칙이 경기에 부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경제를 좁은 통로 안에서만 움직이게 하는 족쇄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며 "경기는 후퇴기와 회복기를 반복하기 때문에 후퇴기에는 충분히 경기부양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나원준 경북대 교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독일 등 일부 나라를 제외하면 강요된 긴축이 여러 나라의 경제 활력을 저하시켰다"며 "빚을 줄이려고 허리띠를 졸라 맸더니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국가채무비율은 오히려 더 올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나 교수는 "유럽연합의 경험이 증명하듯 정부가 부적절한 재정준칙을 밀어붙이면 경제도, 재정도 몽땅 망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60% 국가채무비율, 객관적으로 검증 안됐다"
 
국세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평가한 각국의 재정 여력.
 국세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평가한 각국의 재정 여력.
ⓒ 참여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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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설정한 재정준칙 기준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앞서 지난달 5일 기획재정부는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관리 범위를 각각 GDP 대비 60%와 -3%로 제시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발표했다. 이같은 재정준칙은 오는 2025년부터 적용된다. 

정 교수는 "60% 국가채무 수준은 객관적으로 검증된 기준도 아니다"라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로코프, 라인하트 교수가 (나라빚이) GDP의 90%를 넘으면 경제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를 내놨지만 오류가 밝혀졌다"고 밝혔다. 

이어 "선진국의 평균 채무수준은 GDP의 120%를 넘은 상태"라며 "최근처럼 금리가 매우 낮은 상황에서는 대규모의 국가채무 증가에 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고 부연했다. 

나 교수도 "실제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사실은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만국 공통의 고정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2011년 채무 지속가능성 분석 보고서에서 국채비율 60%가 국가채무의 지속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유럽과 우리나라 상황은 다르다

또 그는 "6%, 3% 등 숫자들은 1990년대 초 유럽 통합을 준비하던 나라들이 각국의 차이를 좁혀가기 위해 합의한 타협의 산물이었을 뿐"이라며 "기재부가 30년 전 유럽에서 탄생한 숫자를 국제기준으로 삼아 2020년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코로나19로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재정준칙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 교수는 "정부 역할의 적극성과 유연성이 필요한 상황에서 국가부채 수준을 제한하는 것은 정부투자를 통한 국가경제의 성장 가능성을 줄이고 민간경제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경기침체 때 재정지출 확대 등 적극적 재정정책을 통한 효과가 더욱 크다는 최근 연구결과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확실성이 높은 현재 시점에서 재정준칙을 논의하는 것은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오히려 재정을 덜 쓰는 잘못된 경기대응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나 교수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위기가 경제변수들의 정상 수준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며 "이 가운데 유독 재정에 대해서만 과거의 기준이 코로나19 이후에도 통용된다고 간주하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난은 약자에 더 고통, 재정준칙 무책임"

오히려 현재에는 고용안전망 확충 등 분배 개선에 집중하면서 재정적자를 유연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 교수는 "당장 재정정책이 집중해야 하는 것은 고용 및 사회안전망 확충"이라며 "또 한국판 뉴딜을 추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기적 국가채무 증가를 동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 교수도 "소득분배가 개선되면 재정적자가 덜 필요하게 될 수 있다"며 "적어도 이번 위기를 벗어나 경제가 회복되는 초기 단계에서는 재정적자의 긍정적인 경제효과를 당분간 더 유연하게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는 "재정을 생산적인 공공투자에 적극 활용하면 경제회복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도 인사말을 통해 "재난은 약자에게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이를 방치하면 위기가 끝나더라도 상처는 그대로 남게 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아주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4차례 추경에도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지출한 재정의 규모는 GDP의 3.4% 수준"이라며 "올해 6월 기준 미국이 12.3%, 일본이 11.3%, 영국이 6.2%, 중국이 4.1%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많지 않은 규모"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의원은 "재난으로 인한 경제위기 상황에서 충분한 재정지출도 하지 않은 채 재정준칙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일"이라며 "이번 토론회가 새로운 재정운용 전략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토론회는 윤후덕·홍익표·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장혜영 정의당 의원, 참여연대 등이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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