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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여행은 언감생심, 국내 여행조차도 꺼려지는 요즘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아까운 계절을 '집콕'으로만 보낼 순 없죠. 가벼운 가방 하나 둘러메고, 그동안 몰랐던 우리 동네의 숨겨진 명소와 '핫플레이스'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전국 방방곡곡 살고 있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큰마음 먹지 않고도 당장 가볼 수 있는, 우리 동네의 보석 같은 장소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구미 낙동강 체육공원 위쪽에는 자생 억새밭 15만 평이 펼쳐져 있다.
 구미 낙동강 체육공원 위쪽에는 자생 억새밭 15만 평이 펼쳐져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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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지 않으면 코앞의 절경도 모른다는 건 맞는 말이다. 좋은 풍경을 찾는 일을 즐기기는 하지만, 정작 내가 사는 고장에 쓸 만한 풍경이 있다는 걸 모르고 지냈다는 것을 확인해서 하는 얘기다. 최근 낙동강 체육공원, 경북 구미시 고아읍 괴평리 쪽 강변에 꽤 널따란 억새밭이 펼쳐져 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2012년에 문을 열었다는 낙동강 체육공원은 그간 서너 번쯤 들렀을 것이다. 그러나, 체육과는 별 인연이 없는 나는 바람이나 쐰다고 휑하니 들렀다 나오곤 했으니 거기 조성해 둔 풍경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 없다. 바깥 활동이 잦은 아내를 통해 가끔 거기 무슨 무슨 꽃을 잔뜩 심어 놓았더라는 소문을 전해 들으면서 그런가, 하고 무심하게 받아넘길 뿐이었다. 
 
2012년 문을 연 낙동강 체육공원은 210만 평 대지 위에 각종 체육시설과 조경이 이루어져 있다.
 2012년 문을 연 낙동강 체육공원은 210만 평 대지 위에 각종 체육시설과 조경이 이루어져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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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낙동강 체육공원은 2012년, 시내 지산동과 고아읍 괴평리 일대 둔치에 210만여㎡(64만 평) 규모로 조성된 국내 최대 규모의 체육공원이다. 종합경기장과 축구장, 야구장, 족구장, 풋살경기장, 게이트볼장 등 전체 42면의 다양한 체육시설과 야영장, 자전거대여소, 어린이 놀이시설 등을 갖췄다. 

달포 전에 코스모스 군락이 어디 없나 싶어 사진기를 들고 들렀더니 주말이라 공원은 사람과 차로 붐비고 있었다. 찾는 코스모스는 보이지 않고, 핑크뮬리밭 주변에 사람들만 바글바글해서 부근의 억새 몇 장을 찍고 돌아와 버렸다. 

나중에 아내한테 들으니 핑크뮬리 단지를 지나면 1000여 평(구미시 건설수변과에 다시 확인해 보니 4700평이란다. 세상에!)의 코스모스밭이 있다는 거였다. 며칠 후에 들렀더니 공원에는 빨강, 분홍 등의 꽃을 단 키 작은 코스모스가 빽빽하게 피어 있었다. 비록 꾸며놓은 풍경이지만, 그 화사함이 좋았다. 

봄에는 금계국 단지, 가을엔 핑크뮬리와 억새 등 계절 별로 다양한 꽃을 심어 장관을 연출한다고 했다. 지난해엔 연간 이용객이 138만 명을 넘었다니, 구미 인구 42만을 고려하면 정작 모르는 사람 빼고는 다 다녀간 명소가 된 셈이다.
 
4700평에 이르는 체육공원의 코스모스밭. 올 8월에 심은 키 작은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4700평에 이르는 체육공원의 코스모스밭. 올 8월에 심은 키 작은 코스모스가 만발해 있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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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많은 곳 등지고, 우연히 찾은 이 풍경 

공원을 빠져나올 때 반대 방향을 선택했더니, 사람의 발길이 드문 위쪽 낙동강 강변에 꽤 널따란 억새밭이 펼쳐져 있었다. 어라, 싶어서 잠깐 차를 세웠다가 다시 그곳을 찾은 것은 이틀 후였고, 그 뒤에도 두 차례나 더 들렀다. 

그간 늦가을이면 여러 차례 억새를 찾았다. 처음은 영남 알프스의 간월산 억새였고, 다음은 경주 무장산 억새였는데, 내 억새 탐방은 2018년 합천 황매산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해발 900m 고지 황매 평원(平原)을 뒤덮은 은빛 억새 물결의 감명은 지금도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관련 기사 : 지친 마음 어루만져 주듯… 반짝이던 황매산 '억새 물결')

한반도 전역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억새는 키가 1~2m이다. 대중가수 고복수가 1936년 말에 발표한 <짝사랑>의 가사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로 노래로 유명한 그 '으악새'다. 으악새를 '왜가리'의 사투리 '왁새'를 늘여 '으악새'라는 설도 있지만, 가을을 환기하는 것은 백로가 아니라 억새라고 보는 게 훨씬 운치가 있는 것 같다. 

억새와 갈대를 혼동하는 이들이 많지만, 억새는 희거나 은빛을 띠고, 갈대는 갈색을 띤다. 산에 자라는 것은 억새, 물가에 자라는 것은 갈대다. 바람이 서걱이며 지나갈 때, 억새는 대를 부딪치며 소리를 내는데, 그걸 노랫말에서는 '슬피 운다'고 표현한 것이다. 
 
낙동강변에 펼쳐진 억새는 자생했다. 강 건너 빌딩들이 보인다.
 낙동강변에 펼쳐진 억새는 자생했다. 강 건너 빌딩들이 보인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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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의 억새. 키가 큰 것은 갈대다.
 강가의 억새. 키가 큰 것은 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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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가장자리에 뚫린 도로에서는 공원이 훤히 내려다보였지만, 일렬로 늘어선 가로수 때문에 억새밭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억새밭을 찾으면서 철제 사다리를 가지고 가서 그 위에 올라서서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시청에 확인하니 억새밭 면적은 대략 15만 평(50만㎡) 정도다. 

이 억새는 일부러 심은 것이 아니라 자생한 것이다. 자생 군락이다 보니 전체 경관이 고르지 않다. 높낮이도, 키도 다르고, 군락이 성긴 데도 있고 빽빽한 데도 있다. 산등성이가 아니라서 당연히 한눈에 조망하기 어렵다. 그래서 황매산이나 간월산에서 만난 억새 물결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른 아침과 오후에 들렀는데, 역광에 빛나는 억새꽃이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꽃 주변에 몰릴 뿐, 억새밭 쪽으로 오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거닐어 볼 만한 곳이지만, 시민의 발길을 끌어오는 길도, 조망대도 없는 탓일까.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풍경 속을 더 편안해하는지 모른다. 
 
금오산의 배경으로 피어난 억새. 억새 틈에서 웃자란 것은 갈대다.
 금오산의 배경으로 피어난 억새. 억새 틈에서 웃자란 것은 갈대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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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광으로 만날 때 억새는 훨씬 더 아름답다
 역광으로 만날 때 억새는 훨씬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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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새발 저 너머로 시내의 아파트가 보인다.
 억새발 저 너머로 시내의 아파트가 보인다.
ⓒ 장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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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서걱이는 억새 소리... 이게 가을이지 
   
강가에 가까워질수록 키 큰 갈대의 수효가 늘어났다. 푸른 강물을 배경으로 한 억새도 새로웠지만, 무언가 어쩐지 아쉽기만 했다. 그게 일부러 억새를 심고, 길을 구획하고, 포토존을 설치하지 않아서일까. 

강변의 억새밭은 대단한 경관이라 하기는 어렵다. 간월산이나 황매산 같은 조망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억새밭 주변, 없는 길을 내어가면서 걸어보라. 바람에 서걱이는 억새의 흐느낌 사이로, 시방 가을이 가슴 끝까지 차올랐음을 깨닫고 오는 겨울을 담담하게 맞을 마음의 준비쯤은 넉넉히 할 수 있으리니.

최소한, 도종환 시인이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 나의 마음은 바람 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시 <가을 사랑> 제2연)라고 쓴 이유를 깨우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구미시 건설수변과 담당자와 두어 차례 통화했다. 관련 정보를 물어보고, 억새밭이 시민들의 휴식공간이 될 수 있겠다고 이야기하자, 그는 내부적으로 계획을 세워보는 단계라고 했다. 물론, 구체안도 없고, 예산도 확보된 것은 아니지만. 나는 관련해 내 의견 몇 가지를 이야기해 주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쓸데없는 박정희 예산 줄여서 이런 데 써야지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s://qq9447.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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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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