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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초코, 하와이언 피자, 고수... 호와 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들입니다. 남들은 이해 못하지만, 내겐 '극호'인 독특한 음식들을 애정을 듬뿍 담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하와이안 피자(a.k.a 파인애플 피자)
 하와이안 피자(a.k.a 파인애플 피자)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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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남자친구였던 남편과의 연애 8년 동안 수없이 주고받은 말은 "뭐 먹을까?"였다. 둘 다 딱히 떠오르는 음식이 없을 때면 은근히 짜증스러운 질문이기도 했다. 단, 일단 피자집에 발을 들인 후라면 얘기는 달라졌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건 '하와이안 피자!'였으니까.

골든브라운 색으로 곱게 구워져 먹음직스럽게 녹아내린 치즈 위로 노란 꽃이 핀 듯 파인애플 조각들이 잔뜩 얹혀 있었다. 입안 한가득 베어 무는 순간 치즈의 고소함과 짭조롬함 사이로 파인애플의 달달 상큼한 과즙이 파고들었다. 느끼함과 상큼함, '단짠'의 조화. 적어도 우리에겐 그랬다.

이처럼 당연한 선택지였던 파인애플 피자가 어떤 이들에겐 '극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인들이 모여 피자를 주문하려는데 누군가 파인애플 피자를 언급하자 때아닌 논쟁이 벌어졌다.

"피자에 대체 왜 파인애플을 넣어?" 파와 "얼마나 맛있는데!" 파의 갑론을박은 결론이 없었다. 개인의 입맛에 정답이 있을 리 없으니까. 하지만 전자를 지지하는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결국 다른 인기 있는 피자들 한켠으로 하와이안 피자 한 판이 자리를 얻기는 했더랬다.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피자 게이트'에 휩싸인 이유 
 
유튜브 채널 '보다'에 올라온 <이탈리아인들을 고문하는 방법? 한국 파인애플 피자를 처음 먹어본 이태리 사람들 반응> 영상. 이탈리아인 출연진이 파인애플 피자를 앞에 둔 끔찍한(?) 상황을 재치있게 설명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보다"에 올라온 <이탈리아인들을 고문하는 방법? 한국 파인애플 피자를 처음 먹어본 이태리 사람들 반응> 영상. 이탈리아인 출연진이 파인애플 피자를 앞에 둔 끔찍한(?) 상황을 재치있게 설명하고 있다.
ⓒ 유튜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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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안 피자는 '민트초코'와 더불어 호불호 논쟁의 양대산맥이란다. 호기심에 각종 영상과 글을 살피다가 '이게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어 웃음이 났다. 일단 구글의 하와이안 피자 관련 검색어만 보아도 '하와이안 피자 극혐/고문/맛집/논란/금지/추천' 등 '불호' 쪽이 많은 것 같았다. 기껏 피자 때문에 '고문'에 '금지'까지? 영상은 더 흥미로웠다.

'파인애플 피자(하와이안 피자의 다른 이름)는 나폴리에선 범죄급'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선 이탈리아에서 파인애플 피자를 먹느냐는 질문에 "그건 범죄다. 체포당할지도 모른다"고 답하는 이탈리아인 쉐프가 등장한다.

'이탈리아인들을 고문하는 방법? 한국 파인애플 피자를 처음 먹어본 이태리 사람들 반응'에서는 이탈리아인에게 하와이안 피자를 만드는 법을 물으면 이렇게 답할 거라고 했다. "첫째, 피자를 들어요. 둘째, 바로 버리세요. 셋째, 그리고 진짜 피자를 만드세요."
 
영국인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한 방송에 출연해 파인애플 피자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 그는 파인애플 피자를 극도로 싫어한다. (영상, 자막 출처 - 창경YOUTUBE)
 영국인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한 방송에 출연해 파인애플 피자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 그는 파인애플 피자를 극도로 싫어한다. (영상, 자막 출처 - 창경YOUTUBE)
ⓒ 유튜브 창경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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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램지와 파인애플 피자'라는 영상을 보면 파인애플 피자를 맛본 유명 영국인 쉐프 고든램지가 "이건 피자가 아니라 실수다. 달고 짠 맛이 나는 두꺼운 종이 맛이다"라며 가글하고 주변인들이 깔깔대는 장면이 나온다.

애니메이션이나 드라마에서도 종종 하와이안 피자를 평하는 대사가 들리곤 하는데, "토핑을 뭘로 할까?" 라는 질문에 "파인애플만 아니면 돼" 라고 답하는 식이다. 심지어 아이슬란드 대통령 구드니 요하네손이 고등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 "그럴 권한이 있다면 피자에 파인애플 토핑 올리는 것을 금하고 싶다"는 발언을 해 화제가 됐고(이후 논란이 커지자 '파인애플 피자 게이트'라는 명명까지 붙는다), 뒤이어 캐나다 연방총리 저스틴 트뤼도가 트위터를 통해 "나는 온타리오주 남서부의 이 맛있는 창작물을 응원한다"는 지지 발언을 하는 일도 있었다. 재밌는 세상이다.

옹호하는 쪽에서는 대개 하와이안 피자 먹방 영상을 올리고 있었다. '전세계가 하와이안 피자를 숭배합니다'라는 영상에서는 '피자 위의 파인애플 토핑'이라는 전염병이 전세계를 덮치는 과정을 사뭇 진지하게 보여줘 웃음을 자아냈다.

"하다 하다 이젠 피자가 선을 넘네" 

최근 인터넷상에서는 '밈'이라는 용어가 대세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인터넷 밈(internet meme)이란 대개 모방의 형태로 인터넷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 사이에 전파되는 어떤 생각, 스타일, 행동 따위를 말한다. 인터넷 밈은 그림, 하이퍼링크, 동영상, 사진, 웹사이트, 해시태그, 몸짓 등의 형태를 취할 수 있다. 만들어진 밈은 소셜 네트워크, 블로그, 이메일, 뉴스 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퍼져나간다."

이러한 밈 현상을 등에 업고 나타난 트렌드인 가수 '비'의 '1일 1깡'처럼, '하와이안 피자'나 '민트초코' 같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들이 '밈'화 되어 온라인상에서 일종의 놀잇거리로 이용되고 있다.

피자와 파인애플의 태생적 부조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가운데, '파인애플 피자'라는 영상 속 노래가사는 '불호' 파의 입장을 분명히 대변해주고 있다.

"친구야, 이건 선을 넘었지. 파인애플 피자라니. 나와 격한 갈등 일으키고 싶구나. 피자에 과일이라니, 풋고추를 잼에 찍어먹지 않듯이, 김치에다 초콜릿을 발라먹지 않듯이, 근본 없고 알 수 없는 조합이다."
  
파인애플 피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대개 이와 같았다. 피자에 과일을 얹다니, 뜨뜻해진 과일이라니 '근본 없고 알 수 없는 조합'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완벽한 단짠의 조합'이며 파인애플의 새콤한 맛이 느끼함을 잡아준다고 말한다.

이처럼 논란(?)을 일으키곤 하는 하와이안 피자는 이름과 달리 하와이에서 만들어진 것도, 피자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의 산물도 아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1962년 캐나다 온타리오주 차탐에서 새털라이트라는 레스토랑을 운영하던 '샘 파노포울로스(Sam Panopoulos)'에 의해 처음 탄생했다. 캐나다 연방총리가 이 피자에 대한 지지발언을 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극혐', 누군가에겐 '최애'
 
2017년 샘 파노포울로스의 부고 소식을 전한 abc 뉴스 갈무리.
 2017년 샘 파노포울로스의 부고 소식을 전한 abc 뉴스 갈무리.
ⓒ abc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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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네트워크 캐나다(Food Network Canada)>에 실린 샘 파노포울로스와의 인터뷰(2016년 4월 5일 자)에 따르면, 60년대 초반 캐나다에서 피자는 대중적이지 않은 음식이었고 버섯, 베이컨, 페퍼로니가 토핑의 전부였다고 한다.

어느 날 시험 삼아 레스토랑에 있던 파인애플을 얹어 손님들에게 맛보게 했던 것을 계기로 파인애플 피자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사용한 파인애플 통조림 브랜드의 이름을 따서 '하와이안 피자'라 불렀다. 외국음식을 접할 수 있는 식당들이 거의 전무한 시대였지만, 하와이안 피자 이후에도 그는 중국음식이나 자신의 고향인 그리스 음식 등 새로운 맛 소개를 즐겼다고 한다.
 
"당시에는 여러가지 요리를 맛볼 방법이 없었어요. 누군가에게 피자에 파인애플을 얹어보라고 말하면 '미쳤어?' 하는 얼굴로 쳐다봤죠."


피자 자체도 대중적이지 않았던 시절, 요즘에도 논쟁의 씨앗이 되곤 하는 파인애플을 토핑으로 삼아 판매까지 했던 그는 꽤나 모험적인 사람이었나보다.

기사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한 많은 팬들을 매료시키며 극과 극의 반응을 일으키는 음식, 하와이안 피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캐나다 요리를 메이플 시럽과 베이컨 너머로 확장시키며 문화적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은 바로 샘 파노포울로스 같은 요리 혁신가들의 정신입니다. 그리고 문화적 다양성이야말로 이 나라를 더욱 멋지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고민없이 당연히 파인애플 피자를 주문하는 내게도 호불호 논쟁의 양대산맥 중 다른 하나인 민트초코는 '범죄급' 음식이다. '말도 안돼. 치약을 먹다니' 싶다. 누군가에게 '최애'가 누군가에겐 '극혐'일 수 있다. 하지만 '호'든 '불호'든 그게 무슨 대수랴. 모두가 같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장난삼아 하는 논쟁이든 요즘 유행하는 '밈'이든 서로의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는 가운데 즐겁게 한바탕 놀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 아닐까.

문득 아빠가 된장국을 드실 때마다 버터 한 스푼을 풀어넣곤 하셨던 생각이 난다. '희한한데 뭐, 고소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한번도 따라 해본 적은 없었다. 맞장구치며 함께 했더라면 아빠가 참 좋아하셨을 텐데. '다름'은 '틀림'이 아니며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이 세상을 재미나게 한다.

태그:#하와이안 피자, #파인애플 피자, #밈, #호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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