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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수원에 볼일이 있어, 이른 새벽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새벽 첫차를 타겠다고 밤을 새운 탓에 정신이 서서히 혼미해져 가는 중이었다. 석계역에서 수원역까지는 한 시간 반. 앉으면 바로 정신을 잃을 계획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정신이 또렷해졌고 피로는 잊혀졌다. 한 차량을 꽉 채운 듯한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다.

생존본능 vs. 자존심

덩치도 크고 얼굴엔 각이 져 있던 아저씨는 겉모습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맞은편 문 옆에 피곤한 듯 기대 있던 아저씨가 나를 힐끗 바라봤다. 그 순간, 평소 해본 적 없던 고민이 일었다. '어디에 앉지? 술도 먹은 것 같은데, 시비 거는 거 아니야? 멀리 떨어져 앉을까? 아니야. 남자가 자존심이 있지. 그냥 문 옆에 앉자! 아니야. 그래도 혹시...' 어떻게든 안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생존본능과 남자가 지레 겁먹어서 되겠냐는 자존심이 생뚱맞게 대립했다.

혼자만 어색했던 시간. 다행히 자연스럽게 지하철 노선도를 확인하는 척 등을 돌렸다. 고마운 생존본능. 역시 몸은 정직하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했다. 이제 천천히 몸을 돌려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최대한 멀리. 가능하다면 다음 칸으로.

하지만 그때 이성이 끼어들며 말했다. "텅 빈 자리를 두고 애써 멀리 앉는다? 아까 눈도 마주쳤지? 피했지? 거기다 대놓고 피한다고? 와~ 용감하네!?" 결국 나는 그대로 문 옆에 앉았다. 뜻하지 않게 자존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대각선으로 마주 앉은 아저씨와 나. 생각 없던 자존심이 내뱉는 후회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번 나를 힐끗거리는 시선. 간담이 서늘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다행히 내겐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최첨단 기기가 있었다. MP3 플레이어. 나는 자연스럽게 이어폰 줄을 풀기 위해 고개를 숙이며 눈을 피했다. 남자의 자존심이란 이런 것이다. 절대 쫄아서가 아니라 이어폰 줄이 엉켜서라는 명분을 만든다. 참 부질없는 남자의 길. 그 길은 서 있기만 해도 피곤함이 밀려온다.

너무나 가혹했던 형님의 "형님" 열전

그렇게 긴 시간을 들여 정성스레 이어폰 줄을 풀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물끄러미 나를 보던 아저씨의 어수선함이 느껴졌다.

"눼~ 형님!"

역시. 아스라이 풍기던 분위기를 익을 대로 익은 걸쭉한 한 마디가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어울리지 않게 다소곳한 자세로 전화를 받고 있지만, 저분도 내겐 형님임을. 자책에 빠진 자존심의 한숨 소리가 어느새 곡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통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장하고 가열차게 이어지는 형님의 "형님" 열전은, 내게 예상치 못한 위협으로 다가왔다.

"아닙니다. 형님"
"괜찮습니다. 형님"
"전화번호 말입니까? 형님?"
"0에 형님?" "1에 형님."
"6에 형님?" "5에 형님."
"X에 형님?"
~~~~~~~~
"X이지 말입니다. 형님."


신선함이 지나쳤다. 번호마다 형님을 붙이다니. 들숨과 날숨을 쉬듯 말끝마다 자연스레 "형님"을 붙이는 그 형님과는 달리 그 낭랑함에 웃음을 참던 나는 호흡곤란 증상을 겪었다(물음표에선 올리고 마침표에선 내려야 제대로 느낄 수 있음).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 절대 웃으면 안 되는 상황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고야 마는, 온몸을 괴롭히는 말도 안 되는 웃음 포인트. 그걸 그 "형님"이 자극하는데 바늘이라도 있으면 허벅지를 찌르고 싶었다. 웃음이 터져 다른 사람 손에 내 운명이 결정날 수도 있다니. 내 운명쯤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는데...

살아야 했다. 긴장감이 절실했다. 슬쩍 고개를 드니 아저씨의 굵은 팔뚝이 보였다. 다행히(?) 말려 올라간 반팔 아래로 보이는 문신. 순간, 마음이 서늘해지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 큰일 날 뻔했다. 이런 복병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살았다고 생각한 순간, 죽을힘을 다해 웃음을 참았던 나의 노력은 이어지는 형님의 말에 허사가 됐다.

"다시 말입니까? 형님?"

'아. 왜 그러세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나는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산소마스크를 찾아 쓰듯, 이어폰을 다급하게 귀에 꽂았다. 그러곤 귀청을 울리는 록 음악으로 "형님"을 밀어냈다. "저리 가. 오지 마!!" 나의 소리 없는 절규와 음악에 전율하는 듯 미미하게 들썩거리는 어깨는 그 고요한 만큼이나 절박했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신이시여. 이런 식으로 시험을 만들어도 되나요? 웃음과 생명이라뇨...

다행히 나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았는지 코나 입으로 웃음이 새어 나오진 않았다. 시험에 통과한 축복인지 얼마 있지 않아 사람들이 채워졌고 소음도 함께 채워졌다. 그리고 못다 한 웃음을 실실거리며 원 없이 쏟아냈다. 아. 얼마나 홀가분하던지.
 
절체절명의 순간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 나름의 추억으로 웃어보기 절체절명의 순간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 남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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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만점, 추억의 육수

'고생했던 추억도 지나고 보니 상쾌하다.' -에우리피데스

돌이켜보면 지금도 웃음 짓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다. 비록, 그 순간이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더라도 돌이켜 보면 헛웃음이라도 만들어내는 그런 순간들이. 신기하게도 사람은 어느 때나 웃을 수 있는 존재인 듯하다. 웃어선 안 될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기억의 단편만으로도 언제고 웃을 수 있는 그런 축복받은 존재.

나이가 들수록 재미난 일들을 만들기 쉽지 않다. 회사 집 회사 집 도돌이표 생활에서 유쾌하기란, 다 큰 어른 혼자 회전목마를 타며 소리를 지르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그래서 '한때'와 '왕년'이 자주 등장하고 그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즐거운 일이 없다면, 웃을 일이 없어 우울하다면, 다소 희미해진 기억을 들춰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특히나 코로나로 우울해지는 요즘, 이만큼 안전하고 괜찮은 방법도 없다. 사진첩도 좋고 지난 SNS의 글과 사진도 추억을 되새김질하기에 훌륭한 도구다. 참 고단한 인생이지만, 웃을 마음만 있다면 웃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비록 신선하진 않더라도 진하게 우려진 추억의 육수는 진정 영양 만점이다.

그나저나 날도 흐리고 적적한데 잔업도 해야 하는 오늘. 무슨 기억을 한번 떠올려 볼까...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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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렀지만 넌 또 모르잖아"라는 생각으로 내일의 나에게 글을 남깁니다. 풍족하지 않아도 우아하게 살아가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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