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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지형 앞 서강에 뗏목이 떠 있다.
 한반도지형 앞 서강에 뗏목이 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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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영화 같네!"

강원도 영월의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위의 사진을 찍을 때 주변에 있던 한 관광객이 던진 탄성이다.

"어떤 날은 저 뗏목처럼 맑은 물위를 유유히 헤엄쳐가는 수달의 모습을 여기서 직접 보실 수도 있습니다."

환경운동가인 최병성 목사가 현장에서 유튜브 생중계를 진행하면서 한 마디 얹자, 이를 지켜보던 관광객들은 전망대 난간으로 가까이 다가가서 한반도지형 주변을 눈으로 샅샅이 훑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닥이 훤하게 내비칠 정도로 맑은 강물이 흘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한반도, 동쪽은 높고 서쪽은 낮은 동고서저 지형까지 빼닮았다.

[동행 취재] 영화의 한 장면 '한반도지형'

지난 15일 최 목사와 함께 서강을 동행 취재했다. 이날 본 한반도지형은 최 목사가 5일 전인 <오마이뉴스> 톱기사로 쏘아올린 '최병성 리포트'의 제목, 그대로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서강, 이대로 잃을 순 없잖아요" http://omn.kr/1pw2j

이 기사는 아름다운 서강에 깊게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도 다뤘다. 최근 쌍용양회가 서강 변에서 불과 2.5km 떨어진 광산에 산업 폐기물 매립장을 설치하기 위해 영월군에 환경영향평가서를 접수한 것이다. 그 뒤부터 마을이 들썩였다.

"쓰레기장 유치가 지역발전이라니... 소가 웃고 개가 웃을 일이다"(쌍용양회 폐기물매립장 반대위원회)
"2만 명 영월농민 다 죽는다! 발암성 물질로 오염된 농산물을 누가 사먹나"(친환경환반도면지회 일동)


서강처럼 휘돌아가는 도로 곳곳은 쌍용양회 매립장 건립 추진 찬반 현수막으로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지역과 동고동락한 향토기업, 쌍용양회만이 살 길이다"(쌍용-후탄지역 주민협의회)
"친환경매립장 조성사업 지역의 생존이 달려있다"(쌍용-후탄지역 주민협의회)


현수막이 보일 때마다 운전을 멈추고 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던 최 목사가 말했다.

"쌍용양회 매립장 추진 부지는 1960년대부터 시멘트를 만들기 위해 채굴하던 석회석 광산입니다. 폐광을 복구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텐데, 여기에 매립장 허가를 받으면 오히려 1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결국 돈 때문이었다. 쌍용양회 측에서 보면 매립장은 1석2조,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하지만 서강은 쌍용양회의 소유물은 아니다. 관광객과 이곳에서 흘러온 물을 정수해서 먹는 수도권 시민들, 미래 세대의 입장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

[석회암 지대 비경의 비밀] 수많은 동공과 수직절리
 
최병성 목사가 한반도지형 인근의 지질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최병성 목사가 한반도지형 인근의 지질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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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목사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이곳 지질이었다. 석회석을 캐던 곳이다. 석회암은 물에 잘 녹는다. 수많은 동공이 그 증거이다. 쌍용양회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매립장과 연결된 동공이 없다고 기록돼 있지만, 최 목사는 이를 반박하기 위해 한반도지형 바로 밑에 있는 작은 동굴로 안내했다. 동굴에는 박쥐도 살았다.

"여기 종유석이 형성되고 있죠? 바닥에 물도 고여 있네요. 물이 계속 유입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동굴이 아니라 산 동굴입니다. 이 동굴을 봐도 매립장 부지 아래에 동공이 없다는 쌍용양회 환경영향평가서는 부실일 가능성이 큽니다."

최 목사는 한반도지형 전망대에서 내려와 이곳의 지질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절벽 밑에 차를 세운 뒤 설명을 이어갔다. 큰 바위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날카로운 칼로 사선을 그은 듯이 바위가 잘게 쪼개져 있었다. 군데군데 틈도 보였고, 그곳으로 물이 흐르면서 벽면 곳곳이 흰색으로 변색됐다.

"석회암 지대는 얇은 타일을 수직으로 겹겹이 세워놓은 것과 같은 수직절리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 때문에 동공이 발달했죠. 여기에 매립장을 설치하면 침출수가 줄줄 샐 겁니다. 차수막을 설치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한반도지형 전망대로 향하는 산길에서 발길에 채였던 돌들도 비슷한 형태였고, 서강에 병풍처럼 둘러친 거대한 수직절리 절벽이 하나같이 하얀 거품을 입에 문 듯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도 물에 녹은 흔적이었다. 석회암 지대 비경의 비밀은 수직절리와 동공인 셈이다. 매립장 아래의 지질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최 목사는 "서강의 맑은 물은 동강과 합쳐지면서 남한강이 되고 북한강과 만나면서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한강이 된다"면서 "쌍용양회의 돈벌이를 위해 이곳에 매립장을 지으면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을 크게 위협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최 목사가 지난 8월에 쓴 "영월 서강의 위기... 수도권 식수 위협하는 산업쓰레기매립장" http://omn.kr/1pw59 제하의 기사에 담겨있다.
 
한반도 지형 인근의 석회암 동굴
 한반도 지형 인근의 석회암 동굴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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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급 환경운동가] 환경도 밥 먹여준다

사실 이날 동행 취재하면서 정작 주목했던 것은 위협에 처한 서강 현장보다도 최병성 목사 그 자체였다. 20년 전 영월군이 이곳에 추진했던 쓰레기매립장을 막아냈던 주인공은 최 목사였다. 그는 영월군으로부터 공무집회 방해죄, 집시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등으로 고소를 당했지만,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고, 이 일로 급여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최 목사는 '한반도지형'을 최초로 발견했고, 서강이 남몰래 만든 보물을 세상에 알려 훼손을 막았다. 그의 발견으로 '영월군 서면 옹정리'는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가 됐다. 한반도지형 아래쪽 '한반도습지'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으며 세계 람사르 습지로 등록됐다.

최 목사는 "쌍용양회가 이 지역에 매립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한반도지형은 2011년 6월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75호로 지정됐고, 지금은 교과서와 애국가 영상에도 등장한다"고 말하면서 씁쓸하게 웃었다.

"환경이 밥 먹여주냐?"

서강 싸움을 하면서 최 목사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을 법한 말이다. 하지만 환경은 주민뿐만 아니라 영월군에게도 '밥'이었다.

우리 일행이 동행 취재했던 날은 평일임에도 마스크를 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전망대에 대형 주차장이 생기면서 1년에 수천만 원의 급여를 받으며 관리요원으로 활동하는 주민도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을 좀 더 가까이서 보려는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뗏목 투어 프로그램도 주민들이 운영하고 있다.

이날 함께 동행 취재했던 열림공감TV 기자는 "영월군이 최 목사님 동상이라도 세워줘야 하는 게 아니냐"고 우스개를 했다.
 
쌍용양회가 한반도지형 인근에 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도로 곳곳에 걸려 있다.
 쌍용양회가 한반도지형 인근에 매립장 건설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현수막이 도로 곳곳에 걸려 있다.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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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의 기술 1] 지역 여론을 바꾸는 방법

이날 서강 현장을 둘러보고, 제천역 근처의 커피숍에서 최 목사와 마주 앉았다. '국보급 서강'을 지키는 '국보급 환경운동가'는 무엇으로 싸우는지를 알고 싶었다.

"쌍용양회 매립장 추진 사실을 알고 지난 7월 이곳에 다시 왔을 때 반대하는 주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쌍용양회 매립장 찬성 현수막 일색이었습니다. 허탈했습니다. 영월군청에 비치돼 있던 지역신문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마침 1면 광고가 비어있다고 하더군요."

최 목사는 목회활동을 하지 않기에 고정적인 수입이 없지만 그 자리에서 영월신문 1면 광고를 1달간 4번에 걸쳐 싣겠다고 계약했다. '대체 무슨 돈으로 광고를 했냐'고 물었다.

"요즘 인쇄비도 쌉니다. 신문 광고뿐만 아니라 서강에 대한 언론 기사를 인쇄해서 신문 삽지로 뿌리고 있어요. 처음엔 현수막도 자비로 달았죠. 큰 돈 들이지 않고 영월군민들에게 진실을 알렸고, 오늘 본 수많은 현수막은 이렇게 해서 움직인 지역 민심이 자발적으로 단 것들입니다."

지역여론을 바꾸는 마중물이었다. 최 목사는 "20년 전 영월군의 고소건으로 검찰에 불려갔을 때 검사들로부터 '대체 무슨 돈으로 전단지를 돌렸냐'고 추궁 당했는데, '난방비 등 생활비를 아껴 마련했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함께 싸웠지만 지금은 고인이 된 이곳 주민 이종만씨에 대한 일화도 들려줬다.

"종만씨와 함께 한반도지형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제가 한 겨울에도 가스난로 한 개 틀어놓고 춥게 지내는 것을 보아왔어요. 하루는 50만원 돈다발을 들고 왔더군요. 봉투에 넣은 게 아니라 현찰 중간을 실로 묶었더라고요.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그 친구는 '나는 이 강물을 평생 먹고 산 사람인데 강을 위해 한 일이 없다'면서 '이 돈을 받지 않으면 평생 부끄럽게 살 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 돈도 인쇄물을 만들어 지역 여론을 바꾸는데 썼습니다."

잠시 눈시울을 붉혔던 최 목사는 "당시에도 미친놈처럼 싸웠다"면서 "그 힘이 마을 사람을 움직였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강을 지켰다"고 말했다.

최 목사가 말한 싸움의 기술, 첫 번째는 '지역 여론부터 바꾸라'는 것이었다. '기술'이라기보다는 자기희생에 가까웠다. 지역여론을 바꾼 건 인쇄물이 아니라 '진정성'이었다.

[싸움의 기술 2] "환경운동은 나의 수행이자 수도"
 
한반도지형 앞에 선 최병성 목사
 한반도지형 앞에 선 최병성 목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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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목사는 1994년에 수도자의 삶을 살기 위해 서강 변에 움막집을 짓고 살았다. 움막집이 화재로 전소될 때까지 10여년 동안 혼자 강변을 거닐고 책을 읽으면서 '영성'을 공부했다. 이날 그와 함께 비포장 길을 헤치고 찾아간 옛집은 수려한 서강 변에 타다만 채로 그대로 있었다. 여기서 '월든'의 작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처럼 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소로우는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당시 저의 가장 좋은 친구였죠. 또 타고르의 시도 많이 읽었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자연과 하나가 됐던 소로우의 맑은 영혼과 타고로의 시편들은 저의 가슴을 저미게 했습니다."

하지만 1999년에 그의 평화가 깨졌다. 영월군이 이곳에 쓰레기 매립장을 추진하자 그는 서강 싸움을 시작했다.

최 목사는 "당시 나 혼자 강의 고요함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어느 날 문득 하나님이 저에게 수행의 방편으로 서강 쓰레기 매립장과의 싸움으로 나아가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치지도 않았다. 서강 싸움을 승리로 이끈 뒤 시멘트 재벌을 상대로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최초로 이슈화시켰다. 시멘트 제조과정에서 원료인 석회석에 반도체공장의 찌꺼기, 폐타이어, 폐고무, 폐비닐, 폐유 등의 산업 쓰레기를 혼합해 태우는 것의 유해성을 고발했다. 발암물질과 유독물질로 제조되는 '콘크리트 혼화제' 문제도 제기했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에 걸쳐 시멘트 및 폐기물의 시료 분석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자비로 댔다. 최 목사는 국내 7개 시멘트공장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기도 했지만, 나홀로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그는 '4대강 목사'로도 불린다.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강행할 때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아, 死대강'이란 제목의 연재 기사를 썼다. 대부분의 기사는 수십만 조회 수를 기록했고, 100만을 훌쩍 넘긴 기사도 있었다. '장로 대통령에 맞짱 뜨는 목사 기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고, 전국을 누비며 300회 넘게 4대강 특강도 했다.

그는 가는 곳마다 환경을 붙들고 싸웠다. 2014년 용인으로 이사 갔다가 초등학교 앞산에 들어서는 콘크리트혼화제 연구소가 환경영향평가서와 인허가 서류를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업체로부터 소송을 당했지만, 이 역시 승소했다. 이를 계기로 2018년 용인시 난개발 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이 되어 백서를 발간, 난개발 방지를 위한 조례를 개정하는 데 기여했다.

환경운동단체에 소속돼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생계비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런 그가 20여년이 넘게 이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환경운동은 나의 수행이자 수도입니다. 때론 외롭고, 말할 수 없는 아픔도 찾아오지만 제가 헤쳐가야 할 수행의 과정이죠. 저는 십자가가 있는 빨간 벽돌집이 아니라 생명이 죽어가는 현장에서 목회를 합니다. 다른 목회자들은 큰 집과 자동차, 월급도 받는데, 저의 신도는 새와 물고기, 자연입니다. 헌금을 받지 못하지만, 꽃 한 송이, 나무 한 개, 들고양이들의 눈빛에서 큰 위로를 받습니다."

'현장에 가서 집요하게 파라'. 그가 알려준 두 번째 싸움의 기술이었다. 이 역시도 기술이라기보다는 자기희생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치지 않고 환경을 지키려고 뛰어들었던 것은 종교에 바탕을 둔 신념이었다.

그는 "세례 요한처럼 모든 생명을 위해 평생 광야에서 외치는 자로 남겠다"고 말했다.

[싸움의 기술 3] "글쓰기는 탐정놀이... 사진은 각도가 중요"
 
한반도지형 앞에서 유튜브 생중계를 하는 최병성 목사
 한반도지형 앞에서 유튜브 생중계를 하는 최병성 목사
ⓒ 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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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혈혈단신으로 싸움에 뛰어드는 '다윗의 무기'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그는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최근 새만금 녹조 사진을 한 장 건져서 오마이뉴스 기사로 올렸더니 전북 여론이 불붙었습니다. 며칠 동안 전북 지역 라디오 5군데에서 연락이 와서 새만금 해수 유통에 대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최 목사는 "그 기사는 포털 뉴스에 주요하게 배치돼 1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했다"면서 "저의 가장 큰 무기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때 운명처럼 저에게 카메라가 다가왔죠. 중동에 건설 근로자로 갔던 둘째 형님이 제게 준 선물이었어요. 50mm 단렌즈였는데, 곤충사진을 찍으면서 흠뻑 빠졌습니다. 신학교 때에도 잡지에 사진을 연재하고 결혼식 사진도 찍어주면서 학비를 벌었죠. 지금 저의 카메라는 환경의 아름다움과 아픈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외장하드 10개에는 과거 그가 목격한 생명의 기록들로 꽉 차있다. 슬라이드 필름 박스도 몇 개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새벽이슬 사진전을 열었을 때 작가들이 충격을 받았나 봅니다. '무슨 카메라를 쓰느냐'고만 묻더군요. 용산서 산 70만 원짜리 똑딱이 카메라였는데, 돋보기 대고 찍었죠. 다윗이 멋진 칼을 가지고 골리앗을 물리친 게 아니었어요. 사물을 활용하는 시선, 각도가 중요하죠. 난개발 이슈를 쏘아올린 것도 기막힌 현장을 찍은 드론 사진이었어요."

그가 말한 또 다른 무기는 '글'이었다.

"목사는 설교 원고를 쓰는데, 제 글에는 설교투가 배어 있을 겁니다. 작은 것에서도 이야기를 끄집어내서 쉽게 이해시키는 게 설교의 특징이죠. 사진에서 이야기를 찾고, 이를 쉽게 전달해 나만의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현장 사진과 이야기로는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대안 제시는 어렵죠.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합니다."

그는 요즘은 새만금 관련한 자료와 서적을 찾아 시간이 날 때마다 탐독한다고 했다. 쓰레기 시멘트와 관련한 자료는 큰 책꽂이 2개에 빼곡하게 채워져 있다. 4대강, 난개발 관련 책도 2개 책장에 꽉 차 있다. 인터넷 서핑으로 찾은 자료도 방대하다. 그의 기사에 현장 사진과 함께 항상 등장하는 데이터와 자료는 공부를 통해 찾은 것들이다.

"제 가장 큰 무기는 카메라와 글쓰기,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정보의 바다입니다. 수많은 보석들이 숨어있습니다. 공부는 정보의 바다에서 보석을 찾아내서 목걸이처럼 엮는 기술이죠."

'파워 시민기자'인 그에게 인터넷 글쓰기 팁을 물어봤다.

"현장에 가면 문제가 보이고 답이 보입니다. 또 가능한 사진을 많이 찍어야 합니다. 집에 와서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현장에서 육안으로 보지 못한 게 보입니다. 사진을 찍을 때는 가능한 다른 각도, 다른 시각으로 찍어야 새로운 이미지를 건질 수 있습니다.

자료를 찾으면서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보, 과학 사이트 등에는 대한민국 수많은 석박사 보고서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기서 찾은 정보를 나만의 시각으로 엮습니다. 글쓰기는 수많은 자료를 찾아내서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탐정놀이입니다."


최 목사는 "환경운동가들은 보도자료부터 쓰고 시간이 나면 글을 쓰는데, 요한복음 1장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고 되어 있다"면서 "세상을 바꾸려면 글쓰기를 가장 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루 동안 동행취재하면서 그의 '싸움의 기술'을 유심히 탐문했다. 수많은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도 알고 싶었다. 그날 제천역까지 와서 기자를 배웅하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가 말한 건 싸움의 기술이 아니라 환경과 생명체에 대한 사랑의 기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그동안 싸운 게 아니라 사랑했다.

최 목사는 시민기자이자,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오마이뉴스란 최병성에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내게 오마이뉴스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무기였습니다. 만약에 내게 오마이뉴스가 없었다면 오늘의 최병성도 없었을 것입니다.(중략) 저는 넉넉하지는 않지만 오마이뉴스를 후원하는 10만인클럽 회원입니다. 조금씩 함께 동참한다면 이 어려운 세상을 밝은 세상으로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최병성 목사와 함께하기]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가입 http://omn.kr/1m9k7
[최병성 리포트 보러가기] 환경심층취재 http://omn.kr/1puaw
 
https://youtu.be/ozB8r8WC5U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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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들과 함께 상식적인 사회를 만들고 싶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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