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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벗어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데, 갑자기 가족의 스위스 발령으로 2019년부터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직장과 집, 주변 일을 정리하기에도 빠듯하여 가기 전에 언어를 미리 공부할 여유는 갖지 못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반, 닥치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체념 반, 그리고 약간의 설렘을 갖고 떠났다.

나에게 외국어란 애증의 대상이었다. 늘 배우고 싶지만 일부러 시간 내서 공부하기도 어렵고 막상 배운다 해도 24시간 한국어만 쓰는 나로서는 써먹을 기회도 없다. 가끔 만나는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답답할 때마다, '이젠 정말 영어를 맘먹고 공부해야지'하는 결심을 하지만, 또 자주 만나는 것이 아닌지라 곧 스멀스멀 결심이 해이해졌다.

나를 포함한 한국인들의 외국어 사랑은 늘 짝사랑이었다. 우리는 항상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 등 강대국의 언어들을 배우려고 해왔지만, 영국, 미국, 일본, 중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지는 않으니까. (하긴 우리도 할 말 없다. 우리도 제주어를 포함한 한국어 방언, 타갈로그어, 마오리어, 벵갈어, 링갈라어를 배우려 하지는 않는다. 문화적 관심은 늘 일방적으로 제국의 메트로폴리스를 향해 있다.)

방탄소년단 팬이 되면서 해외 아미(외랑둥이라고 부른다)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아왔다. 케이팝, 케이드라마의 인기로 한국어 수요가 높아졌다는 말도 들었다. 정말일까? 출국 전에 트위터에서 제네바 지역의 아미들과도 연락했다. 그래, 저 나라에도 아미도 있고 케이팝 팬도 있다. 일단 그들을 믿고 가자.

5개국어를 하는 이케아 알바생이 있는 나라 
 
 갑자기 가족의 스위스 발령으로 2019년부터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갑자기 가족의 스위스 발령으로 2019년부터 프랑스어권인 제네바 지역에서 살게 되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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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는 공용어가 네 개다.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만쉬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고 거기에 영어도 웬만큼 잘했다. 모든 국민들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 중고등학생들을 다른 지역으로 어학연수를 보내는 게 국가정책이었다! 한국으로 치면 경상도와 전라도가 서로의 방언을 배우게 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2주간 서로의 지역으로 홈스테이를 보내는 셈이랄까?

게다가 많은 가족들이 국제결혼을 했거나 해외 체류 경험이 있고 가족 안에서 구사하는 언어도 여러 개였다. 우리 집처럼 '대대손손 한국에서 태어나서 한국에서만 살아왔고 일가친척이 모두 한국 사람인' 사람 둘이 결혼해서 한국어로만 대화하는 집은 찾기 힘들었다. 우리 집은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라고 하면 다들 놀랐다. 거의 대부분의 가족이 국제적이었다.

엄마가 스페인 사람, 아빠가 독일 사람이고 집에서 엄마 아빠는 영어로 대화해 모어가 3개인데 살고 있는 곳은 프랑스어권인 가족. 이런 가족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인공어인 에스페란토어가 모어인 아이도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대화하는 언어가 에스페란토인 경우였다.

이케아 매장에 가면 직원들이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여러 나라의 국기 모양의 뱃지를 달고 있다. 자신이 달고 있는 뱃지의 언어를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뱃지를 4, 5개 달고 있는 직원도 많았다. 한국이라면 5개 국어 능통자는 귀한 글로벌 인재라고 난리가 났을 텐데.

프랑스어를 쓰는 제네바 지역에서 프랑스어를 전혀 못 하는 나는 현지인들의 대화에 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네바는 국제도시라 영어로 웬만큼은 생활이 가능했다. 나는 '평생 한국어만 쓰는 환경에서 중학교부터 배운 영어로 이 정도 생존하면 선방하는 거야'라는 자부심과 '영어를 20년 넘게 배웠는데 이것밖에 못 하나'라는 자괴감 사이를 매일 널뛰기했다. 처음 보는 환경이 낯선 나머지, 한국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던 한 종교 집단을 만났을 땐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어! 저 사람들 한국이랑 똑같네!' 그렇다. 별 게 다 반가웠다.

나는 한국인이라는 자체로 환영받았다
 
 지난 1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류 문화 축제 케이콘(KCON) 컨벤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K팝 가수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2019.8.18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류 문화 축제 케이콘(KCON) 컨벤션에 참석한 관람객들이 K팝 가수가 등장하자 환호하고 있다.
ⓒ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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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적응하고 나자, 한국이 유럽에도 많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케이팝을 틀어놓고 제네바 중심역인 코르나방에서 춤추는 젊은이들, 휴대전화로 한국드라마 보는 사람들도 보였고, 세월호 뱃지를 단 제네바 사람도 마주쳤다. 회색 생활한복을 입고 가는 젊은 백인 여성도 있었다. (그 생활한복이 방탄소년단 정국이 입었던 모델이라는 데 내 손모가지를 걸 수 있다!)

그렇다. 방탄소년단 팬들은 여기에도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나는 한국인이라는 자체로 환영받았다. 케이팝 팬들이 모여서 야외에서 자유롭게 춤추는 파티가 있었는데, 내가 멀찍이서 구경하고 있자, 갑자기 우르르 모여들어서 '꺄아!! 한국인이에요?!' '반가워요!' 하며 환영을 해주는 것이다. 뭐지? 갑자기 아싸에서 인싸가 된 이 기분?

그들 사이에서는 한국인이란 이유, 한국어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쩐 일인지 그들은 한국인인 나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케이팝의 모든 노래의 안무를 외우는 친구도 있었고 유튜브로 한국어를 독학해서 꽤 잘하는 친구도 있었다. 방탄소년단 지민의 솔로곡 <세렌디피티>의 가사를 타투로 새긴 친구도 있었다.

이 때 처음으로 외국어에 대한 일방적인 애증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 우리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내가 스위스 문화가 궁금하고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 만큼, 저 사람들은 한국 문화가 궁금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다. 언어 교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최근 방탄소년단의 성공적인 월드투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아카데미 수상 등이 이어지고, 결정적으로 코로나 방역에서 유럽 어느 나라보다 한국이 선방하면서 한국의 위상이 갑자기 높아진 것을 느낀다.

아이 학교의 한 고학년 학생은 한국 방역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하겠다고 세계보건기구에서 일하는 한국인과 연결해달라고 연락을 해왔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팬인 한국어학생들은 한국이 잘해냈다는 데 자랑스러워하고 한국에 대한 좋은 뉴스를 퍼 나른다.

나로서는 한국의 빛과 그림자를 잘 알고 있고 헬조선이란 말에도 공감하기 때문에, 마냥 한국을 좋아라 하는 친한파 외국인들을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당장 내가 여기서 이방인인 한국인으로 살기에는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는 게 편하긴 하다. 코로나 유행 초반에는 동양인 전체에 대한 혐오로 길거리 다닐 때 인종차별테러 당할까 조심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한국어의 위치가 변하고 있는 모습을 시시각각 관찰할 수 있는 시기에 제네바에 머무르게 되어 운이 좋았다. 마침 제네바시민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회가 생겨 더 많은 쌍방향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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