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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번째 꼬마평화도서관(아래부터 꼬평)이 문을 열었습니다. 지난 22일 지평 산기슭 박성욱도예작업실 '무소MUSOO'에 둥지 틀었습니다. 무소는 도예가 박성욱 선생과 이금영 선생이 어울려 덤벙 분청자기를 빚는 가마터입니다. 예술이 태어나는 움에 꼬평이 들어서기는 처음입니다.
  
왼쪽 26번째 꼬평 신호승 관장 오른쪽 이금영 관장
▲ 꼬평 현판식 왼쪽 26번째 꼬평 신호승 관장 오른쪽 이금영 관장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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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방역수칙에 맞춰 펼쳐진 개관잔치 문은 스물여섯 번째 꼬평 신호승 관장과 이금영 관장이 꼬마평화도서관 이름패를 걸면서 열었습니다. 이어 지평에 사는 개군초등학교 6학년 수환·수혁 쌍둥이 언니·아우가 <생명을 먹어요>를 연주했습니다.

책을 연주하다니 무슨 말이냐고요? 옛 어른들이 향기를 듣는다고 했듯이 사람들 앞에서 책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목소리 연주'라고 합니다. 연주회에 가면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와는 달리, 가락에 따라 달라지는 연주자 낯꽃과 몸짓은 말할 것도 없이 그이가 내뿜는 기운이 온몸을 감아 돌아 울림이 크잖아요.

이처럼 책에 담긴 얼이 책을 연주하는 사람 목소리를 타고 나와 몸을 감쌀 때 밀려드는 짜릿함도 말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생명을 먹어요> 어떤 책인지 궁금하시죠?
   
왼쪽부터 이금영 관장, 개군초교 6년 수환·수혁, 신호승 관장, 대화의정원 김재정님
▲ "생명을 먹어요" 연주 왼쪽부터 이금영 관장, 개군초교 6년 수환·수혁, 신호승 관장, 대화의정원 김재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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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를 잡는 일을 하는 사카모토는 어느 날, 같이 살던 소를 떠나보내기 안타까워 도축장까지 따라와 소에게 고기로 팔 수밖에 없는 까닭을 들려주는 아이와 만납니다. 소를 어루만지며 "할아버지가 그러는 거야. 미야가 고기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설을 쇨 수 없다고. 미야를 팔지 않으면 우리가 힘들어진다고 말이야. 미안해, 미야. 미안해" 하며 울음을 억누르는 아이와 마주친 사카모토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날 밤 아들에게 도축장까지 소를 따라온 아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소 잡는 일을 그만둬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얘기를 듣고 난 아들은 "아무래도 아빠가 하는 게 낫겠어. 아무에게나 맡기면 미야가 더 괴로울 거야"라고 하면서 사카모토에게 소를 잡겠다는 다짐을 기어이 받아내고야 맙니다.

이튿날 아침,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제 목숨을 바치는 소. 다음날 도축장에 들른 할아버지는 잡은 쇠고기를 조금 가져가서 손녀를 비롯한 식구들과 나눠 먹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울면서 먹지 않으려는 손녀에게 "미야 덕분에 우리가 살게 되었어. 자, 먹으렴. 미야에게 고맙다고 하고 먹자꾸나. 우리가 먹지 않으면 죽은 미야에게 미안하잖아"라고 했다면서요. 사카모토씨는 조금 더 이 일을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몸을 내어주고 숨을 거두는 다른 목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결 고운 책입니다. 글쓴이는 "잘 먹겠습니다" 하고 고맙게 인사하고 남기지 않고 먹는 것이 우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이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보답이라고 말합니다.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4학년 려경이와 남경이 그리고 엄마
▲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 연주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4학년 려경이와 남경이 그리고 엄마
ⓒ 변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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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달아 연주한 <콩알 하나에 무엇이 들었을까?>에는 콩알 하나가 세상에 나오는데도 흙·빗물·곤충·햇볕을 비롯해 사람 손길처럼 수많은 것들이 힘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연주를 맡아준 이들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엄마 손 잡고 의왕에서 지평까지 먼 길을 한달음에 달려온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 4학년 려경이와 남경이였습니다. 공교롭게 이 동무들도 쌍둥이였습니다.

책 연주가 끝나고 나서 이 책들을 연주하도록 고른 도서관장 이금영 선생 마음 결을 곱씹는 사이 이금영 선생 따님 박순빈이 연주하는 가야금 소리가 펼쳐집니다. 이어지는 대금 연주로 개관식 막이 내렸습니다.
  
이금영 관장 따님인 순빈이
▲ 대금 연주 이금영 관장 따님인 순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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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이 꼬평을 열기로 하면서 세운 기둥이 몇 개 있습니다. 먼저, 평화 책 서른 권만으로 여는 도서관. 둘째, 도서관에 놓을 평화 책은 되도록 이웃이 십시일반 모아 여는 도서관. 셋째, 꼬평에 여섯 달에 한 번 적어도 다섯 권은 새로운 평화 책을 보내는 도서관. 넷째, 이어달리기로 여는 꼬평. 마지막으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평화 책을 소리 내어 연주하는 모임을 하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이 가운데 네 번째 드린 말씀이 무슨 얘긴지 어림하기 어려우시지요?

줄기도 없이 이어달리기하듯이 잎만 퍼뜨리며 살아가는 풀, 개구리밥이 있습니다. 물 위에 둥둥 떠 있다고 해서 부평초라고 불리는 이 개구리밥이 잎을 하나 늘려 가는데 서른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네요. 줄기에서 싹이 나듯 있는 잎 옆에 다른 잎을 잇달아 붙여 네다섯 개가 되면 이음새를 끊어 딴살림이 차린답니다.

서른 권 남짓한 책으로 여는 꼬평에 여섯 달에 한 번 다섯 권이 넘는 책을 보내드리니까 한두 해가 지나면 책이 마흔 권에서 쉰 권쯤 되잖아요. 곳곳에 있는 꼬평을 즐겨 찾는 분들이 다 읽은 평화 책 십여 권을 덜어내 새로운 꼬평을 열어갈 밑돌을 삼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평화 책을 열댓 권 받은 예비 꼬평관장이 가지고 있거나 둘레에서 모은 평화 책을 더해 꼬평을 열도록 한다면, 개구리밥이 늘어나듯이 꼬평이 '금세 널리 퍼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더랬어요.

짝짓기하지 않고도 새살림을 차리는 개구리밥처럼 꼬마평화도서관을 늘려가려고 한다는 뜻을 알리는데 게을렀던 탓일까요? 그동안 이어달리기하듯이 평화 책을 받아 꼬평을 연 곳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을 연 마흔 번째 '초내리 꼬평'은 연립주택현관에 있는 스물아홉 번째 꼬평이 덜어낸 평화 책을 넘겨받은 이금영 선생이 마을 아이들과 같이 읽던 평화 책과 어깨동무하도록 하여 문을 열었습니다. 개구리밥이 퍼지듯이 우리 가슴 가슴으로, 평화가 젖어 들기를 빌며 돌아서는 저녁. 노을이 유난히 깊었습니다.

태그:#꼬마평화도서관, #박성욱도예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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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평화도서관사람들 바라지이 “2030년 우리 아이 어떤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은가”를 물으며 나라곳곳에 책이 서른 권 남짓 들어가는 꼬마평화도서관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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